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10. 25. 13:21
김영하는 질리지 않는다. 그의 장편소설 세 권, 단편소설집 두 권, 산문집 두 권을 읽었어도 자꾸만 더 읽고 싶다. 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독자들이 그러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요, 연예인 못지않은 팬을 거느린 인기작가이며, 수많은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고 있어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최정상급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감탄과 부러움, 시새움이 뒤섞인 시선으로 그의 책을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가지망생이나 비평가가 아니므로 세심하게 뜯어보고 분석한 것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훑어내려간 성격급한 독자의 직관에 다가온 것을 정리해본다. 그는 아주 실험적인 방식의 장편 ‘아랑은 왜’에 자신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공개해 놓았지만  따분해 보여서 읽지 않았다.


그는 빠르다. 짧고 간결한 모든 문장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끝없이 묘사만 하는 소설은 지겹다.  도입을 읽다가 질려서 소설책을 덮은 적도 있는데 그는 불문곡직하고 사건으로 들어간다. 그에게서는 빼어난 비유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날카롭고 풍자적인 문장이 곳곳에 들어 있다.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

‘적절한 지능과 배려, 유머만 있으면 채팅방도 파리의 살롱이 될 수 있는 것’


그는 내용전개에 있어서도 빠르다. 언제나 독자가 예상하는 것 이상을 내놓는다.  ‘퀴즈쇼’에서는 퀴즈를 푸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의 가상세계를 등장시켰고, ‘빛의 제국’에서는 스무 살이나 어린 남자와의 연애만도 파격인데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첫 장편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자살을 도와주는 주인공의 직업도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속도감있는 문체로 기발한 상상력을 풀어놓되, 거기에 만만치않은 내공을 깔아놓기! 여기에 김영하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관찰한다. ‘개는 부르면 온다. 고양이는 메시지만 받고 오고 싶을 때 온다.’ 지극히 사소한 일상도 그의 눈에 걸리면 이렇게 감각적인 문장으로 탈바꿈한다. 그의 관찰력은 타고난 이방인의식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그는 성장기에 군인가족으로서 자주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딱히 그래서만도 아니겠지만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즐기지 않는다고 한다. 하긴 자신의 머리 안에서 벌어지는 상상만 따라가기에도 바쁠지도 모른다. 아이도 낳지않았을 정도이니 그가 지구에 대해 품고있는 불신과 이질감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크든작든 어떤 사회와 완전하게 융합되어 있는 사람은 그 사회를 그려내지 못한다.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서 그 사회를 점령하는 질서와 규칙, 구성원들의 사고방식, 삶의 방식에 의문점을 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머지않아 다문화가정에서 걸출한 작가가 나올 것이라 예견하기도 한다.



집중적으로 김영하를 읽다보니 그가 땡겨할 만한 문맥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홈페이지에 올렸던 편안한 산문을 모은  ‘랄랄라 하우스’에서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헌책방에서 자신이 쓴 책을 만난 저자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못 본척하고 슬쩍 지나치는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경로를 추적해보기도 한다. 심지어 그 책에서 저자 자신의 사인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개님께 드립니다”라고 정성들여 쓴 자기 서명본이 헌책방의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걸 보는 저자들의 마음은 아프다. 복수를 결심한 사람도 있다. 버나드 쇼는 헌책방에서 발견한 자기 서명본에다 다시 서명을 하여 그것을 내다 판 주인에게 친절하게 우편으로 부쳤다.

“삼가 다시 드립니다.”


스팸메일의 대부분은 음란성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음란스팸메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  ‘영광된 칭호’이다. 그들은 기초적인 ‘음란’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음란을 빼고 대신 한심을 붙일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한심이 부담스럽다면 한숨도 괜찮다. 밤새 열심히 일한 당신, 포르노 사이트를 선전하느라 날밤을 새운 분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도 정당한 평가를 못 받는 이유는 그것들이 낯뜨겁고 민망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가? 그는 늘 정곡을 찌른다. 나도 그 상황이라면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을 꼬집어주고, 나도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을 정확하게 대변해 준다. 동시에 독자의 상상력을 선도하여 우리의 사고영역을 확장시켜준다. 그는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김영하는 어떻게 김영하가 되었을까?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 그것으로 친구들을 정렬시켰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에 흥미로운 요소를 더하여 각색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성만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그는 전공도 아닌데 작가가 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열렬한 독자로 무던히도 읽다가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끄적거리다가 남들이 읽을 만하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작가가 되는 거지요. 세상의 거의 모든 작가는 바로 이 길로 걸어왔을 겁니다. 전공 같은 건 잊어버리세요.”


상상력의 원천은 누구에게나 독서인 것이다. 아마 그는 그 누구보다도 많이 읽는 독서광일 것이다. 직업밑천이기 이전에 그만한 탐구열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독서력은 그의 책들에 스며들어, 그의 또 하나의 매력인 박식함을 구성한다. 나는 어떤 작가가 출간을 거듭하며 문장력이 향상되는 것을 보기를 즐기는데 그역시 예외는 아니다. 첫 장편과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빛의 제국’을 비교해보라.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글쓰기를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작품론을 잘 드러내주는 어록으로 글을 맺는다.


소설은 장기가 아니다. 말은 얼마든지 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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