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4. 9. 11:05
 

조촐하나마 글쓰기강좌를 하고 있다. 간혹 쓸 것이 없다는 사람을 본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대가 가장 골몰하고 있는 바로 그것’에 대해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나 깨나 나를 점령하고 있는 그것, 애써 다른 생각을 좀 해 보려고 해도 어김없이 되돌아오곤 하는 지점, 그것은 나의 강박관념일 수도 있고 결핍일 수도 있겠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강박관념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작가란 결국 자신의 강박관념에 대해 쓰게 되어 있고, 우리를 욱조이는 강박관념에는 힘이 있기 때문에 회피하지 말고 차라리 정면돌파를 하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딱 어울리는 사례를 하나 기억하고 있다.


10여 년 전에 만화 ‘누들누드’를 보았다. 내가 성인이 되어 읽은 유일한 만화책인 그 책에서 저자 양영순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性을 형상화했다. 동서고금에 性처럼 은밀한 금기어가 또 있을까. 누구나 관심 있고, 누구나 관련되어 있는데, 누구든지 슬쩍 피해가는 영역!  한쪽에서는 과도하게 부풀리고 다른 쪽에서는 기묘한 시치미가 공존하는 영역. 누구도 내놓고 공론화하거나 전수하지 않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람 없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은밀한 영역을 한 청년이 밝은 대낮으로 가져온 것이다.


기상천외의 상상력이었다. 비밀스럽게 가려져있어 누구나 쉬쉬하는 性을 이렇게 건강하게 까발리다니, 깜찍한 도발성이 감탄스러웠다. 아마 꽤 히트쳤을 것이다. 그 책을 읽은 지 얼마 후에 우연히 양영순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결혼을 한 후 성적 긴장감이 사라져 그만한 창작을 할 수가 없노라고 토로하고 있었다. 내게는 그 인터뷰가 굉장히 인상 깊어서 잊어버리질 않는다. 25세의 한창나이, 시달리다 못해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사안을 창작을 통해 멋지게 해소하는 예술의 특권이 이해되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절실한 주제를 파고들 때 생생하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알 것 같았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도 이와 연관되는 예화를 발견할 수 있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여느 때와 같이 워크숍을 연 첫 날, 10분간 글쓰기를 하고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아직 첫날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는 글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어린 시절’이나 ‘너무 예민했던 성격’ 처럼 첫수업에 무난한 글들이 발표된 후 데이비드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사람들의 얼을 빼고 말았다. 바로 이런 식으로 글을 읽었던 것이다.


마스터베이션, 마스터베이션, 마아아아아스...마!마!마!마! 마스터. 바 베 베 베이 션 션 션......


나탈리 골드버그는 워크숍 내내 다른 주제로는 글을 쓰지 않은 엉뚱한 청년에게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글의 규칙을 따르기보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싶은 방식으로 말하는 행위의 이면에 폭발적인 에너지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글에 적절한 재갈을 물릴 수 있다면, 주제가 바뀌더라도 이 에너지가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나는 데이비드라는 청년에게서 만화가 양영순을 본다. 데이비드는 ‘누들누드’를 창조하기 직전의 양영순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결핍에 대한 지독한 집중,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파괴본능 혹은 칵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절망을 살짝 비틀어 창조에 쏟을 때 우리는 사회적인 통념을 넘어 비상할 수 있지 않을까.  나탈리 골드버그가 강박증의 변두리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낼 수 있다고 한 것을 나는 알 것 같다.


그러니 그대를 괴롭히는 것들을 외면하지 말라. 그것이 흔드는 대로 흔들려주고 끝까지 파고 들어가 보라.  그대가 가장 갈급한 것에 힘이 있고, 그대의 강박증에 기회가 있다. 그러는 나는 결핍을 다 표현하고 있느냐고?  물론 아니다.^^ 살짝 에두르고 즐거운 거짓말을 섞어 소설을 써 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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