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10. 7. 23. 10:37


휴학한 아들이 울산의 한옥건축학교로 떠났다. 3개월 과정. 이번 기수에는 11명이라니 도제식 교육을 받기에 적당하지 싶다. 한옥에 대해 배우려는 기존 목수들이 많고 여자도 한 명 있단다. 아들이 막내. 전에는 주로 정자를 지으며 실습을 했는데 50평짜리 한옥을 의뢰받아 직접 지으며 배우게 되었다고 좋아한다.

 

아들을 보내는 심정이 착잡했다. 관련글 http://mitan.tistory.com/616  그러던 중에 내촌목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김서령의 인터뷰모음집 ‘삶은 천천히 태어난다’에 11명 명장의 한 사람으로 소개된 것으로 보아 꽤 유명한 모양인데 나는 처음 접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그에 관한 자료가 무척 많았다. 그의 이력이 대중이 호기심을 갖출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섭, 마산출신, 가출을 일삼다가 고1 때 자퇴, 문득 대학이 가고 싶어 서울대 서양화과에 진학, 졸업 후 태백의 한옥건축학교 수료, 집 짓는 일을 하다가 가구로 전환, 몇 번의 서울 전시회에서 출품작이 전부 팔리는 성황을 이룸, 청담동에 전시장 ‘내촌목공소’ 오픈, 마흔의 싱글.


그의 라이프스토리에 접하고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가 내 심장에 대고 성냥개비를 그어 댄 것 같았다. 사실 이건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이 아니냐? 25년 전 잡지에서 풀무학교에 대한 기사 한 편을 읽고 터덜터덜 홍성으로 내려갔을 때, 12년 전 맨손으로 학원건물을 지었을 때 내게도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나는 도중에 발을 뺐고 이제 아들이 자신만의 세상을 갖고 싶다고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에게는 스토리가 있다. 고교과정을 가볍게 뛰어넘고도 서울대에 들어갔는가 하면 남들이 다 가는 대로를 마다하고  강원도 홍천읍 내촌면 산골로 들어갔다. 그런데 산골에서 만들어낸 가구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되었다. 소비와 화려함의 상징인 청담동에 ‘내촌목공소’라는 촌스러운 상호를 내 건 뱃심이여! 그는 돈을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다고 한다. 사회의 주된 가치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상상력과 실행력에 매료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스토리를 퍼뜨리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들과 함께 내촌에 가고 싶다.  내촌에 가서 아들에게 묻고 싶다. 너에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너를 던질 순정이 있느냐, 스스로 몰입하여 그 에너지로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만한 열정이 있느냐,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도 묵묵히 네 길을 갈만한 뚝심이 있느냐, 매혹적인 창조를 할 수 있는 실력을 연마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 너의 삶을 감동적인 스토리로 만들 수 있는가 하고. 동시에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도 던지고 싶다. 뜻은 있었으되 나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나는 과연 그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가. 


이정섭은 그동안 목공소, 살림집, 전시장, 손님방, 화가인 친구의 집을 지었으며 쇠락한 감자창고를 사들여 갤러리로 꾸몄다고 한다. 그 곳에서 화가들이 모여 전시회를 열고 패션쇼를 기획한다고 한다. 젊은 목수 한 사람이 산골로 들어가 조용한 혁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산골을 택했는데 누구보다 먼저 도심으로 직행하게 되었다. 혼자 살고자 하는데 사람들이 그를 보려고 찾아온다. 사회에서 이탈하는 것 같았는데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가구를 만드는 서태지다.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개성과 자유의 아이콘이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낸 개척자다. 나는 그가 만들어가고 있는 마을이 부럽고, 마을을 채워가는 실험정신이 부러워 한숨이 나온다. 그가 던지는 질문 덕분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그림을 그려보고, 그 길을 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따져 보고 있다.

이정섭의 집 탐방기사 바로가기

http://www.storysearch.co.kr/story?at=view&azi=154964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시이라젠느

    언제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네요..
    나우사회원들과 MT로도 한번 가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2010.07.24 11:27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젠느님 부부도 전환하느라 골몰하고 있는데요,
      어제 무슨 책에서
      박정희가 혁명에 성공한 나이,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한 나이가 43세라는 것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구선생님도 그렇고, 나도 학원을 증축했을 때가 42세였거든요.
      나 혼자만 겪는 혼란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에 내재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편안하게 그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지 않을지요?

      전환에 필요한 요건을 낱낱이 짚어볼 수 있는 사례였지요. 스토리를 완성하는 필살기와 매혹...

      2010.07.25 08:32 [ ADDR : EDIT/ DEL ]
  2. 사과상상

    안녕하세요. 매일 눈으로만 보다가 처음으로 답글을 남깁니다.
    위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PC 포맷 후 이 곳의 주소를 잊어버려 오늘에서야 찾았습니다 +_+
    다시 오니 너무 좋고 <- 아무도 안 반겼지만...
    이번에 쓰시는 책 나오면 또 열심히 볼 수 있겠네요.
    이 자리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07.27 14:02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존재를 충심으로 반겨 주시니 영광입니다.
      자주 놀러오셔서 흔적 남겨주시면
      제가 열심히 반겨 드릴게요:)

      2010.07.28 00:08 [ ADDR : EDIT/ DEL ]
  3. 주홍락

    오늘은 학교를 안갔어.
    어제.. 갑자기 기숙사 집주인이 더럽게 쓴다고 나가라고 해서
    급히 다른 곳으로 이사왔지.. 학교는 점심때에서야 얘기해주고 포터도 뒤늦게
    빌려다가 냉장고며 정수기등을 날랐지..
    형들이 나보고 그러더군.. " 니가 이렇게 짜증난거 보면 말 다했다 "
    아무튼.. 학교가 행정적으로 너무 미흡하고 준비가 안되있어..
    그래서 어제 이사하고 술먹고 오늘은 놀러나왔어 .

    내촌에 같이 가자구.
    이정섭씨처럼 살고 싶구만.

    스타크래프트 2 나 한번 해봐야 겠어.

    2010.07.27 14:55 [ ADDR : EDIT/ DEL : REPLY ]
    • 아무리 시골이라도 전세계약이나 약속이 있을 터인데
      너무 하네~~ 더운데 애썼다.

      내촌에 가면 대답을 해야 하는뎅^^

      2010.07.28 00:10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