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놀이2009. 11. 16. 13:09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에코의 서재


저자는 바이올린 즉흥연주자요 작가라고 하는데요. 그 외에도 문학과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여러 인접예술에도 일가견이 있어 보이지만, 저는 바이올린 연주와 글쓰기의 조합이 너무 부러운 것 있지요. 그 두 가지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다면 보통 사람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에 거주할 것 같아요. 과연 이 책은 좀처럼 보기 힘든 직관과 내공을 감각적인 언어로 펼쳐 보이고 있네요.


즉흥연주를 하면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간 듯 무한한 자유와 확장을 체험한 저자가 즉흥성의 내적 차원을 탐험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네요. 무언가 아주 좋은 것을 발견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사람이잖아요. 즉흥연주를 하면서 진정한 창조성을 이해했고, 예술과 삶 사이의 인위적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에요. 즉흥성에 대한 저자의 탐구는 아주 참신하군요. 가령 이런 접근은 어떤가요.


즉흥작업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음악이나 연극, 무용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런 예술은 일상적 삶의 경험으로 들어가는 관문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즉흥 연주자들이다. 가장 흔한 즉흥연주 형태는 일상의 대화다. 말하고 들으면서 우리는 어휘라는 단위를 문법이라는 규칙에 따라 사용한다. 어휘와 문법은 문화가 전해준 것이다  하지만 그 어휘와 문법으로 우리가 만들어내는 문장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독창적인 것이다. 모든 대화는 재즈 연주와 같다.


저는 참 말재주가 없는 편인데요, 몇몇이 모여 이야기할 때 재치 있게 받아치는 것에 얼마나 재주가 없는지 그보다는 차라리 대중강연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일상의 대화를 즉흥연주라고 풀이한 저자 덕분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즉흥연주를 잘 하고 싶어진 거지요. 우선 열심히 듣고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보면서 살살 연습을 해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아주 독특한 향기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건 아무래도 여러 가지의 이질적인 분야를 통합적으로 거느리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 같아요. 동료와 함께 한 묶음의 지도를 보면서 즉흥연주를 하는 장면을 좀 보세요. 


여러 차례 나와 함께 작업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론 페인은 어느 날 녹음실로 들어가면서 잡지 미술 화보 등을 한 아름 챙겼다. 그것을 바이올린-피아노 즉흥연주 악보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미지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끄러져 내려오는 곡선이 멋진 자동차 그림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교대로 등장하는 하강 음계를 만들어냈다. 헤어스프레이 광고처럼 아주 괴상한 이미지는 장엄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악과 연결되었다. 마티스의 회화작품을 보자 완전히 축 쳐진 음악이 나왔다가 곧 사라졌다. 제일 멋진 결과물은 로스앤젤레스 지도였다. 론이 시내 도로를 연주하고 나는 고속도로를 연주했다. 실제 로스앤젤레스 도로는 지옥처럼 막히고 복잡하지만 우리 음악은 아주 활기차고 빨랐다.


너무 재미있지요? 저도 가끔 풍경을 보며 소리를 듣는 식의 초보적인 ‘공감각’을 누리는지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는 그 밖에도 동양식 참선에도 심취하는 등 아주 다양한 관심사와 재능을 가진 인물인 것 같구요. 각각의 분야에서 끝까지 가 본 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깊이를 보이고 있네요. 그 다양한 관심사가 합해진 감각이 아주 매혹적이군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면 명상하라. 자유연상을 해라. 자동기술 글쓰기를 하라. 자신에게 말을 걸고 또 대답해 보라. 장애물을 가지고 놀아라. 그러면서 작업장에 머물러라.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장애물의 공격에 자신을 내맡겨라. 그러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부드럽게 견뎌내야 한다.

 

제 눈길을 끌었던 구절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이런 것도 있습니다. 아주 쉽게 삼매에 빠지는 방법이랍니다.


앞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그래! 그래! 그래!” 라고 외치는 것이다.

율리시스 끝 부분에 나오는 삶을 긍정하고 사랑을 긍정하는 주문처럼 말이다. 그러면 가능성으로 가득 찬 우주가 더 가깝고 분명하게 다가온다. 반면 “안돼! 안돼! 안돼!”라고 외친다면 세상이 더 작고 무거워진다. 한 번 직접 확인해보라. 수련 등 관다발 식물의 꽃잎은 해가 나올 때는 활짝 벌어졌다가 해가 지면 오므라든다. 햇살과 수련이 물, 당, 단백질 등 생물학적 재료를 사용해 서로 나누는 대화는 “그래! 그래! 그래!”일 것이다.


타고난 낙천성을 가진 저는 비교적 긍정적인 언어와 심상을 활용하는 편이지만, 좀 더 강력한 만트라를 하나 소중하게 품었습니다. 앞으로 심심하면 하릴없이 소리쳐 보려구요.^^

“그래! 그래! 그래!”


요즘 놀이와 관계의 연관성에 꽂혀 있는데요, 시공을 넘어 누군가 내 생각을 나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것을 또 발견하네요. 저자가 말하는 것은 ‘즉흥연주’의 범주겠지만, 고도의 훈련과 체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즉흥과 실전이 다를 것이 뭐가 있겠어요. 아무런 준비 없이 도달한 합일의 기쁨이 연인 관계만 못할 이유 또한 없겠지요. 


공동 창조 작업은 결국 인간관계의 표현, 인간관계를 위한 도구, 인간관계를 향한 자극이다. 예술가들은 작업하면서 나름의 사회를 이루어간다. 오로지 상상력만으로 연결된 직접적인 관계란 강력하고 독특한 우정을 촉발한다. 계획되고 재단된 말이나 행동으로는 얻을 수 없는 친밀감이 생겨나는데 그 은은함이나 풍성함은 연인 관계에 비견할 만하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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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꾸

    유년기의 재미났던 놀이들이 아련합니다. 이젠 혼자 노는 놀이방법에 관심이쏠립니다. 인관관계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지만 나만의 독특한 향기를 가진 놀이를 열심히 탐구중이랍니다. 미탄 선생님~겨울나기 준비도 잘 챙기시고 건강도 잘 도보시면서 열공하셔요^^

    2009.11.17 15:3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유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 때는 나도 밖에서 하루종일 뛰어노는 아이였던 것이 신기해요.
      저는 혼자 놀던 시기를 거쳐 서서히 관계 속으로 다가가고 있는데요, 한경애의 '놀이는 관계만들기이다'가 철렁할 정도로 뒤늦은 개안을 하고 있지요.
      수꾸님도 블로그 하시면 알려 주시면 어떨지요?^^

      2009.11.18 06:48 [ ADDR : EDIT/ DEL ]
  2. 수꾸

    여테 늘 뭔가에 대한 구상만 열중이었더랍니다. 내 이름의 집을 짓고 주소도 가지고 싶단 욕구 가득하지만 마음만큼 여의치 않네요. 예쁜 집 짓고 초대할께요^^

    2009.11.19 07:28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무엇이든 움직이면서 생각하고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걍 시작하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2009.11.19 08:06 [ ADDR : EDIT/ DEL ]
  3. 비밀댓글입니다

    2009.11.25 22:11 [ ADDR : EDIT/ DEL : REPLY ]
    • 지금 시간자체가 인생의 황금기인걸요. 지금처럼 행복하게 몰두하다 보면 다음 기회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리라고 봐요. 블로깅만 해도 굉장한 훈련이 되고, 막강한 기회잖아요. 비록 나는 열심히 안하고 있지만요.^^

      2009.11.27 10:3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