좋은 삶/펌글창고2011. 3. 20. 09:59
제 강좌 중에 한 수강생이 '사생글쓰기' 과제로 올린 글입니다.
구수한 대화를 옮기는 재능이 뛰어나고, 막내딸의 미묘한 심리묘사가 정직해서   좋은 글이 되었습니다.
연로한 엄마가 있는 분은  짠한 공감이 피어오를 것 같아 이 곳에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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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작은 방에서 초등학교 동창생과 통화를 하고 있다. 늘 불퉁거리며 쌀쌀맞은 막내딸...


“아이고, 우리 딸이 링게루를 맞으라고 해서... 오늘은 하루종일 호강했당게. 기운이 좀 나드랑게., 그냥 내가 안 간다고 그렇게 해도, 꼭 맞으라고 해서 갔당게, 우리 사우도 얼마나 착한디, 착한 게 살지, 안 그럼 못 살어. 같이 못살지.”


그녀는 거실에 있는 전화는 되도록 사용을 안한다. 딸네 세 식구는 거실에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각자의 볼일에 바쁘다. 그녀는 작은방에서 가요무대를 보고, 잘 준비를 하고 틀니를 뺀다.


아침이다. 막내딸이 출근하고 난 뒤 딸의 침실을 정리하는 이 시간이면 햇살이 찬란하다. 그녀는 늘 이 시간이 좋다. 그건 아마 햇살보다는 자신이 이 집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가장 크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딸 침대의 흐트러진 이불은 정신 나간 여자의 차람새보다 보기에 뭣하다. 드레스룸 앞에 벗어 던진 잠옷은 넉다운 된 권투선수보다 처절하게 내동뎅이 쳐져 있다. 구석에 있는 속옷마저도 지쳐버린 삶의 껍질로 보여 안쓰럽다. 여기저기 떨어진 머리카락은 어느 서양화가의 초상화처럼 강렬하지만 익숙하다. 딸은 아침마다 게으름과 전투를 벌인다. 싸움의 끝은 폭발 2분전 무작정 탈출하기이다. 이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서. 얼마나 피곤하면, 얼마나 몸이 무거우면 그럴까? 잠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린 손주 녀석의 주문이 들어온다.


“할머니, 밥 줘!”

“그려, 얼렁 씻고 와아”

그녀는 자신을 친근하게 대해주는 다정한 손주가 고맙다. 그녀의 대화상대이고 친구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차 시간이 없어지긴 했지만.


“할머니, 어제 ‘웃어라, 동해야. 봤지?”

“그려, 아이고 동해 엄마가 남산으로 혼자 가서 동해가 즈이 엄마 잃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찾아다녔다고. 오메~ 동해 엄마는 얼어 죽을 뻔했어.”

“할머니 안 얼어 죽어. 텔레비에서는 주인공을 안 죽여, 항상 살려준다니까, 할머니는 그런 것도 몰라?”

“아! 그려? 나는 그런 것도 몰라, 우리 손자는 똑똑해서 좋겠다”

“그러엄, 히히~ 이 앵님께서는 모르는 게 없지, 헤헤~”

팔순이 다 되는 나이에 집안 청소, 부엌일, 손주 돌보기, 식사준비까지 만만하지 않다. 그럼에도 딸은 늘 마음에 안 차 퉁박을 놓는다. 그녀는 늘 당당하지 못하고 한 발 뒤에서 풀 먹인 이불처럼 사그락거리기만 한다.


“아유, 엄마. 냉장고가 이게 뭐야, 기름 묻은 손으로 냉장고 바를 열면 안 된다니까”

“아유, 엄마, 남은 반찬은 좀 버려, 제발”

“아유, 엄마, 엄마가 이 비싼 후라이팬을 다 버려 놨네... 난 몰라”

“아유, 엄마. 엄마는 왜 그렇게 우는 소리만 해, 그러면 오던 복도 달아나,

아유, 아유, 아유...”


2년 전 그녀는 이사를 하면서 초등학생 아이를 돌봐줄 도우미를 구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친정 엄마가 그 일을 도맡아 주기로 해서 2년 반째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온갖 살림 다 해 주시고 남의 식구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에 연로한 엄마께 마냥 죄스럽고 고마웠다. 그녀의 어린 시절 기억에 늘 예쁘고 늘 자랑스럽던 엄마. 엄마는 시원스럽고 가녀린 몸매를 가졌다. 적당한 키에 어떤 옷도 폼나게 소화하던 엄마, 글도 모르던 새까만 얼굴의 뽀글이 파마를 한 친구들의 엄마와 달리 곱고 여리여리하던 엄마, 하지만 그녀가 아이를 낳고 40이 넘어가자 엄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했다.


“우리 엄마는 왜 좀 더 현명하지 못했을까? 왜 아들들을 그렇게 키웠을까? 엄마가 좀 긍정적이고 씩씩한 성격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가 3미터 뒤에 엄마를 따라오게 했다더니, 킥킥킥, 왜 그런지 알겠어” 등 천륜을 볼모로 네 자매는 이런 험담도 가끔씩 하게 되었다. 상처를 헤집고 들춰 진단을 내리는 매정한 의사처럼.


게다가 몇 해전 수술로 많이 초라해지고 늙으셨다. 요즘은 틀니를 뺀 모습을 매일 보는 것도 좀 고역이었다. 노인네 특유의 행동들이 안쓰러움에서 보기싫음으로 점점 바뀌어 갔다. 아침을 준비하는 덜거덕 거리는 소리, 주말의 늦잠을 맘 편하지 못하게 하는 엄마의 존재, 케엑~ 케엑~! 아침마다 들리는 목트는 소리, 노인네에게 기대할 수 없는 아이 양육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몇 해 전 엄마의 수술 때 발을 구르며 통곡하던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하지만 오늘처럼 일이 있어 엄마집으로 가시는 날이면 미안함과 서글픔에 코끝이 매워진다. 어딘지 모를 쓸쓸함에 서먹하게 전화를 건다.



“나야”
“응, 그려”

“기차 탔어?”

“응, 잘 탔어~ 집에 가면 냉장고에 찌개 끓여 놨응게 그거 뜨끈하게 끓여~ 응? 파랑 미나리랑 쑥갓이랑 썰어 놨응 게 찌개 끓인 다음에 넣고 쬐끔 더 끓여. 쬐끔만 끓여야 해, 그리고 니가 좋아하는 고추 쪄서 무쳐 논 거 있어. 내일은 생채 무친 거에다가 고추장 넣고 들기름 살짝 쳐서 비벼서 니 신랑이랑, 애기랑...”

“알았어, 알았다고! 잘 갔다 와”


엄마가 안 계신 집은 강력한 마술에 걸린다. 그 짧은 시간에 할머니의 부재를 극대화시켜놓은 아이의 능력은 기가 막힌다. 소파의 쿠션들은 발랄하게 흩어져 있다. 과자 부스러기는 카페트 이곳저곳을 습격했다. 집어 던져놓은 가방과 신발주머니에서 쏟아져나온 책과 공책이 도미노처럼 쓰러져있다. 널부러진 잠바, 레고 조각들, 과자 껍질, 뒹구는 만화책... 좁지않은 그녀의 거실은 4학년 머스마의 방만한 자유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휴!


남편이 돌아오고 셋이서만 하는 저녁식사, 좀전의 가슴 먹먹함은 이내 사라지고 오히려 그들만의 오붓함으로 공기는 달구어진다. 밀가루를 묻혀 살짝 쪄낸 다음 아주 절제된 양념으로 조물락조물락 무쳐놓은 고추나물을 한 찬합이나 비우면서도, 정갈하게 빨아 레이스가 앞으로 나오도록 예쁘게 개켜놓은 린넨 잠옷을 입으면서도, 사그락사그락 적당히 풀 먹여 놓은 이불과 베개 위로 몸을 눕히면서도, 누군가의 그 많은 손길은 기억하면 안 될 금기처럼, 열어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처럼 애써 고개를 돌린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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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끝이 찡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

    2011.03.21 09: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지요?
      내 마음을 헤집어 글로 정리해 놓으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뛰어넘을 수도 있고,
      자신감도 붙고 아주 좋답니다.^^

      2011.03.21 18:37 신고 [ ADDR : EDIT/ DEL ]
  2. 사과상상

    정말로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의 말못할 고마움과 왠지 모를 짜증이 이 글로 설명이 되네요...ㅠㅠㅠ 아마 철들기 전 자식들은 전부 저 막내딸 같은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되겠죠? 저는 지금 부모님과 떨어져 있으니 더욱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면서도 글로 쓰기는 꺼리게 되었는데... 그건 아마도 '판도라의 상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봐요. 아침부터 좋은 글을 읽어 행복합니다. ^^

    2011.03.22 09:45 [ ADDR : EDIT/ DEL : REPLY ]
    • 휴유~~ 엄마만 다녀가시면 죄책감이 드네요.
      엄마보고 자손을 돌보지 말라는 것은
      존재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바없는데도,
      너무 챙겨주시니까 짜증이 나거든요.
      저는 막내딸도 아니건만... ^^

      로그인을 안하셔서 찾아뵙지 못해서 서운하네요.

      2011.03.22 21:31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