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2. 18. 14:06
 

안정효는 ‘글쓰기만보’를 수영이야기로 시작한다. 마포강변에서 자라 수영을 아주 잘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강을 헤엄쳐 건넜다니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여러 사람에게 수영을 가르쳐 보았는데, 이틀이면 충분하단다. 물에 뜨는 연습, 얼굴을 들어 호흡하기, 그리고 팔다리를 휘저어 자유형을 익히게 하면 끝난다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 물과 친해지고, 물속에서 오래 노는 법을 익히는 것은 순전히 각자의 몫이라는 것. 그러니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수영강습을 할 때 도대체 두 달씩이나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덧붙인다. 접영? 그는 말한다. 한강을 접영으로 건널 수 있겠느냐고.


그는 글쓰기가 수영과 같다고 말한다. 학교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문장을 다룰 수 있다. 이 기초적인 기술을 가지고 보다 정확하거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써나가는 것은 각자의 훈련에 달려 있지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문체가 개인적이고 심리적이며 섬세한 것이라는 뜻일 텐데,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환호했다. 글쓰기강좌를 딱 4회 해 보고 알아차린 것을, 반세기 동안 저술과 번역을 해 온 노장에게서 추인 받는 기분이 달콤했다.  아주 요긴한 은유를 얻어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배워야만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잔뜩 사 놓거나, 글쓰기강좌를 순례하기도 한다. 자신은 글을 잘 못쓴다고 생각하고 선생의 지도를 갈망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글쓰기에 대한 책은 서너 권이면 충분하다. 나와 궁합이 맞는 책 서 너 권을 발견하기 위해 몇 십 권을 읽는 경우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읽은 다음에는 단 한 줄이라도 금과옥조를 내 마음에 품는 것이 필요하다. 그저 읽고 치워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내 경우에는 단 한 줄의 문장이 내 안에 들어와 평생 안고 갈 좌우명이 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령 윌리엄 진서의 ‘글 쓰는 사람이 팔아야 할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글 쓴 사람 자신이다.’ 같은 문장. 이 문장에 접했을 때, 눈이 번쩍 뜨이고, 가슴에는 허브향기가 퍼지고,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나왔다. 글쓰기의 비밀 하나를 전수받은 것처럼 감격스러웠다.


이런 발견은 평소에 글쓰기에 마음을 두고 있어야 가능하다. 꾸준히 글을 쓰면서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안달난 사람의 눈에만 뜨인다. 무엇이든 좋은 것을 알아보려면 내 안에도 그와 비슷한 것이 들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표현만 하지 못했지 얼추 깨닫고 있던 것을 누군가 명확하게 문장으로 정리해 놓은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을 발견한 기쁨은 하늘을 찌른다. 그리고 내 글쓰기는 고수의 수혈을 받아 좀 더 단단해진다.


그러니 글을 쓰기 위한 최소의 원칙은 글쓰기에 대한 책을 사 모으는 것이 아니고, 문장론이 아니고 첨삭지도는 더더욱 아니다. 바른 문장에 대한 것은 반듯한 책 한 권 옆에 놓고, 글을 쓰다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마다 찾아보면 된다. 첨삭지도를 잘못 받으면 폐해가 더 크다. 공연히 두려움만 더 키우기 쉽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무언가 세상에 대고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겨 적는 것. 이것이 없이는 다른 어떤 행위도 쓸데없다. 그야말로 ‘끌고 갈 말도 없는데 마차를 준비’하는 격이다. 먼저 마구간부터 살펴라.



@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라는 제목은 경희대출판국에서 나온 단행본 제목에서

     빌려왔습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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