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09. 11. 1. 21:55
어제 오늘 변경연에서 저술여행을 다녀 왔다. 연구원들이 공저를 쓰게 되면 1박이나 2박으로 여행을 간다.
공저를 준비하는 과정과 여행을 접목시킨 변경연표 놀이인 셈이다.
2007년 공저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를 쓸 때 지리산으로 2박3일 다녀온 저술여행은 내 인생의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장면을 기록한 글을 읽어보면 아직도 그 날의 흥취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5월의 끝, 신록에서 초록으로 가는 중, 사람으로 치면 막 사춘기를 벗어나, 풋내와 성숙한 내음이 뒤섞인 묘령의 숲이 향기로웠다. 전날 내린 비로 불어난 개울물이 힘차게 소리 지르며 내려갔다. 회색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산할아버지가 구름모자 쓰고 있는 지리산 줄기, 이모작을 하느라 누렇게 익은 보리와 밀이 초록색 배경 속에서 이국적인 색채를 연출하고 있었다. 우윳빛 마가렛, 붉디붉은 작약, 노란 붓꽃, 보라색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자주달개비 옆에서 순한 강아지 몇 마리가 낯선 이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이따금 정적을 깨고 꿩 울음소리가  울렸다.


하동군 악양면 꽃뫼 자락의 황토집, 2박3일간 오로지 책 쓰는 이야기만 하자는 구본형 소장님의 부드러운 엄명 아래 우리는 치열하게 책에 관한 토론을 펼쳤다. 처음 해 보는 공저 실험이므로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쓸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을 거듭하며 좋은 책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세부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의견 일치를 보게 되었다. 한 사람씩 자기 사례에서 도출해낸 강점 발견법에 대해 발표하면 다른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피드백을 해주는 방식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기획은 형태를 갖추어 가며 충실해졌다. 점차 자신감이 차오르며 우리 모두 흡족하고 행복해졌다.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일을 가지고 이렇게 잘 놀 수 있다니, 늦도록 계속된 토론 사이사이 차분한 낙수 소리가 꿈만 같았다.


이곳이 어디인가, 이들이 누구인가. 나는 2박 3일간의 순간순간을 아까워하며 음미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원해온 삶의 방식이 여기에 있었다. 주제가 있는 토론, 말이 통하는 지기, 지식을 생산해내는 공동체, 조용한 희열이 몰려 왔다.”



이번에는 '창조적인 소수를 만나는 법'-가제-에 대한 공저를 준비하고 있다. 8명이 참여하고 있으니 아마도 내가 써야 할 분량은 A4 열 서너장에 불과할 것이다. 혼자서 맘대로 써 내려 가는 것 보다 더딜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지적 성과물을 공동생산해 내는 과정을 배우고 싶다.  쓸만한 주제를 집어내는 감각을 훈련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관심사를 다듬고, 후학들에게 기회를 주고, 스스로 과정을 즐기면서도 쓸만한 책을 만들어내고 싶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요즘 두 건의 공저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저술여행은 특히 펜션이 마음에 들어서 공간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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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ABBEY ROAD-033 332 7522-의 메인 건물, 1층은 카페이고 2층은 주인의 살림집이다.
주변에 리조트와 계곡이 있다곤 해도 이 집은 숲 속에 외따로 있어 아주 고즈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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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공간은 두 채로 단출한 편이다. 인테리어를 하는 집주인이 직접 지은 집과 가구들에서 정성이 배어 나온다.
간단하면서도 세련된 소가구들과 직접 그렸다는 그림들에서 일상을 사랑하고 삶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느껴진다.
핸폰 사진이라 조촐해 보이지만, 내부는 훨씬 넓고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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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이야기가 숨어 있다.
마당 구석에 자리잡은 오두막,  나무로 만든 침대와 책상, 화장실이 전부이다.
한 여름 이 곳에 머물며 이 깨끗한 공기 속에 심신을 말리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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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바를 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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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을 보든  구석구석 주인의 애정이 느껴지는데,
정작 이 펜션의 압권은 바비큐에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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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고기로 보아도 최상품인 것이 틀림없는 목삼겹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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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탐스러운 장작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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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예술품을 다루듯 공들여 고기를 굽는 펜션 사장님의 팔뚝근육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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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맛으로 완성된다.
불판의 고기를 향해 굵은 소금을 날리는 사장님 팔의 각도와
최상의 상태가 될 때까지 철판을 움직여가며 고기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동작 또한 퍼포먼스에 가까웠으니,



빗소리를 들으며 나른한 꿈속으로 빠져들 때,
나는 언제나 이처럼 삶과 꿈이 구현된 공간 속에서
일상을 예술처럼 살 수 있을지 아득했을 밖에.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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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꾸

    깊은 가을 속 다녀오셨군요. 에너지 충만하셨으니 좋은 글 쓰실 수 있겠네요.분량은 가볍지만 함미된 의미는 두터운 한 권 이상일겁니다. 달랑 두 장 남은 달력이 애잔해보이는 시간이네요.건강 살피시면서, 계절의 징검다리 조심 건너셔요^^

    2009.11.02 05:43 [ ADDR : EDIT/ DEL : REPLY ]
    • 수꾸님의 댓글에서 '저술여행'의 의미가 분명해지네요.
      여럿이 하는 작업인 만큼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에너지 고취는 필수적이었던 거네요.^^
      두 달간의 목표를 다부지게 세워봐야 하겠어요.
      수꾸님도 꽉 찬 두 달을 힘차게 시작하는 월요일
      되기 바래요~~

      2009.11.02 07:39 신고 [ ADDR : EDIT/ DEL ]
  2. 제가 '나는 무엇을 잘할수 있는가?' 에서 인상깊에 읽었던 대목이었답니다.
    공저하는 사람들과의 저술여행.
    그땐 무척 부러우면서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같이 여겨졌었습니다.

    지금 느낌은 그때와는 또 다르네요..
    그래도.. 또다른 에너지 충전이 될 여행 다녀오신 미탄님이 부럽습니다.~~

    2009.11.02 16:21 [ ADDR : EDIT/ DEL : REPLY ]
    • ㅎㅎ 나도 좋아하는 대목이긴 하지만
      어제는 '새 글'을 쓰기가 좀 귀찮아서
      또 인용을 하고 말았네요.
      젠느님도 머지않아 저 장면 속에 놓이게 될 텐데요 뭐.

      2009.11.02 22:37 신고 [ ADDR : EDIT/ DEL ]
  3. 미탄님의 일상도 이미 충분히 '예술'같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어요.
    건강하시지요? ^^ 책 출간 소식이 궁금해 들렸어요..

    2009.11.12 13: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우리의 '고무줄' 편집자는 당최 일 속도가 어찌나
      느린지 나는 아예 신경을 껐답니다.
      책 나오면 곧바로 똑순맘에게 신고할게요.^^

      2009.11.12 22:24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