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마시야마 다즈코는 60세가 넘어 처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녀는 1917년 기후 현 도쿠야마 마을에서 태어나 1936년에 같은 마을의 마시야마 도쿠지로와 결혼하여 1남1녀를 두었다. 남편은 전쟁에 소집되어 1945년 5월 미얀마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녀는 전쟁이 끝난 후 시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고 민박을 운영하며 지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녀는 1977년 도쿠야마 마을에 댐이 건설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셔터만 누르면 누구라도 촬영이 가능한 코니카를 구해서 수몰되어 가는 고향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들을 촬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행방불명된 남편이 갑자기 돌아왔을 때 마을이 사라진 것에 대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그녀가 사진을 찍게 된 동기를 들으니 마음이 짠하다. 행방불명된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면 제삿날 혼이라도 와서 둘러볼 텐데 이주하게 되면 남편이 찾아올 길이 없다는 안타까움...  이런 동기로 시작한 사진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촬영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지게 된 것 같다. 어느날 문득 돌아보니 모아놓은 사진이 7만 장이 넘었다니 말이다.


사진전과 사진집을 통해 그녀의 사진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도쿠야마 사진 아줌마’의 존재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년 동안 촬영해온 사진들을 모아서 만든 ‘마시야마 다즈코-도쿠야마 마을 사진전기록’에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일본인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직도 눈 덮인 산에 흐드러지게 핀 목련과 벚꽃, 봄이면 어린 머위 꽃줄기를 비롯하여 풍성한 산나물, 여름이면 개구리가 우는 강가에서의 물놀이, 밤을 줍고 송이를 따는 가을과,  가스카 신사의 봄축제가 열리는 정월.  사진집에는 잇몸을 드러내고 허물없이 웃는 마을 사람들이 산과 개울 그리고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활기차고 즐거운 정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도쿠야마 마을이 정식으로 지도에서 사라진 것은 1987년 3월 31일이다. 그녀는 그 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마을로 돌아가 공사 진행 과정을 촬영했으며 댐이 완성된 후인 2006년 3월 7일에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눈에 익은 풍경과 친근한 이웃의 모습을 소박하게 담아 세 권의 사진집을 펴냄으로써 흥미로운 더큐멘터리로 만들었다. 그녀의 삶은 카메라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댐 건설처럼 극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누구에게나 기록할만한 일상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나는 지금부터 10년, 20년간 내가 나이 들어 가는 과정을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으로 낱낱이 기록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럴 수 있다면 다방면으로 심지어  마케팅에도 유용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생각을 실행으로 옮긴 사람이 있었다. 단 글이 아닌 사진으로.


쓰치다 히로미는 1986년부터 10년에 걸쳐 매일 아침 자신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하여 ‘Aging’이라는 시리즈를 발표했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촬영으로 얻은 3,000장이 넘는 사진더미 속에서 우리는  ‘aging’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예는 예술이라는 것을 좀 더 가까이 느끼게 해 준다.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련학과를 다니면서 오랜 시간 규칙을 훈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보다는 무언가에 흠뻑 빠져들어 열중하는 것이 오히려 예술의 본질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Ellen J Langer가 ‘예술가가 되려면’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저 예술을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공식적으로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라도 충분히 예술적인 경험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심리학자인 그녀는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면서, 배우지 않고 스스로 터득하는 예술 un-taught art을 지향한다. 그녀의 참신한 견해에 접하고 기분이 좋던 차에 곧바로 마시야마 다즈코를 알게 되었다. 아주 기분좋은 ‘동시성’이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7만 장을 찍어대는 정열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무상의 정열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을 찾아라! 당신만의 un-taught art를 발굴하라. 새로운 삶이 시작될 지도 모른다.



참고도서 : 이자와 고타로, ‘사진을 즐기다’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9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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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퀴리

    밤바람, 아침공기가 차가와 지더군요.
    하긴,...처서!라니까....(이크, 가을!!!!)....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찾아오니까....

    정현종 시인의 `섬`이란 시 한편이 떠오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미탄님!
    어찌하다보니, 절기가 바뀌면 인사드리게 되네요.
    글, 참 좋습니다. `사진을 즐기다` 읽고 싶어집니다.
    좋은 휴일 되세요.

    2009.08.23 16:3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ㅎ 글이라기보다는 '자료'에 가까워요.
      호흡이 긴 글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
      이 정도 길이의 글은 그냥 본문 인용으로
      채워지기도 하네요.
      그래서 블로깅도 뜸하구요.

      참 세월 빠르지요?
      설거지 하고 산책 나가서,
      맘먹고 사색에 빠져 보려구요.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를요~~

      잘 지내시기를!!

      2009.08.23 18:50 [ ADDR : EDIT/ DEL ]
  2. 푸른 퀴리

    배우지 않고 스스로 터득하는 예술 unㅡtaught art,
    삶이 곧 예술이 되는 경지...나이 듦의 지혜, 경지,..에 다다르셨나봅니다.
    ㅎㅎ.

    저~만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신 정열ㅡ마음에, 몸에, 담아갑니다.
    뽀송뽀송한 가을공기와 함께....

    새학기를 시작한 학생들처럼, 나는 학생이다,,,,또 배웁니다.
    하늘올려다보니, 너무 푸르러요..!

    2009.08.28 16:36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예, 정말이지 요즘은 더울 틈도 없이 여름이 가고,
      안 그래도 빠른 가을은 달려가듯이 가 버리는 것 같아요.
      가끔은 흐르는 시간 앞에서 먹먹할 때가 있는데,
      나한테 목표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살리고,
      세상에 내가 살아 있음을 알리고,
      비슷한 기질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놀고 싶군요.^^

      2009.08.29 18:24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