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2. 18. 01:50
 

 

요즘 글쓰기에 대한 책을 유심히 읽다보니, 책마다 하는 말이 모두 다르다. 누구는 ‘한 번에 책을 열 권씩 펼쳐 놓고 보라’고 하고, 누구는 ‘책은 반드시 한 권씩 읽으라’고 한다. 누구는 ‘글이 곧 말’이라고 하는가하면, 누군가는 ‘글과 말은 다르다’고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일리가 있다. 심지어 같은 얘기인데 다른 측면을 강조해서 하다 보니 반대되는 이야기처럼 들릴 때도 있다. 그런데 ‘글과 말’에 대해서라면, 나는 단연코 ‘글은 곧 말이다’에 한 표를 던지겠다.


글과 말이 곧이곧대로 똑같다는 것이 아니다. 즉흥적이고 일회적인 말을 재구성한 것이 글이므로 물리적으로 똑같을 수는 없다. 글과 말이 아주 중요한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략 세 가지의 측면을 들 수 있겠다.


첫째, 글을 쓸 때도 말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살려 써야 좋은 글이 된다. 많은 대가들이 이것을 강조했다. 이오덕은 “우리가 날마다 입으로 지껄이고 있는 말, 꼭 하고 싶은 절실한 말, 참아도 참아도 기어코 터져 나오는 말, 지워도 지워도 끝내 남는 말”을 글로 쓰라고 했다.  이태준은 ‘글쓰기를 할 때는 글이 아니라 말을 짓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라’고 했다. 글쓰기의 형식보다도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윌리엄 진서는 ‘긴장을 풀고 하고 싶은 말을 하자’고 했다. 심지어 ‘대화로 편히 나눌만한 이야기가 아니면 글로 쓰지 말자’고까지 했다. 

기사와 논문을 제외한 모든 글은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나를 드러냄으로써  읽는 사람을 나의 세계로 초대한다.  읽는 사람은 자신과 다른 세계를 맛보고 싶거나 혹은 다른 사람도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글을 읽는다. 그렇다면 글쓴 사람을 편안하게 드러낸 글에 다가가기 편한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둘째, 글을 쓸 때도 누군가 들어주는 사람을 가정하고 써야 쓰기도 편하고 진솔한 글이 된다. 불특정한 독자층을 넓게 잡고 쓰면  일반적이고 밋밋한 글이 되기 쉽다.

누군가의 피아노연주를 듣고 한 음악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정체불명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은 공중살포되고 만다. 특정한 한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연주가 아무 데로도 향하지 않는군요. 당신은 늘 누군가에게 들려주듯 연주해야 합니다. 강물에게, 신에게, 이미 죽은 어떤 사람에게, 혹은 방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거지요. 어쨌든 연주는 누군가를 향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 브렌다 유랜드,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에서 -


셋째, 글에도 말처럼 리듬이 필요하다. 글을 쓰고 나서 고치는 과정에서 소리 내어 읽는다는 사람이 참 많은데, 우선 생각나는 사람만 해도 이남희, 한비야, 오한숙희를 들 수 있다. 다 쓴 글을 반드시 소리내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맛을 느껴보는 것이다. 입에서 자연스럽고 내 귀로 들었을 때 매끄러운 글이 좋은 글이다.


이처럼 말과 글이 다르지 않다는 것만 알아도, 글쓰기가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글쓰기를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은, 이것을 일찌감치 깨우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인 관심사와 뚝 떨어진 소재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내려니까 어려운 것이지, 일상에서 편안하게 대화로 나눌만한 것이 모조리 글감이 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쓰면 무어 그리 힘들겠는가. 다음 예문을 읽고 한숨이 나온다면 당신은 여전히 글 따로 느낌 따로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두 개의 예문에서 보이는 이 극명한 차이가 바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고지이다. 이 예문  역시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에서 골랐다.


나는 가끔 작가가 아닌 사람들과 공동작업을 하곤 했다. 그들은 나를 돕기 위해 글을 썼다. 대개 아주 황량하고 빈약했다.


“위대한 정치가의 아내 K 여사는 멋진 여주인이어서, 그 해에 워싱턴에 있던 흥미로운 유명인사들을 전부 초대하여 아낌없이 접대했다.” 이런 식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보였지요? 어떤 사람인 것 같았나요?” 나는 묻곤 했다. 내 협력자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지적이고 흥분되고 재기발랄한 관심의 빛이 어린다. 그녀는 수다스럽고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낸다.


“격렬하고 매혹적이었어요. 마치 1분만 지루해도 폭발할 것만 같았지요. 둥글게 휘어진 까만 눈썹에다가 고혈압 때문에 안색은 불그레했어요. 체중을 지탱하느라고 고무창이 달린 단화를 신고 있었고요. 관대했고 속물근성은 눈곱만큼도 없었죠. 하지만 그녀는 어리석은 짓에는 참지를 못했지요. 마치 보일러처럼 벌컥 화를 냈어요. 그러면 그녀의 남편은 주춤거리며 물러서서 전깃불을 모두 끄곤 했지요. ‘바로 그거예요, 에디.’ 그녀는 그의 등에다 대고 소리쳤어요. ‘그걸 전부 다 끄라고요, 맞아요, 당신이 잔돈 몇 푼이라도 아낀 거라고요.’ 그는 아내를 무서워했고 그래서 집에 붙어 있으려 하지 않았어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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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ckey

    정말 많은 것을 알아 갑니다. 그렇다면 위의 예제와 같은 황량한 글들은 어떻게 고쳐야 하나요? 지나치게 단어 중심적인 것 같은데 일상 생활에서는 쓰이지는 않을만한 단어 대신 다른 단어를 써야하나요?

    2012.01.19 04:49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한 번 '걸러서' 전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스케치하듯 옮겨서 읽는 이가 느끼도록 해야지요.

      '그녀가 울었다'고 하지 말고
      '그녀를 무대에 올려서 울게 하라'는 말처럼요.

      그러니까 행복, 사랑, 두려움... 같은 어휘를 넣지
      않고 정황만으로 그 감정들을 느끼게 하는 겁니다.

      저도 늘 염두에 두고 노력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2012.01.19 13:16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