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책2010. 12. 22. 04:11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던 프랑스가 틈을 비집고 다가온 적이 있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었을 때였다.  허구가 아닌 자전적 경험으로만 소설을 쓰는 작가로 유명한 그녀는 이 책에서, 유부남인 외국인 대사관직원 A와의 사랑을 지독하게 그려 놓았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 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의지와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동은 오로지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문장은 건조할 정도로 간결한데 내용은 인간의 경험이 갈 수 있는 한계까지 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작가요 대학교수라는 직업은 둘째 치고 한 사람의 여자로만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탐닉적이고 솔직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독에 빠져 끝까지 가고자 하는 열정은 무모했고, 반최면상태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명징하게 그려내는 솜씨는 비정했다. 얇은 책 속에 펼쳐놓은 욕망의 두께에 혀가 내둘러지는데, 그녀는 이같은 열정이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고 한다.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 하여 장면 하나 하나를 완성하고, 몇 달에 걸쳐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부분만 읽을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단순한 열정’은 출간된 지 6년 만에 그 책을 똑같이 따라 한 필립 빌랭의 ‘포옹’을 통해 다시 한 번 부각된다. 그는 대학신입생 시절에 편지를 통해 저명한 작가인 그녀와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33세 차이가 난다고 해도 어느 연인 못지 않게 격렬했던 5년간의 연애를 책으로 펴냈다. 이미 아니 에르노가 거침없이 표현해 둔 바 있는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 한 것이다. 거 참, 사람들 한 번 자유분방하네. 그들이 작가 중에서도 튀는 것일까, 아니면 프랑스에서는 그다지 별스럽지 않은 상황일까, 그들을 보며 난생처음 프랑스에 관심이 생겼었다. 


‘포옹’에서 필립은 ‘단순한 열정’의 A에게 심한 질투심을 드러내고 있다. 아니 에르노가 A를 사랑하는 방식 그대로 자신을 대하는 것에 멀미를 낸다. 그런데 그것은 살아있는 인물 A에 대한 것이 아니라 책 속의 인물에 대한 질투심이다. 그런가하면 수시로 ‘단순한 열정’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며 그 책과 자신의 상황을 오버랩시킨다. 필립은 처음부터 ‘단순한 열정’을 통해 아니 에르노를 사랑했으며,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 A가 아니라 글쓰기였던 것이다.  필립이 A에게보다 아니 에르노가 작업하는 자세에 대해 더 극심한 질투를 느끼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오전 열 시면 어김없이 서재로 일하러 갔다. 그녀가 ‘글쓰러 간다’고 하지 않고 ‘일하러 간다’고 말하는 것이 ‘글쓰기가 쉬운 것, 하늘에서 떨어진 재능, 일순간의 영감이 아니라 온갖 수치와 괴로움을 바탕으로 성취되는 것이고, 아주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일상의 투쟁 뒤에야 글로 변모하는 노동의 일종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필립은 쓰고 있다.


이쯤 되면 이런 의심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들이 소중한 경험을 마무리하는 의식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의미있는 경험을 자초했다는 의심 말이다. 필립은 세 번째 소설까지도 자전적 경험에 기초함으로써 철저하게 아니 에르노를 답습하고 있다고 하거니와, 아니 에르노도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녀의 다른 책 ‘집착’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하지만 동거는 하기 싫은 애인이 떠난다고 한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이유가 새 여자 때문이라는 사실은 갑자기 생의 활기를 가져 온다. ‘집착’은 그 여자에 대한 질투심을 다룬 책이다. 아니 에르노는 스토킹에 가까울 정도로 그녀를 탐색하며, 아주 작은 단서도 그녀에 연관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갖가지 강박관념을 선보이고, 둘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오만가지 구상을 시도한다. 빵으로 사람형상을 만들어 핀을 꽂아가며 저주하는 ‘방자’ 까지 내려가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니 더 말하면 무엇하랴. 한 가지 감정에 대해 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훌륭한 텍스트가 될 정도로 반복되던 상념은 서서히 끝나간다. ‘단순한 열정’에서 욕망이라는 자산을 탕진했듯이, ‘집착’에서는 이 폭력적인 저주를 끝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가고, 지독한 탐닉도 가고 글쓰기만 남는다. 처음 한 두 번은 먼저 경험이 있고 나중에 글쓰기가 있었을지 몰라도, 한 번 이 궤적에 빠져들면 그 순서가 바뀌기도 하리라. 글쓰기를 위해 일을 만들고, 감정을 과장하고, 금기에 도전하여 한계까지 가 보는 것이다. 글쓰기는 더 이상 내 현실이 아닌 것을 간직하는 짜릿한 방법이기에 인생을 두 번 살고 영원히 사는 매혹이다. 글쓰기가 앞서가고 삶이 거기에 종속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들처럼 단지 ‘정념’에 국한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의 소재와 열정을 찾아 의미있는 경험을 만들어내야 하리라는 생각이 간절할 때, 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훑어보게 된 것은 무서운 동시성이었다. 발걸음을 떼어 놓으며, 새로운 장면에 접어들며 이것이 어떻게 글로 전환될지를 궁리한다. 어떤 수치심, 어떤 나락에 빠져들어도 글쓰기에 활용될 것이기에 괜찮다. 삶과 글의 사이에 어떤 경계도 없이 나란히 간다. 아니 에르노만큼은 아닐지라도.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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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탄님의 두번째 책이 기대되요.
    '작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모두 똑같지는 않겠지만, 그 삶의 한 풍경을 커텐을 들어 슬쩍 들여다본 기분이예요.
    미탄님도 이미 그 세계에 들어가신 것 같고요.

    2010.12.29 21: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 내 글이 별 것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어요.
      다만 마음을 다 해 가고 싶은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지요.

      2010.12.31 13:48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