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海印으로 가는 길, 문학동네 2006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샀다는 이유만으로 공연히 흘겨보기도 한다.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밀쳐두고 있던 시인 도종환의 시집을 처음으로 사 보았다. 
 
도종환의 시를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얼마전 어디에선가 그의 시 ‘가구’를 접하면서였다. 부부가 서로를 ‘가구’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첫 부인을 병으로 떠나보내면서 절절한 아픔을 노래했던 ‘접시꽃 당신’이 떠올랐다. 재혼 후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인간사의 변화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가구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 있다. 장롱이 그러듯이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 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나온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힌다
아내가 내 몸의 여닫이문을
먼저 열어보는 일은 없다
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보다
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아내의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습관의 힘으로 떠밀려가는 오래된 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보통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시인은 시를 쓴다. 첫부인과의 사별, 오랜 전교조활동, 재혼... 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시인에게 이번에는 병이 찾아왔다. 자세한 병명은 알 수 없어도 도종환은 충북 보은 법주리 산에서 만 3년간 혼자 투병생활을 했다고 한다. 
 
시인의 이전 시들에 대해서는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연륜과 투병의 영향이겠지. 시인의 시선은 한없이 쓸쓸하고 따뜻하고 깨달음으로 가득차있다.  ‘어디 종일 저 혼자 있던 빈 방이 나를 좀 들어오도록 허락해주기를’ 갈망하는가 하면, ‘순간 순간을 나누어 마시며/웃음이 번져가는 사람 하나/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고 가만히 속내를 풀어놓는다.
가을을 맞이한 사람으로서 낙조를 보며 ‘스러져가는 몸이 빚어내는/ 선연한 열망’을 보기도 하나, 시인이 산에서 얻은 것은 많은 것 같다.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두릅나무처럼/ 살 하나하나 가시가 되어 치열하지도 못하고/ 물푸레나무처럼 적요하지도 못한’ 자신을 반성하는가 하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는 낙엽송과, 순식간에 작열해버리고 마는 소나무와, 잉걸불이 되어 한밤중까지 환한 참나무 장작을 구분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시인의 깨달음은 급기야 자신의 병이 축복인 것을 알아차리기에 이른다.
‘한 시대가 다 참혹하였거늘
거인같은, 바위같은 편견과 어리석음과 탐욕의
방파제에서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이가 헤아릴 수 없거늘
이렇게 작게라도 물결치며 살아있는 게
복 아니고 무엇이랴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랴 말하랴
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 ’ 

 
산에서의 생활을 통해 스스로 신비주의에 빠지게 될까봐 경계할 정도로, 거덜났던 심신을 깨끗하게 씻기운 시인은 이제 세상에 나가더라도, 전처럼 과욕을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인 시를 세상에 내어놓겠다고도 한다. 이 시집의 인세를 제 집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을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가을에 한 번 읽어봄직한 시집이다.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희망조차 경계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경건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산벚나무

 
아직 산벚나무 꽃은 피지 않았지만
개울물 흘러내리는 소리 들으며
가지마다 살갗에 화색이 도는 게 보인다
나무는 희망에 대하여 과장하지 않았지만
절망을 만나서도 작아지지 않았다
묵묵히 그것들의 한복판을 지나왔을 뿐이다
겨울에 대하여
또는 봄이 오는 소리에 대하여
호들갑떨지 않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경박해지지 않고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요란하지 않았다
묵묵히 묵묵히 걸어갈 줄 알았다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듯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알면서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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