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11. 3. 20. 09:50

꼭 영화같았다. 10미터가 넘는 파도가 사람 사는 세상으로 서서히 밀고 들어왔다. 아이들도 영화 ‘해운대’ 같다고 소리쳤다.  만 명이 실종된 지역이 네 군데, 현재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실종자가 만 삼천명, 피난민이 삼십만을 넘는다고 한다. 3층 건물 꼭대기에 차량이, 커다란 배가 도로에, 수십억짜리 제트기가 진흙에 파묻힌 것이 컴퓨터그래픽 같아서 실감이 나질 않았다. 대롱대롱 전봇대에 매달린 좌변기는 너무 조작적으로 느껴질까봐 영화에서도 펼쳐놓을 것 같지 않은 장면이었다.


워낙 어마어마한 탓인지, 평소에 일본사람들에게 감정이입할 일이 없어서인지 어떤 마음도 솟아나질 않았다. 희생자에 대한 연민과 자연의 위력에 대한 경악, 심지어 방사능 피폭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왜 이렇지 싶었다. 벌써 이렇게 메마르면 글쓰기는 둘째치고 재미없어서 어떻게 사나 위기의식이 몰려올 정도였다. 몇 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잘 못 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 때는 며칠간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나와서 곤혹스러울 지경으로  감정이 흘러넘쳤던 것이다. 상고출신이라는 변방에서 한 나라의 수장으로 오른 그의 행보를 보며, 견고하기 그지없는 기득권의 성채에 틈새를 낸 영웅을 보듯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었다. 그러나 그의 순수함은 노회한 보수언론에 의해 촌스러움으로 조롱받았고, 뿌리깊은 정치경제의 악습을 쇄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제의 영웅이 거대한 시스템의 희생물이 되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나는 그야말로 심리적인 쓰나미에 부딪쳤었다.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세력을 피부로 느껴 두려웠고, 한 때 대통령에까지 올랐으나 끝내 자기 몸을 던져  음험한 기득권에 항거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사내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죽음에도 그토록 민감했던 내가 ‘수천 수만의 착한 목숨’ 앞에서 이토록 담담한 것이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지진에 대한 글을 몇 편 찾아 읽어 보았다. 인도주의를 발휘할 것을 호소하는 글이 많았고, 일본인들이 전쟁보다 혹심한 상황에서도 질서를 지키고 사재기가 없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그런가하면 이번 사태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 부족에 대한 신의 응징이라며, 이런 판국에 포교를 하는 유명한 종교인도 있었다. 종교적 이용은 물론 인간의 겸손함을 강조하는 도덕적 교재로 활용하는 것도 아직은 이르다, 우선은 그들에 대한 충분한 애도와 지원이 먼저라는 정혜신의 글도 읽었다.


그러나 내 메말랐던 감성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계기를 통해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자주 가는 사이트에 어떤 사람이 올린 글 한 편 덕분이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보며 과연 신이 있느냐는 통탄을 하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누구나 함직한 소리로 느껴져 무심히 읽어 내려가고 있었는데 그 글의 마무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선생님은 좋은 밥먹고 좋은 말씀을 잘해주시지만, 신이 존재한다며 가끔은 개밥을 먹고 개소리를 하는 개들처럼 개소리를 하신다.”

나는 이 문장에서 뒤틀릴대로 뒤틀린 한 인간을 보았다. 아무에게도 열려있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는 편협함이 공격성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가 어느 정도 문자를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절망스러웠다. 차라리 “개00”라고 욕을 하고 마는 사람은 언제고 자기 생각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뒤틀린 자기를 웅변하고도 남을만한 궤변이 있는 사람은 좀처럼 변할 수 없을 것 같아서이다. 게다가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고 만천하에 소신을 펼쳐놓는 개인홈페이지에서 한 말에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나는 진심으로 그가 불쌍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당연히 놀라고, 두려워하고, 순한 마음으로 애도를 표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두 소중해졌다. 비로소 내 심장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이번 지진의 여파로 일본열도는 동쪽으로 2.4미터, 우리나라는 동쪽으로 2~5센티미터 이동했다고 한다. 안전하다고 믿고 사는 땅덩어리가 움직인다는 사실은 경악스럽지만, 우리가 거대한 바다 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감격스럽다. 우리는 국경 따위로 나뉠 수 없는 공동운명체요, 아픔에 동참하는 크나큰 사랑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나는 많지않은 금액이나마 일본지원에 힘을 보탰다. ‘우리가 하나’라는 의식은 사회적인 관심도 환기시켜주어 ‘청소노동자’를 특집으로 다룬 ‘한겨레21’이 눈에 콕 박히기도 했다. ‘개인화’나 ‘성장’에 꽂히면서  가파르게 축소되던 사회적 시선이 다시 열리는 기분이었다. 휴식과 평안의 상징인 바다를 공포의 살육자로 탈바꿈시키는 바다밑 지형에 대한 지질학적 관심까지 촉발되었다.


일본열도가 태평양으로부터 한반도로 밀려드는 지진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분석도 있던데, 그렇다면 한반도가 명당이라는 안도감에서 멈출 것인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위험을 막아준 그들에게 아낌없는 위로와 지원을 보낼 것인가? 이번 사태의 정치경제적 여진은 계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반사이익만을 챙기는 얍삭한 이웃이 될 것인가, 자연의 경고를 알아듣는, 겸허하되 폭넓은 지구인으로 거듭날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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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중간에 어떤 분에게 느끼셨다는 연민이 꼭 늘 제 자신에 대한 반성보다 다른 사람들의 티끌을 보고 흥분하는 제게 하시는 말씀같아 뜨끔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지진이 처음 일어났을 때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지내는 제가 남편에게 전해듣고 '그게 뭐'라고 생각한 저의 무심함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렇게 절절했던 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주시는 것 같은 미탄님의 문장에 또 한번 공감하며 읽어내렸습니다. 좋은 문장이란 이런 것이구나 감탄하기도 했지요. 미탄님의 이 글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인류에게 보내진 이 메세지를 그 인류의 한 점인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생각해봅니다.

    2011.03.20 22:39 [ ADDR : EDIT/ DEL : REPLY ]
    • 에궁~ 별 글이 아닌데 과찬의 말에 민망하네요.^^
      글에는 선언적인 요소도 있어서 늘 의식을 앞지르지요.
      적어도 빈 말은 아니었으니,
      보이지않는 곳에서 씨앗으로 움터 언제고 우람한 나무로
      커나가기를 바랄 밖에요.

      2011.03.21 00:08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