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놀이2009. 3. 12. 01:29
 

인간을 넘어서, 나카무라 유지로, 우에노 치즈코  당대 2004


고양이가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새끼고양이였고 공도 아이들 볼풀용으로 아주 작은 것이었다. 고양이는 공을 보자마자 꼬리를 바싹 치켜세우며 경계태세를 취했다. 작은 몸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그리고는 앞 발로 공을 툭 툭 쳐 가며 탐색하기를 여러 번, 이내 고양이는 공을 굴렸다 잡았다 하며 공과 한 몸이 되어 뒹굴었다. 있는 대로 집중하여 온 몸으로 노는 모습이 재미있어 한참을 쳐다본 기억이 난다.

나는 예전부터 무언가에 빨려드는 삶이 좋았다. 리듬이나 집중이 없이 매일 그 날이 그 날 같은 평범한 삶에는 끌리지 않았다. 그 무엇인가가 반드시 대단할 필요는 없었다. 아들이 어렸을 때, 자동차, 로봇, 레고로 이어지며 장난감에 빠져드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식이다. 반면 딸은 그런 몰입을 보여주지 않아서 서운했다. 나는 지금도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삶이 좋다.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질 때 그 때부터 늙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히 나는 자기 세계에 푹 빠져서 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신화가 우리 삶을 읽는 아주 좋은 도구라는 것을 알게 해준 조지프 켐벨 부터 영원한 딴따라임을 자처하는 박진영 까지, 확대된 꽃그림으로 새로운 관능의 세계를 열어준 조지아 오키프에서 고양이 한 마리로 자기 세계를 구축한 권윤주 까지 모두 그렇다. 그들처럼 이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삶을 위해 누구나 무조건 몰두하는 영역이 있기를 바란다. 스스로 즐길 거리를 찾는 것, 나아가 그것을 가지고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요 성공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에도 즐길 락樂자를 넣었다.

나는 이제 겨우 글쓰기에 입문한 처지이지만, 자기 영역을 완전히 숙달하여 갖고 노는 사람을 보는 것은 즐겁다. 오늘 읽은 책의 두 저자는 지식을 가지고 제대로 놀고 있었다.


1989년에 출간된 ‘인간을 넘어서’라는 책으로, 마흔의 우에노 치즈코와  예순의 나카무라 유지로의 왕복서간을 묶어 펴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공인 철학과 사회학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는데, 어찌나 박식하고 자유로운지 이 사람들이 대학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카무라가 슬쩍 튕겨주면 우에노가 뒤질세라 받아넘기며 일갈한다. 나의 도발을 유도하니, 제대로 넘어가 드리지요~~ 하는 식이다.


자신이 던진 공을 덥석 물고 마치 퍼포먼스라도 하듯 화려한 박력을 보여주는 우에노에게 나카무라 역시 솔직하고 정중하게 반응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상대가 얼마나 들을 줄 아느냐에 달려있다더니, 두 사람의 표현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깊어지고 섬세해진다. 학문과 인생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의 이면에 수줍은 듯 감춰놓은 속내를 놓치지 않고 다시 자기 식으로 읽어서 되쏘아주는 두 사람! 그들은 편지를 통해 최고 수준의 소통을 경험한다. 탱고가 5분간의 연애라더니 문예잡지에 연재하는 왕복서간을 통해 2년간 지적 연애를 하는 것 같았다. 내 모든 것을 토해내도 이해해 줄 사람은 적절한 거리를 갖고 있어 더욱 매혹적이다. 게다가 익명의 관객을 앞에 놓고 오픈된 게임이라는 것이 이들을 더욱 흥분시키지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연재당시 그들의 왕복서간은 ‘러브레터’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이들의 대화에 나오는 인간군상이나 사회학적 고찰도 재미있었지만, 나는 이들의 지적 게임에 매료되었다. 지식과 경륜을 가지고 밀고 당기기를 하며 즐기는 고수들에게서는 굳이 성별과 나이를 따질 일이 없었다. 젊고 늙었다거나,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이 필요 없는 어디쯤에 이들이 가 있는 것 같았다. 비로소 책 제목이 이해가 되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고양이가 공을 갖고 놀듯이 나의 도구를 손바닥 안에 갖고 놀고 싶다. 내 영역에서는 무엇을 찔러도 대답이 나오며, 수십 가지 모양으로 변형시킬 수도 있으며, 푸르른 창공으로 날아오르거나 천 길 땅 속으로 흐르듯 자유롭고 싶다. 다른 지류들과 합류하여 마침내 넓은 바다에 이를 때까지 ‘나’라는 존재를 가지고 마냥 놀고 싶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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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난해 말, 2009년의 사자성어로 미탄님이 내놓으셨던 '천의무봉'이.. 문득 생각났어요.
    천의무봉. 어찌보면 바느질이란 것도 하나의 걸림.
    그 걸림을 넘어서는 매끈한 자유로움이 참으로 누려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를 닮고 싶게 하지요.
    닮고 싶은 사람이 많은 사람..은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일 것도 같습니다.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는 힘까지 있다면 그 자신도 금세 아름다워지겠지요.
    미탄님은 곧 바라시는데로 될것 같아요.
    (이미 되셨을지도.. '길을 찾는 사람 그 자신이 새 길이다'란 말도 있듯이)

    새봄, 추위견딘 새 잎들처럼 푸르게 솟아오르시길 빕니다.
    ^^

    2009.03.13 21: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천의무봉 - 걸림이 없는 매끈한 자유로움!
      확실한 풀어쓰기가 눈에 쏙 들어오네요.
      그것이 무엇이든 송두리채 파악하고 있다면 완연한 내 말로 풀어쓸 수 있겠지요. 그래서 신영복님이 "깊어지지 않으면 쉬워질 수 없다"고 하실 걸꺼구요.

      닮고 싶은 사람이 많은 사람은 꿈을 잃지않는 사람이라는 말에도 크게 공감합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을 때 누가 부러운지 찾아보라는 말이 있듯이요.

      "길을 찾는 사람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이 말을 다시 똑순맘에게 드립니다.

      2009.03.15 06:08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