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책2009. 10. 13. 15:39
 감찬호, 생애의 발견, 인물과 사상사 2009


김찬호의 ‘생애의 발견’,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학문하는 사람의 시각과 자원을 가지고 대중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면 이렇게 멋진 책이 탄생하는 거구나.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한국인의 사회적인 초상인 셈인데, 그렇게 재미있고 함축적일 수가 없다. 한 꼭지만 읽어도 저자의 방대한 레퍼런스가 짐작된다.


가령 ‘부부, 사소한 것들의 중요함을 배운다’라는 꼭지는 17쪽 밖에 되지 않지만 모조리 밑줄을 그을 만한 금과옥조인데다가, 내 경험에 의하면 모두 사실이다. ^^

불과 17쪽 안에서 발견한 부부에 대한 조크만도 세 개다.

옮겨 보자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두 번째 남편은 고고학자였다. 누군가 그녀에게 고고학자 남편을 둔 것이 좋은 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 왈,

“물론 있지요. 내가 나이가 들수록 남편이 나에 대해 점점 관심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투닥투닥 싸우며 사는 부인이 남편의 수첩 속에서 자신의 사진을 보고는 적잖이 놀라서 어느날 조용히 물어 보았다. 왜 자기 사진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하자 남편은  힘들 때마다 살짝 꺼내서 본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아내는 가슴이 뭉클했다. 원수 처럼 지내지만 그사람 참 속 깊은 데가 있구나. 그리곤 ‘그래 힘들 때마다 내 사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남편의 대답인즉,

“당신의 사진을 보면서 세상에 이 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


누군가 독설가로 유명한 버나드 쇼에게 물었다.

“금요일에 결혼하는 부부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쇼의 대답은,

“암, 그렇고 말고요. 금요일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있겠습니까? ”


위의 조크들이 부부와 결혼에 대한 냉소적인 웃음을 자아낸다면, 아래와 같이 가슴 짠한 사례도 있다. 이 사례 만으로도 부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깊은  울림이 온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어느 부부가 각자의 감정을 암호로 표시하여 싸움을 예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군인인 남편은 퇴근할 때 모자를 비뚤게 쓰는 정도로, 그를 맞이하는 아내는 머리를 꼭 동여매는 정도로 기분의 저조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괜찮은 쪽이 좋지 않은 쪽을 배려해 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싸움이 줄어들었다. 서로의 기분을 섬세하게 살피게 될뿐 아니라 배우자를 마주하기 전에 자신의 기분을 돌아보면서 ‘정말로 내 기분이 그렇게 나쁜가?’라고 자문하게 되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확실하게 표현하면서 기쁨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모자를 아주 비뚤게 쓰고 퇴근했다. 공교롭게도 아내 역시 어떤 일로 기분이 몹시 나빴던지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마주친 부부는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여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곧 와락 달려들어 포옹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저와 잠깐 결혼해 주시겠어요?”

결혼 지속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프랑스에서 청혼할 때 그렇게 능청떤다는 재치도 재미있고, 卒婚이라는 일본의 신풍속도도 아주 흥미롭다. 혼인관계를 졸업했다는 뜻이란다. 법적인 부부관계는 유지하되 양자 합의 하에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한다고. 수명연장시대에 부응하는 진화방식인 셈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섭렵한 자료가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이 간다.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인 것도 느껴진다. 그는 적어도 한국인들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최소한 지금은 살아 있고 싶어”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중에서 --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대학다닐때, 김찬호교수님의 전공 수업을 들을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2009.10.13 15: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하하, 포스팅하고 실시간으로 댓글 달린 적은 처음입니다.
      재미있네요.^^

      2009.10.13 15:47 신고 [ ADDR : EDIT/ DEL ]
  2. 수꾸

    미탄 선생님~ 깊어가는 가을색조보다 더 책향기가 진해옵니다. 가끔 들려 선생님 글 마주하고 지난답니다. 일교차 큰 날씨 건강 잘 챙기시구여~ 내일은 오늘보다 더 빛남으로 가는 시간만드셔요^^

    2009.10.13 23:1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아, 요즘 블로그 열심히 안 하는데 조금 분발해보아야
      하겠는걸요.^^ 제 글을 읽어주시고, 또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하구요, 수꾸님도 어제보다 아름다운 하루
      되시기를!

      2009.10.14 08:39 [ ADDR : EDIT/ DEL ]
  3. bom,bom

    미탄님 글을 읽고 나면 언제나 보관함이 묵직~ㅎ 리스트에 올려봅니다. ^^ 바람 썡썡~ 기온 차가 큰 요즘 감기 조심하세요.

    2009.10.19 18:46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예~~ 저녁만 되어도 제법 추워서 산책시간을 좀
      앞당겨야겠더라구요.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이렇게 흔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10.19 21:50 [ ADDR : EDIT/ DEL ]
  4. 이오푸른

    예화가 참 좋은 듯해요.
    가장 좋았던 게 각자의 감정을 암호로 표시한다는 거.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면 사회화된 우리네는 조건화된 감정을 느끼고 그에 대한 반응을 하게 되는데 그 고정관념을 역으로 이용하여 다른 감정을 유발하는 행위, 즉 암호로 감정을 표시함으로써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 암호를 정하기란 어려우므로 제게 하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들을 칭찬이나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친한 사람들끼리 이렇게 암호를 정해가면 재미가 가미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조과정 그 자체의 재미에 더하여 그들만의 다른 삶의 방식, 즉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그들만의 개성을 창출하고 있다는 유별감. 이 그 재미의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2010.03.11 22:2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