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10. 11. 7. 10:00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과거를 태우다

묵은 일기를 들춰보다가 그 초라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 태워버리다. 사실은 J와 멀어지던 시점의 정황이 궁금해 떠들어보기 시작했는데 그 때의 일기는 없었다. 최근 것도 없고 85년부터 95년까지의 일기만 있었다. 전업주부 8년간 그리고 막 일을 시작하던 무렵이다. 살림을 하던 8년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문제, 똑같은 자괴감을 곱씹었는지 똑같은 희망조차 넋두리에 가까울 지경이었다. '날고 싶다, 춤추고 싶다'처럼 지극히 관념적이기도 했다. 도달하고 싶은 구체적인 풍광을 그려라!  요즘에는 너무 당연해서 식상할 정도의 경구인데, 그 지점까지 오는데만도 너무 많은 세월이 걸린 거다.
 
불길이 커지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조금씩 찢어 던지며, 이 한 장에 나태를, 이 한 장에 시간허비하는 못된 습관을, 이 한 장에 대책없는 과잉낙관주의를 담아 태울 수 있기를 갈구했다.   내 삶도 아무런 의미 없는 에피소드,  그저 남루하기 그지없는 삽화에서 정지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거다. 이제 더 이상 응석도 자만도 없다. 내 힘으로 일구어낸 것, 가령 내가 쓴 책, 내가 필요할 때 힘이 되어줄 네트워킹, 통장잔고... 내 것만이 내 것이다. 영원히 철들지 않는 피터팬에서 비로소 어른이 된 느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디에서 살 것인가

평창의 Abbey Road에서 사자엠티가 있었다. 세 번째 방문이다. 이 주변은 고즈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을뿐
큰 관광지가 없는데 띄엄띄엄 펜션이 있다. 근처에 두 채의 집이 있을뿐 적막강산이다. 토목출신이라는 쥔장이 모든 가구를 직접 만들었다는데, 그 정교하고도 세련된 매무새에 놀란다. 도시에서 가구만 만들어도 잘 살 것 같은데, 그는 산 속에서 고기를 굽고, 사람을 맞이한다. 문득 이런 곳에 말 통하는 사람 몇이 집을 짓고 모여살아도 좋겠다 싶다. 서로에 대해 애정이 있고, 함께 나이들어가기로 작정한 이웃, 노는 방식도 비슷하거니와 나름대로 각 분야에 일가견이 있어 일 년에 한번쯤 테마있는 축제를 열 수 있는 곳!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랜만에 미탄에 가 보고 그 수려한 풍광에 새삼 놀랐다.  물이 많이 빠져 있었지만 옛날의 그 느낌을 되살리기엔 충분했다.  물가를 따라 이웃마을에 가다가 굽이치는 물살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름다울 미, 여울 탄이라니 이름값을 하는 셈이고, 이 곳에서의 추억을 그토록 아름답게 보존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다음에 어디에서 살 것인가!  오랜 숙제였는데 미탄이라면 필연성은 있는 셈이다. 의도적인 의미부과 이전에 그냥 그러고 싶다.  이 사진을 바라보는데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싶고, 가슴이 설레인다. 그러나 삶은 생활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거주지는 생계를 해결하는 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은퇴후의 전원생활이라 해도 추억이나 풍광 보다는 최소의 관계망이 있어 생활을 기약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아직은 먼 훗날의 얘기지만 그리움의 범벅 속에서 하나의 생각이 정리된다. 가슴에 묻어둔 이 곳은 일 년에 며칠 간의 여행으로 족할지도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삼모녀가 직지사에

모처럼 엄마, 언니와  김천 직지사에 갔다. 덧없이 빠른 세월 속에 장면 하나를 남기고 싶었는지 언니의 초대로 이루어진 자리이다.  언니는 밥 사고, 차표 끊어주고, 감에 밤에 떡에 내 머플러, 장갑까지 챙겨왔다. 예전에도 그랬다. 나는 20대 내내  지방으로 떠돌고, 언니는 일찍부터 든든한 맏딸이었다. 언젠가 한 번 그 날도 돌아다니다 집에 오니 엄마와 언니가 막 센 일 하나를 해치우고 숨을 고르고 있다가 혀를 찼다. "재는 일 안 하고 살 것 같아"  사실 그렇게 되었다. 가사노동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니 말이다. 그 때부터의 세월이 아득하다. '그 일'을 안한다면 '다른 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야 할 텐데, 내가 하고있는 일이 언니가 살림하는 절대량에 택도 없다.  다르면 다른대로 각자 추구하는 자리에서 모두 잘 살아서 서로를 받쳐줄 수 있어야 할 텐데...  서로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애요, 사랑인지도 모른다.

너른 터에 편안하게 자리잡은 대사찰에서 소슬한 가을정취를 맛보았다. 이제 정말 빠른 속도로 노쇠해지시는 엄마를 모시고 장거리 여행을 가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비밀댓글입니다

    2010.11.08 11:33 [ ADDR : EDIT/ DEL : REPLY ]
    •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에서 묘지스님이,주부로 '앵앵거리며' 사는 것이 못내 헛헛하던 삶을 살다가
      잠시 수련차 왔던 절에서 출가를 하고, 그것으로 속세의 인연이 끝났다던 것을 보며 내게도 있는 기질을 극대화한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무슨 세속적인 가치보다도 내면의 불덩이를 따라가는 일이 중요한 것 같기는 해요. 원하는 것 하나를 얻기 위해 나머지 전부를 버리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이만큼 살아보니, 벼랑으로 내달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사회인으로서의 다소곳한 책임을 다 하면서 실존적인 욕구도 달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해 보여요.

      이미 님은 많은 것을 가졌구요, 성취를 위해 결핍을 자초할 수도 없는 거구요. 혹시라도 간절함이 부족하다해도 세상 무슨 일이든 100%의 동력 만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잖아요. 일단 무엇이든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움직이다 보면 조금 미진한듯한 에너지도 채워지리라 생각해요.

      2010.11.08 19:16 신고 [ ADDR : EDIT/ DEL ]
  2. 휴. 제 일기를 태우는 일은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자기애 같은 것이 지독한 편인지라 못난 부분도 자꾸만 끌어안고 변명하려 해요.
    일전에 한 선배가 첫 아이의 태명을 미단이라 지었길래,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혁명은 '아름다운 단절'이니까." 하고 대답했었어요.
    그렇구나... 생각하면서도 저는 그 아름다운 '단절'이란 것이 두렵기만 했지요.

    떠나보내는 것, 잘 이별하는 것을 통해 극복해야할 시대가 분명히 짧은 제 인생에도 수두룩할텐데 늘 망설이고 스스로를 얽어매는게 버릇이 된 것 같아 문득 갑갑해집니다.
    작은 변화들, 구태의연한 희망과 다짐들, 그런 것들 속에서도 오늘 하루 무언가 진전이 있기만을 바래봅니다.

    사찰앞에 선 세 분 사진이 참 좋아요. 가을에는 이런 날도 꼭 있어야할 것 같아요.

    2010.11.09 21: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이별과 극복, 갑갑함... 이런 단어들 당분간 잊어버리고 살아도 될 것 같아요.
      생명을 둘이나 품어 자기 몫의 세상을 마주할 수 있도록 사람을 만드는 일에 진력하는 일, 그 어떤 일보다 귀하고 중요한 일인 걸요.

      ㅎㅎ 사진은 누가 '오래된' 사람들 아니랄까봐 하나같이 측면으로 선 모습이 재미있지요?

      2010.11.10 21:19 [ ADDR : EDIT/ DEL ]
    • 호호. 그래도 2:1의 구도가 혁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실은 저도 측면을 좋아해요. 서로 기대고, 안아주는 듯한 자세가 저한테는 더 편해요. 사진기를 정면으로 바라보는건 좀 힘든 일인듯..

      2010.11.11 23:07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