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 대담,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좋은 경기를 보면 감격에 겨워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난다. 그리스전에서 박지성이 공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병아리를 나꿔채는 솔개의 형상이었다. 무언가 될 것 같다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 누구의 추격도 허용하지 않으며 자로 잰 듯 직선으로 공을 몰아넣을 때 나는 전율했다. 나이지리아전에서 박주영의 프리킥도 감동적이었다. 부드럽게 휘어지며 골키퍼의 면전에서 튀어오르는 공의 궤적은 도화지에 그린 선처럼 우아했다. 자신의 두 손을 맞잡고 흔드는 박주영의 감격은 순식간에 보는 이들에게 전염된다. 종전의 자책골로 해서 심적 부담이 컸을 그의 만회가 고마워 우리도 덩달아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치게 된다.

전쟁이 사라진 현대의 영웅은 단연코 스포츠 스타이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는 게임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용호상박, 실력이 비등한 맞수끼리 팽팽한 접전을 보여줄 때, 출중한 기량을 가진 선수가 멋진 플레이를 보여줄 때 우리가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구를 그들이 대리만족시켜 주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감히 그 열쇠를 ‘신화’에서 본다.

한 생명이 태어날 때, 아기는 이미 인간이라는 종에 내재된 속성을 갖고 태어난다. 같은 기관, 같은 본능, 같은 충동, 같은 갈등, 같은 공포를 가졌기에 언제 어디에 살든 기본적으로 같은 인간의 마음! 이것이 우리의 표면적인 삶을 지탱해주는 무의식이며, ‘은유’라는 가면을 쓰고 ‘이야기’로 구전되어 신화가 되었다. 그래서 전 세계의 민담과 설화는 모두 똑같다. 하나의 대본을 가지고 지역상황에 맞춰 각색한 것처럼 표현만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신화는 누구를 위한 것이겠는가?  인간이 삶에 대해 갖는 모든 기대와 의미, 의문과 경험이 모두 그 안에 농축되어 있지 않겠는가?

조셉 캠벨은 열 살 무렵 지리적으로 뚝 떨어진 지역의 민담이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이후 84세로 영면할 때까지 철학, 역사, 예술, 종교, 문화인류학 같은 주변학문을 망라하여 신화를 연구한 그의 생애 자체가 신화가 되었거니와, 그의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이렇다. 우선 ‘금기’가 있다. “사과를 따 먹지 마라”거나, “주변에서 놀되 북쪽으로는 가지 마라”는 것들. 물론 이 금기는 지켜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금기를 깨뜨림으로써 자기 삶에 입문하게 된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금제에 불복하는 순간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길을 떠난 주인공은 갖은 역경에 시달린다. 이 어려움은 이 사람이 정말 영웅인지 아닌지, 이 사람이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누군가 예비해놓은 관문이다. 드디어 난관과 시험을 통과하여 살아 돌아오는 사람은 영웅이 되어 귀향한다.

캠벨은 모든 신화는 메타포-은유라고 한다. 모험 중에 만나는 용은 ‘자아에 속박된 자기’이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의구심과 두려움, 불안과 게으름이 가장 큰 적이라는 것. 그러니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인 셈이다. 나의 한계를 무릅쓰고 자기다운 삶을 쟁취할 때 우리 모두 영웅이 되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나 예수처럼 세상을 구하는 이들만이 영웅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구하는 자도 영웅이다. 우리 자신을 구하면 세상도 구원되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있는 인간의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세계를 구원한다.

영웅이 찾아 헤매는 것은 ‘살아있음의 경험’이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낯선 상황에 자신을 던져 넣은 것이다. 삶의 미궁을 거치며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천복’안에서 머무는 삶이다. 물론 어떤 것이 천복이라고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고, 천상의 춤을 추는 듯한 지복을 누리는 사람에게서 뻗쳐 나오는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그들이 도달한 어떤 경지 앞에 우리는 열광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 자신의 잠재력을 구현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지금 이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이다. 우리의 삶은 지금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깊고 넓다.’ 신화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삶은 대부분 규격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모험보다는 안전을, 천복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택하여 살아간다. 의외의 상황에 자신을 던져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에 대해 끝내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이제 모험과 의외성이 남아 있는 영역은 스포츠로 대폭 축소되었다. 우리는 스포츠스타에게서 모험에의 충동을 대리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그저 영웅을 보는 것만으로 신화적 DNA를 달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아직 '나의 신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고 나도  내 그라운드에서 박지성, 박주영이 되기를 갈망한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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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명력이 있는 인간의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세계를 구원한다.' 너무 와닿네요.. 한 명 한 명이 생명력을 되찾을 때, 우린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구나.. 라고 느끼게 될까요?

    2010.07.12 13:18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그럼요, 박지성 박주영처럼 순한 독종들이 온 국민을 살 맛나게 해 주고, 그들처럼 열심히 살고 싶게 하고, 각자 자기 그라운드의 주인공이 되고 싶게 하는 것처럼요.
      최근에 돌아가신 법정스님, 장영희교수님을 봐도 그렇구요.
      조셉 캠벨이나 릴케처럼 좋은 책을 남겨서 두고두고 후학들에게 상상력을 주는 것을 보세요!
      그러니 우리도 있는 힘을 다 해 생명을 불사르자구요.^^

      2010.07.12 20:22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