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희, 연애잔혹사, M&K 2007. 12

영화 ‘연애의 목적’의 시나리오 작가인 고윤희의 연애분석서, 처음 이 주제로 책을기획했을 때 두 달이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2년이 걸렸단다. 구성이 재미있다. ‘해피엔드’,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널리 알려진 영화 열두 편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되, 영화보다는 저자의 취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 책을 쓰기위해 천 명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책이 아주 탄탄하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아주 재미있기도 하다. 작심하고 연애문제를 까발기는 감각적인 문체가 일품인데, 그 밑에 저자의 최상주의자의 면모가 느껴진다. ‘연상연하커플의 속사정’, ‘들이댐의 기술’, ‘그 놈의 COOL'... 이런 식의 편안한 표현이지만 지독한 자료조사에서만 나올 수 있는 중량감이 뿌듯하다.


그리하여 이 책은 사랑, 연애, 남과 여, 결혼... 등에 대한 아주 솔직하고 실제적이면서도, 중심철학이 단단한 안내서가 되었다. 좀처럼 책으로 전수되지 않으며 사석에서도 귀동냥하기 어려웠던,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나 필요한 연애학이다. 본격적인 것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라며 약간의 본문을 인용한다.


사랑에 올인해서 다쳐본 사람들은 의외로 사랑에 대한 환타지가 없다. 뭐가 됐든 막장까지 가보면 의외로 덤덤해지고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던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환타지가 많다. 이들은 드라마 영화 소설을 통해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을 간접체험하며 환타지만 키워서 실제 연애에서는 병신짓을 하고 만다. 한 번의 미친 연애는 상대방을 사람 그 자체로 보게 하는 마음의 눈을 만들어준다. 그런 찐한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본 사람이라면 그가 뛰어난 사회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감정적으로 어린애일 가능성이 높다.


스토커가 되어버리는 것은 자기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혼계약서가 있다고 해서 남편이 자기 소유물인양 남편의 핸폰 비밀번호를 캔다거나 위치 추적을 한다거나 밤낮으로 전화를 울려서 사회생활까지 침범하는 여자도 모두 스토커다.

죽도록 사랑해도 내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이가 들고 여자라는 걸 절감하며 살다보니 엄마의 인생에 울화통이 터지는 순간이 많아진다. 엄마의 희생에 고마움보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엄마의 모습은 빚쟁이가 엄청난 부채장부를 들고 버티고 선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하지? 돈으로도 갚을 수 없고, 시간으로도 갚을 수 없는데?

나는 절대 자식에게 부채장부를 쥐어주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내 멋대로 멋쟁이 쿨한 엄마가 되어야지. 엄마가 70이 되기 전에 성형수술을 하고 멋진 남자와 세계 일주를 하며 마지막으로 생애 최고의 찐한 연애를 즐겼으면 바란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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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09.03.04 18:28 [ ADDR : EDIT/ DEL : REPLY ]
    • 비밀댓글 쓰시려고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경쓰실 일이 많으셨나 보네요.
      너무 재주가 많은 분들이 생각이 너무 많기도 하지요.
      고려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변수와 경우의 수가 대폭 늘어날 테니까요. 때로 단순함도 무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가지치기를 잘 하고 핵심에 올인하는 힘은 있거든요. 제 이야기입니다요.^^

      모쪼록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희열에 찬 결정 내리시기 바라구요, '온기와 생기' 라는 표현 고맙습니다. 잘 마음에 품고 가지요.

      2009.03.05 09:23 신고 [ ADDR : EDIT/ DEL ]
  2. 보다보니... 제 마음이 그러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요.
    몇번의 오랜 연애끝에 연애, 사랑에는 그닥 환상이 없는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더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여전히..물질적인 눈에보이는 그런 풍족함보다는 본질적인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바라는게 없는데도 왜 이렇게 시달리는게 많은지, 내가 바라는게 없어서 상대가 나한테 바라는게 많아지는건지.
    (그런거 있잖아요. 넌 일을 잘해서 돈을 잘 버는 여자였으면 좋겠어. 전 천상 조신하고 참한 와이프가 되어줬으면 좋겠어..등등.. 말하지 않으면 알아서 할것들인데,
    굳이 말해서 산통 다깨는..-_-;;; )

    철부지여서 그런지, 부모의 유산이 빵빵한 남자나, 잘 나가는 직업을 가진 남자, 수려하고 화려한 남자보다는..그냥 진실된 사람이 좋아요.
    그저 마음이라도 절 위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조건 좋은 사람이야 많겠지만요..^^
    다름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응원하는 일이 어려운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새장속에 같힌 제모습이 싫어서, 뚫고 나왔으니..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보고 있어요.^^
    잘 지내시죵?

    2009.03.06 18: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관계'에 대해 글을 쓸 것이 있어서 사랑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고 있는데요, 지고지순한 사랑지상주의에서 냉정한 사회학적인 고찰까지 참 어지럽네요.^^

      그래도 나는 후자에 마음이 끌려요. 전자가 환상이고 기대치라면, 후자는 적어도 현상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고윤희의 표현에 따르면, 요즘 결혼식장에 가 보면 신랑신부가 고심해서 아슬아슬하게 협상한 티가 역력하다는 세태에서, 명이님의 순수함을 응원하고 싶어지네요. 사랑을 믿되 맹신하지는 않으면서 스스로 사랑을 완성시켜갈 자세가 되어 있다면,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후회하지는 않겠지요.

      명이님, 새장 속에서 나와 창공의 자유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이미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있는 힘껏, 맘껏 날아보기 바래요. 화이팅!! ^^

      2009.03.07 08:38 [ ADDR : EDIT/ DEL ]
  3. 부채장부 들고 답답하게 버티고선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제 인생을 후회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설혹 사회적으로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거나, 그 무엇이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아이가 내게 어떤 부채감을 느낄만큼
    나를 소진시키고, 마모시키고, 고갈시키는 삶을 살진 않아야겠어요.
    하루하루 정신과 삶이 더 깊어지고, 풍요로와지기를 바라게됩니다.

    미탄님, 잘 계신가요? 집필은 잘 되시구요?
    뜸한 포스팅속에 밀도있게 집중하고, 정진하고 계신 모습이 보이는듯 합니다.
    그런 단절과 집중이 참 부럽습니다.

    2009.03.07 15: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ㅎ 날마다 도서관에 가기는 하는데, 당최 나오는 게 없네요. ㅠ.ㅠ 이미 썼던 것을 고쳐 쓰고 보강하는 것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새 글" 쓰고 싶어요!! ^^

      똑순맘은 잘 할 거에요. 글로만 접해 보아도 온유하고 성실하고 시각이 넓고 마음이 따뜻한데다 재능까지 있으니까요. 나처럼 엄벙덤벙 단세포로 살아도 고쳐 살아볼 시간이 확보된 시대이기도 하구요.

      절대육아기간을 몇 년으로 잡는지, 그 기간과 그 이후의 큰 그림을 그리고 한 방향으로 매진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 우선 바라볼 곳이 필요하겠지요. Design First!

      지금은 절대절명의 관계이지만, 아이들과도 적절한 분리가 필요한 시점이 오겠지요. 어떤 관계에서든지 애착과 분리의 균형 만큼 어렵고 중요한 것이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나는 여전히 '독립성'에 이끌리네요. 막 읽은 책의 이런 구절 같은 것에. 편안한 주말~~

      " 개인화는 소비자 의식과 자기확신의 혼합물이다. 이러한 자기확신은 삶의 만병통치약이 되어 개인적 해결책을 찾아내고 불확실성에 대해 대처하고 또 의심스러운 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비일관성을 수용하고 그것을 유쾌한 시니시즘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주 풍부해질 수도 있다. 이리하여 마치 수천 명의 카프카적 인물들이 되살아오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
      울리히 벡 - 사랑은 지독한 혼란 -

      2009.03.08 09:55 [ ADDR : EDIT/ DEL ]
  4.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서평만으로도 구입해보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연애에 대한 개인적인 말인들 누구나 못하겠습니까.. 연애비법(?)류의 책을 안 사보는 이유인데, 그럼에도 수많은 이들의 사례를 인터뷰하여 얻은 탄탄한 자료에 기초했다는 점이 끌리는군요. 아무래도 연애에 목마른 시점이라서 그런지.. 이런 리뷰에 확 땡깁니다. ^^
    저자의 최상주의자인 면모를 잡아내시는 미탄님의 혜안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하하

    2009.04.02 22: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닉네임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노회해서인지^^ 미혼이라는 것이 어리둥절하네요. 이 책은 진지함이나 감각면에서 읽어보실 만합니다.

      2009.04.04 11:04 [ ADDR : EDIT/ DEL ]
  5. 맙소사.. 노회라구요~ 문득 닉네임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이 진지하게(!) 듭니다.

    2009.04.04 22: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