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09. 4. 26. 20:2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원에 살다보니 서울에 모임이 있어 나가면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수도 많습니다.
자주 나가는 편이 아닌데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쯤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쉽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마음 편하게 한 잔 하고, 찜질방에서 쉬고 다음날 돌아오는 수가 있는데,
어제도 그랬습니다.
 
찜질방 입구를  나서는데 창구에 앉은 여자가,
"선생님! 키요" 하고 열쇠를 찾습니다.
안에서 누군가 챙겼다고 대답하면서,
그녀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실이 참 이상합니다.
이미 '아줌마'라는 호칭에 익숙해진데다가,
'손님'도 아니고 '선생님'이라고 불리울만한 장면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요.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타고 들어온 곳이어서 그런가 주변이 아주 낯섭니다.
여기가 어딜까? 하고 발금발금 걸어 나오는데 '연신내역'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띕니다.
ㅎㅎ 블로그이웃 '연신내새댁'님 생각이 나서 반갑게 한 컷 찍어 보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제 경복궁역 부근에서 모임을 끝내고 찜질방을 물어서 왔는데, 사직터널 뒤쪽인 모양입니다.
모처럼 교보문고에 들릴 생각에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해송아동복지연구소'라는 간판이 눈에 띕니다.
20대 중반에 '해송아기둥지'라는 달동네 육아운동을 잠시 기웃거린 적이 있는데,
아마 그 쪽의 관계자가 하는 곳인 모양입니다.
저는 잠깐 참여하다 말았지만,
70년대 중반의 보육야학에서 시작하여 '공동육아'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곳이라
소중하고 의미있는 사례로 기억하고 있는 곳인데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종문화회관 옆의 작은 공원으로 들어 갔습니다. 맑은 아침 공기 속에 신록이 참 곱습니다. 도심에 이만한 공간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평일 점심시간이면 주변의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을 공간에 나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종합청사와 등나무 받침대가 이루는 각도가 그럴듯합니다. 자기성찰이 과도한 나는 ^^ 언제나 모임 다음 날에는 조금 신경이 쓰입니다. 허물없이 편하게 말을 건다는 것이 너무 무식하게 들리지는 않았을까?
무심히 한 사람을 칭찬한 일이 그 옆에 앉은 사람을 배제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었겠다, 어쩐지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편하게 다가선다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었겠다, 가볍고 사교적인 화제를 갖지 못하고 늘 주제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내 화법이 너무 지루하지는 않았을까.

잠시 돌이켜 보아도 너무 많은 민망함과 우려가 튀어 나옵니다. 그 중에는 내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듯한 갑갑함도 있고, 상대의 판단 속에 갇히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아찔한 것도 있습니다. 판단을 받아보니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됩니다. 판단하지 말자, 설령 어떤 느낌이 들더라도 입 밖에 내지 말자, 전에 어떤 느낌을 가졌더라도 다시 만났을 때는 처음 보는 사람처럼 새로운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 보자.  느낌은 사실이 아니다. 사람은 언제고 변화하는 것이다.

세련되지 못한 내 화법과 태도가 민망해 죽을 맛이다가,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래 이 정도로 어제 일어난 일은 떠나 보내자. 고개를 흔들며 벤치에서 일어나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인사동에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너무 번거로워 그만 두고는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 들렸습니다. 분위기로 보아 연로하신 분들의 동호회전 같은 것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작품이 굉장히 많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모두 대작인데, 내가 좋아할만한 그림도 꽤 많아서 기분전환이 되었습니다.  그림들의 격차가 심해서 마치 훈련의 정도를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만한 습작과 연습을 거쳐 이 단계로 나아갔겠구나~~어딘가 조악했던 부분이 점점 사라지고, 자신있고 힘찬 터치로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게 된 그림들이 좋아 보였습니다.




국밥을 시켜 아주 천천히 먹었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맛보는 여유입니다. 상당히 느긋한 편인데 요즘 들어 조급증이 늘은 탓입니다. 출발이 늦었는데 가시적인 성과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조급증에서 나오는 것은 별로 없더라구요. 목표집약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되, 일부러라도 이렇게 천천히 일상을 음미하는 시간을 끼워 넣어야겠습니다.  길 건너 건물에 커다랗게 이렇게 쓰여 있네요.

"얼굴 좀 펴시게, 올빼미여, 이건 봄비가 아닌가"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와.. 정말 의미있는 발길이었네요.
    제가 미탄님 따라 돈 듯한 기분이 듭니다.
    세월이 가도 변하는게 있고 안변하는게 있지요.
    변할건 멋지게 변하고, 안변할건 철석같이 안변했으면 좋겠어요. ^^

    2009.04.27 21: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오잉? 정말 이누잇님 맞으세요?
      어쩐지 체감나이가^^ 열 살은 젊어지신듯... ^}^

      2009.04.28 06:35 [ ADDR : EDIT/ DEL ]
  2. 이제 농진청 일이 이으면 일보고 언냐 한테 전화해서 놀자해야겠습니당..히히

    맞아요.
    조급함에서 오는 것은 실수 밖에 없더라구요.
    토마토하우스 일을 하다 급해서 빨리 하다 보면 토마토 줄기를 뚝하고 부려뜨리던다
    혹은 다시 해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맘이 급해지면 잠시 쉬었다 한답니다.^^

    오늘도 즐거운 날 되세요~~

    2009.04.29 07:38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예~~ 토댁님.
      출간하게 되면 기념 번개를 할 건데
      토댁님 꼭참할 수 있도록 알게 할게요.
      근데 너무 산통을 겪지 않고 나와줘야 할 텐데 말이죠.
      토댁님과 온 가족, 오늘도 힘찬 하루~~

      2009.04.29 10:45 [ ADDR : EDIT/ DEL ]
    • 토댁

      와우~~~정말이요?!
      저 꼭 참가 하고 싶어용..
      꼭 알려주세요..진짜루~~~~약속!!! ^^

      전 오늘 고추 심어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09.05.03 08:14 [ ADDR : EDIT/ DEL ]
  3. 앨리스

    아...제가 모두 다 좋아하는 곳들이예요^^ 잘 지내시죠? 그 동안 여러가지 변수들이 있었는데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버렸어요. 회사를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다시 눌러앉기로 하고, 누군가를 만나볼까도 했다가 다시 그냥 혼자가 되버리기로 하구요..ㅋㅋ 다시 원점인데 분주했던 마음을 접고 나니 홀가분하기도 하구요, 아쉽기도 하구요..사람 마음이 너무 간사한것 같아요. 마음이 정리 안될 때 언젠가 한선생님께서 변경연에 올리신 글들을 모아뒀다가 읽었네요. 참, 좋아요. 내일도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편지 연재 또 하시면 참 좋을텐데 생각해요. 또 들릴께요.

    2009.04.29 23:21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길지않은 글이지만 기일게 속마음을 짐작해보게 되는 댓글이로군요. 나도 그 비슷한 망설임과 '다시 원점'을 숱하게 거쳐왔기 때문일 거에요.

      역시 그 해답은 '목표'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 가지 고지를 향해 꾸준히 걸어가는 발걸음이 없이는, 몸과 마음이 바쁘고 지쳐도 남는 것이 없더라구요. 짬을 내어서 꿈벗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고려해 보구요. 머리로는 다 알면서도 결연한 의식이 되기가 어려운데, 여럿이 모여서 게다가 단식까지 하면서! 단호한 출발의 의식이 되는 것 같았어요.

      숲체험에 가는 것 같던데 잘 다녀오세요. 조금 뜻밖이었는데, 남겨준 댓글을 보니 아하~ 싶기도 하네요. 내 마음편지를 다시 읽어주었다니 정말 영광이구요.^^ 덕분에 나도 오늘은 그걸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2009.04.30 06:54 [ ADDR : EDIT/ DEL ]
  4. 첫사진을 보고.. 음. 어디지? 우리 동네 이름이 있네? 생각했어요.
    글 읽고보니 제 생각하며 찍어주셨네요.. 넘 감사합니다.^^

    이누잇님 말씀처럼.. 저도 미탄님과 함께 그 길을 쭉 걸어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세종문화회관뒤 소공원, 교보문고 큰 간판..
    언제고 혼자 다시 길을 천천히 걸을수 있는 날이 오면 광화문 근처를 천천히, 꼭 걸어보고 싶어요.

    문득 이런 아침,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를 불러주시면 좋겠다 생각도 해보았어요.
    혼자 조용히 어제를 정리하시는 시간을 방해하면 안되겠지만요~^^

    2009.05.13 21: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촐촐한 시간에 마음편히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될 때까지 Go Go? ^^

      2009.05.15 11:18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