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2. 24. 22:38
 

나는 아무래도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언제나 내 마음이 먼저다. 젊을 때는 그렇다고 쳐도, 이 믿지 못할 나이가 되어서까지 아직도 그렇다면 조금 문제가 있는 건가.


지난 일요일 가까운 산에라도 가자며 나서다가 사건이 하나 있었다. 가방을 쌀 때까지는 분위기 정말 좋았다.  늘 얼굴 큰 것이 불만인 아들이 불쑥 말했다.

“홍빛이 머리는 대추형이야”

머리를 올려 묶은 동생의 두상이 갸름하니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내가 무심히 말을 보탰다.

“대추형? 계란형이라고 하면 미인이라는 줄 알고 대번 좋아하겠지만 대추형이라고 하면 듣는 사람이 헷갈리겠는 걸.”

이어서 얼굴과 머리의 사이즈에 대한 설왕설래 끝에 딸이 나에게 던진 말에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다.

“엄마 얼굴은 TV형이야, 그것도 와이드.”

딸애의 재치는 알아줘야 한다. 딸 덕분에 왁자하게 웃을 때가 많다. 그날도 그렇게 웃을 때까지는 정말 좋았다. 그런데 가방 메고 나섰다가 내가 일을 친 것이다.


다섯 번쯤 부른 후에야 겨우 나와서 아침을 먹고 난 딸이 그 때부터 자기 식대로 서두르는 거다. “10시 30분에 출발하자”느니, “설거지 하지 말고 가자”느니 정신을 빼더니, 가방 메고 신발신고 나선다. 물론 나는 저처럼 빠르지는 않다. 하지만 아무러면 저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 더 많다. 그리고 나는 내 속도대로 살고 싶다. 아무렇게나 옷을 꿰어 입고 애들 뒤를 따라가다 보니 슬그머니 부아가 난다. 입은 옷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다가 정신없이 움직이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탓이다. 그래서 결국 몇 마디 쏘아붙이고야 말았다.  보통 때는 손도 까닥 하지 않다가 저 마음먹은 일에는 정신없이 서둘러서 옷도 제대로 못 입었다고. 오빠랑 나는 저한테 하느라고 하는데, 자기는 무슨 교관 같이 굴 때는 우습지도 않다고.


딸과 나의 기질은 백팔십도 다르다. 내가 천생 낭만파라면, 딸은 스스로 말하길 ‘치사할 정도로 돈계산이 빠른’ 실리주의자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즉흥성을 신봉하는 나에 비해, 딸은 매사에 계획을 갖고 싶어 한다. 모녀라는 이름으로 엮이지 않았다면 같이 어울릴 일이 없었겠다 싶을 정도로 우리의 기질은 다르다. 속도도 그 중의 하나인데, 그 날은 바로 거기에서 부딪친 것이다.


당연히 분위기는 급냉각되고 딸의 얼굴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아차 싶었다. 좋은 기분으로 바람 쐬러 나선 길에 한 박자만 참을 걸 하고 후회가 밀려 왔다. 아니나 다를까 딸은 산에 안 간다며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나도 산에 갈 기분이 아니라 가까운 산책로로 빠지고, 아들 혼자만 산에 간단다.  산책길로 올라가다 뒤돌아보니 혼자 걸어가는 아들 모습이 보인다. 천천히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화기애애하기 그지없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싶다. 달랑 세 식구가 제각기 삼각형 방향으로 쪼개진 것이, 머지않은 장래에 산산이 흩어질 모습을 예고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는 왜 이럴까. 30년이 어디 짧은 세월이냐구, 딸보다 30년이나 더 살았으면 조금 언짢아도 감정을 다스리고, 따로 조용히 이야기를 하든지 했어야지. 겨우 이 정도 갈등도 해소를 못하고 분위기를 망쳐 버리다니...’

도서관에 들린 전후로 5시간이나 산책을 했다. 주말에는 열람실을 5시까지 밖에 안 하는지라 집에 일찍 들어가기도 뭣해서 계속 걸어 다녔더니, 다행히도 자괴감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때로는 충격요법도 필요해. 나는 워낙 자유방임형이라 어지간해서는 잔소리를 안하는데, 오히려 지가 사사건건 잔소리를 할 때도 있잖아. 모녀라고는 해도 이제 성인대 성인의 관계를 시작할 때가 되었어.  서로의 속도를 존중해주지 않고 내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조금씩 틈이 벌어질 수도 있다구. 물론 따로 조용히 말을 해도 되었겠지만, 이런 식으로 조금 강하게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어.


아들? 넉넉한 형편도 아니고 특별히 잘 해 주는 것도 없는데 쟤는 유독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 같아. 나를 닮아서 현실감이 떨어지기 때문이지만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지 걱정이 될 정도라니까. 결혼을 해 보라지. 얼마나 시시콜콜한 문제도 갈등으로 비화하기도 하는데,  이렇게라도 사람살이의 갈등에 접해보는 것도 괜찮지 뭐.


아아! 한명석. 참 못 말린다. 이제 더 나이 들면 애들에게 순응해야 할 때도 있을 텐데, 그 때는 도대체 어떻게 맞춰갈 셈이냐?  여기까지 생각하다 말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일은 얼핏 ‘속도’의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은 ‘주도성’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딸의 현실감각은 나를 훌쩍 뛰어넘는다.  내가  매사에 어리버리한 반면 딸의 경제감각과 공간감각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영역을 구축하여 내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지 못하면 딸의 지휘를 받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내가 자신감이 있을 때는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일 여유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피해의식에 젖게 되고, 쇠퇴의 속도는 롤러코스터처럼 빠를 것이다!


엇, 뜨거라! 싶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8시가 다 되었다. 딸도 산에 갔다 왔다고 한다. 딸은 아직 뾰로통하지만 뭐 원수진 것도 아니고, 곧 말문을 트게 될 것이다. 조금 거칠게 전달이 되었지만 앞으로 피차 조심하게 될 것이고, 나의 게으름에도 쐐기를 박았으니 나쁘지 않다. 어른스럽지 못한 내 성향도 쓸 데가 있는 것이다. 나는 좀 더 숙연해진 마음으로 읽던 책을 폈다.


얘기가 좀 길어졌지만 나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하고 싶은 것을 안 한다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무슨 일에든 내 의지가 중요하다보니 일을 저지르고 나서 생각하는 식이다. 그 대신 어떤 경험에서든 의미를 찾아낸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사회성은 떨어지지만 글쓰기에는 유용할지도 모른다. 글은 언제나 ‘나’에 대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이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호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기억, ‘나’의 상처, ‘나’의 결핍에 대해서 쓰는 것이다. 내가 만일 조신한 엄마였다면, 모처럼의 산행을 망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내 의지가 ‘조신한 엄마’를 선택했다면 몰라도,  엄마는 그래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면 조금 심심하다. 오래되고 익숙한 ‘좋은 엄마’ 얘기만 계속하는 것도 식상하다. 나처럼 솔직한 내면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좋은 글쓰기의 소재가 된다. 여기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어느새 내가 아이들 눈치를 보게 되었구나, 세월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고 시간의 흐름에 대한 두려움을 표명할 수도 있다.  ‘이렇게 주도권 전환이 시작되는 건가,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친정어머니를 배려하기보다 내 마음대로 상황을 이끌곤 했다. 친정어머니는 묵묵히 내게 순응해 주셨지. 아! 친정어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역할전환을 잘 하실 수 있었을까’ 하고 친정어머니에 대한 감회를 기술할 수도 있다. 수명연장시대의 새로운 부모자식관계에 대한 통찰을 시작할 수도 있고, 내가 그랬듯이 ‘50대에 전문가 되기’의 결심을 다잡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나의 내면에서 시작한다. 무엇이든 내가 절실하게 느껴야 글이 나온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조언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내 느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내 느낌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충분히 느껴보고 표현하는 훈련이 글쓰기다. 얼마나 내 느낌에 충실한가의 문제가 독자적이고 독특한 목소리를 내는 기본 조건이다.  그러니 ‘나는 언제나 무조건 옳다’는 뱃심으로 나의 느낌을 중시하고 존중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윤리적으로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나의 느낌에 충실하게 복무한다는 뜻이다. 나의 느낌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이름지어주고, 충분히 빠져 들고, 내 감정의 편이 되어주자.


이만교는 '글쓰기공작소'에서 이것을 ‘실질적 정직’이라고 부른다. 외부의 시선이나 관습에 의해 내재된 규범을 따라가는 것이 ‘도덕적 정직’이라면, 스스로의 생각을 중시하여 자기 안의 꿈틀거리는 욕망을 존중하는 것이 ‘실질적 정직’이다. ‘일반인’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시선을 중시하며 살아가지만, ‘예술가’는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시선과 생각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리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그는 예술가 혹은 자유인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에 의하면 ‘실질적 정직’은 글쓰기의 기본정신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유아독존적인 자기중심성이 위로를 받고 쓸모를 얻는다. 정여울이 말했듯이, 나 역시 글을 쓰지 않을 때는 한정치산자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집중은 잘 할 수 있다. 관심이 다양하거나 재주가 많은 사람들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도 없고, 참견할 일도 없다. 오직 내가 가진 약간의 재능을 갈고 닦기 위해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일 밖에 없다. 이왕 쓰기 시작한 것, 정말 한 번 잘 써 보고 싶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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