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12. 27. 23:59

글을 쓰면서 나를 드러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이란 내 생각을 온전하게 이해해줄 완벽한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연애편지다. 나의 경험을 통털어 가장 애틋한 것, 나의 마음을 통털어 그 중 지순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읽는 이의 마음을 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를 떠나서는 한 줄도 쓰여질 수 없는 것이 글이다. 논문이나 기사처럼 공적인 글에도 주제선정이나  풀어나간 방식을 통해 글쓴이의 일면이 드러날 정도이니 에세이 같은 사적인 글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어떤 측면이 있다고 하자. 주도면밀한 자기검열을 통해 피하고 싶은 부분은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측면은 속절없이 노출된다. 숨는다고 머리는 파묻었으되 꽁지는 하늘을 향해 치켜든 꿩의 형국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글쓰기의 속성을 인정하고 글을 통해 나를 풀어내는 것을 즐기는 편이 낫다.


2007년 변경연의 마음편지 필진으로 활동하던 때, 독자들에게서 답신 받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감성적인 속내를 드러낸 글에는 답신이 많은 반면, 이론적으로 쓴 글에는 약속이라도 한듯 답신이 끊기곤 했다.  그 때 그들이 논리적인 훈련이 안 된 탓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사람들은 글 쓴 이가 드러난 글을 좋아한 것이었다! 그 후에 ‘글쓰기 생각쓰기’에서 ‘글 쓰는 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구절에 접하고 무릎을 쳤다. 글은 곧 나 자신이다. - 엄밀히 말하면 ‘이상적인 나’이다. 언어에는 선언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니 글을 쓰면서 내가 드러날까봐 저어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나를 보여줄까 그것을 고심해야 할 것이다.


조촐하게 글쓰기강좌를 하고 있는데, 수강생들의 글을 읽다보면 같은 사람의 글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날 때가 있다. 자기를 사로잡고 있는 것에 대해 쓴 글에서는 긴장감이 새어 나온다. 문장은 단호하고 속도는 빠르다. 하고싶은 말이 명확하므로  우왕좌왕하지도 않는다. 글의 행간에서 절실함이 느껴진다. 이럴 때면 글을 꽉 채우고 있는 에너지에 포획되는 기분이 든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글을 읽으며 저자가 어떤 심경으로 썼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열렬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쓰는 것은 기본이다. 쓰는 이 자신도 빠져들지 못한 글에 빨려들 독자가 어디 있겠는가?  독자를 잡아당기고 싶다면 우선 쓰는 사람이 불타오를 것!  살 떨리게 화가 났던 순간, 무릎이 팍 꺾어지며 좌절했던 순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상처, 마음 한켠에 담아둔 소중한 기억을 불러내라. 지금 간절하게 원하는 바로 그것도 남겨두지 마라. 그것들이 반드시 대단할 필요는 없다. 일상을 스쳐가는 소소한 장면이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드러내라. 글쓰기에 뜻을 두었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오죽하면 작가란 자기 치부노출증 환자라는 말이 있겠는가!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상대방의 정서에 다가서는 일이다.  나의 속살을 드러내면 읽는 사람은 무장해제된다. ‘내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지, 나의 분노는 당연한 거야’ 혹은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구나, 맞아, 이처럼 연약한듯 강하고, 좌충우돌하며 나아가는 것이 사람이야’하는 공명이 이루어진다. 이론만으로 이런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감정을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김태원의  ‘가장 듣고 싶은 한 마디 Yes!’에는 흥미로운 예화가 나온다.


한 남자가 뇌종양 수술로 감정을 관장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특히 언짢은 느낌과 나쁜 선택과의 관계를 전혀 몰랐다. 수술을 통해 그는 정상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지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며 지능지수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는 결혼과 사업, 대인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투자를 잘못해 재산을 날렸다. 정서를 잃었는데 이성을 상실한 결과를 빚은 것이다.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이 연구는 뇌 과학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한다. 감정은 의사결정의 방해 요소가 아니라 필수 요소임이 증명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그토록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이며, 읽는 이의 정서에 호소하는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정서반응을 활성화시키지 않는 한 생각 자체만으로 뇌가 정보를 활용하기는 힘들다’니 논리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싶을수록 정서를 움직여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솔직해야 한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대가 내면 깊은 곳을 탐험해 들어갈수록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뜨겁게 다가서야 한다. 스스로의 믿음으로 읽는 이를 전염시켜야 한다.   많은 사람이 편지쓰기에 글쓰기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편지는 받는 사람이 있으며 반드시 할 말이 있다. 우리는 간곡하게 정성을 다하여 편지를 쓴다. 하물며 연애편지라면 더할 나위도 없겠지. 사랑을 강요할 것인가? 구걸할 것인가? 나의 사랑으로 너를 잡아당기기 위해서는 나의 진짜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겠는가!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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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사랑으로 너를 잡아당기기 위해서는 나의 진짜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겠는가!..

    이 글귀가 제 맘에 새겨집니다..

    너무 솔직한 것이 나의 단점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가려진 부분이 있네요.
    그 곳이 저의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이겠죠..ㅎㅎ

    요즘 언니의 미스토리에 대한 실천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나를 알지 못하니 껍질을 깨지 못하고 성장도 멈춰있는 것 같아요.ㅎㅎ

    고통을 느끼며 껍질 깨기를 두려워 말아야겠어요.^^

    미탄언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공 늘 행복하세요~~

    2010.12.29 11: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그러게요. 토댁님이 껍질을 깨는 고통을 얘기하니
      좀 어리둥절하네요.^^
      미스토리 참 좋아요.
      한 번 시도해 보시기를!

      2010.12.31 13:46 [ ADDR : EDIT/ DEL ]
  2. 친정집에서 지내는 일주일동안 소설 두 권을 읽었어요.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와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자기 얘기일수도, 또 자기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인듯한 그 소설들을 읽으면서 혹시 작가와 아는 사람들중에 '어 이거 내 얘기아냐?'하고 생각하고 '왜 이걸 여기다 썼어!'하고 화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싶었어요.
    가끔 내 얘기,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흘러나오는데로, 내가 말하고싶은데로 쓰고싶은 욕망을 느껴요. 그러다가도 슬그머니 '그 사람들이 행여라도 보고 속상해하면 어떡해..' 걱정하고, 더 솔직히는 그 사람들 얘기를 하다보면 결국은 내가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써야하고, 그러다보면 종당에는 부끄럽고 감추고싶은 '내 욕망, 내 마음'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 때문에 글쓰기가 주저되는 거예요.
    이러니 저는 참 글쓰기가 어렵겠지요...-.-

    2010.12.29 21: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누구나 갖는 심경일 거에요.
      그런 부작용과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가 워낙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녔으니까 그 길을 가는 거지요.
      똑순맘이 얘기한 바로 그 지점에서 소설이 탄생하는 건지도 모르구요.

      2010.12.31 13:47 [ ADDR : EDIT/ DEL ]
  3.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요새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글에서도 상대방에게 다가가려면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걸 왜 몰랐을까요? ^^;

    2011.01.05 1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글쓰기 참 좋아요.
      정리, 위로, 발굴, 비움, 도약, 성찰, 학습을 한 방에 해결하는 도구가 어디 흔한가요!

      글쓰기에 다가가시는 것을 축하드리구요,
      님이 확인하듯
      나를 열어보여야 상대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있는 것은
      관계나 마찬가지겠지요~^^

      2011.01.05 11:38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