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 갤러거, 내 인생을 바꾼 여자들만의 티타임, 삼진기획 2004


몇 년 전에 도정일, 최재천의 ‘대담’을 읽고난 뒤 조금 이상한 감정이 든 적이 있다. 문제의 발단은 도정일의 방대한 지식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인문학은 물론이요, 생물학에서조차 최재천보다 더 박식해 보였다. 나는 끝없는 그의 지식과 썰에 놀라서, 도대체 한 인간이 왜 이토록 방대한 지식을 보유<?>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바디샵의 창시자인 아니타 로딕의 전기를 읽으며 의문이 풀린 적이 있다. 나는 좋은 지식보다 좋은 삶을 더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천재적인 지식인보다, 우직할 정도로 저돌적인 행동력에 더 매료되었던 것이다. 물론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제시할 정도의 지식은 필요하다.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탐구심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식의 양과 필요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삶이다.


요즘 실용서에 질려서인지 근본적인 공부 -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에 쏠린다.  안그래도 약한 뿌리를 서로서로 인용하느라 바쁜 실용서는 임시땜방용 밖에 안된다. 삶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철학은 인문학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공부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삶이 될 것이다. 나를 지혜롭게 하고 내 삶에 방향성을 주는 공부!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공부! 나를 크게 하고 텅 비게 해서 다른 사람을 뜨겁게 껴안게 하는 공부가 아니라면, 나는 곧 질리고 말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내가 쓰고 싶은 책도  우리네 삶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드는 책이다. 얄팍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으면서 읽는 이의 마음을 파고드는 책, 요컨대 진정성이 있는 책이다. 당연히 그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너무 이론적이거나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삶의 현장을 담고 있어 한 가닥 깨달음을 주는 책! 이 책은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그 범주에 들어가는 책이다.


저자는 LA 타임즈에서 근무한 바 있는 경영 컨설턴트라고 한다. 책날개에는 그녀가 고객서비스, 영업, 동기유발, 대화술, 리더십 전문가라고 나와 있지만 이 책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여자들에게 주는 편지처럼 편안하다. 직업적인 측면보다는 개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가족, 친구, 과거와의 화해, 육체의 아름다움, 일, 결혼과 성공에 대한 모든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경험과 친구들의 경험을 아울러 조근조근 일러주는 말들이,  귓전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친근감이 있다. 삶의 체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책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지혜로운 선배와 티타임을 가진 것처럼 생생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이다.


저자는 아들의 여자친구들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그녀들이 상처받은 작은 영혼이었든, 거칠어 보일 정도로 독립적이었든, 위압적인 면이 있는 페미니스트이든 저자는 그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성장기에 우리는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지만 상처도 피할 수 없다. 그로 인한 반사와 확인에 대한 갈망 때문에 어린 시절에 받지 못했던 것을 이성에게서 찾으려고 애쓰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 남자에게서 완벽한 어버이의 사랑을 찾고자 하는 미신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가! " 하는 놀라운 깨달음을 이끌어낸다.  존재할 수 없는 완벽한 사랑에 대한 미신을 놓은 자리에, 인생에 대한 거침없는 향유가 시작된다.


저자는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국면에서 의미를 이끌어낸다. 까다롭고 비판적인 출판 에이전시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자 친구가 이런 말을 해 준다.


“아이린은 네 엄마가 아냐. 그리고 이건 비즈니스야. 아이린은 너를 사랑할 필요가 없어. 아이린의 일은 단지 네 원고를 팔 수 있도록 틀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너를 치켜세우면서 훌륭하다고 말해 주기만을 바란다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보렴. 아니면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든가.”


저자는 한 번 배운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확대하고 응용해서 자기화하는 데 선수이다. 친구의 적절한 조언 이후로 그녀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으며 거의 충돌하지 않는다고 한다. 완고하고 까다롭고 귀찮고 심지어 무례하고 불쾌한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가능할지 몰라도 나도 이 부분을 실험해 보고 싶어진다. 내 기준에 맞지 않다 뿐이지 그들은 그들 자신의 모습에 충실한 것이다. 감정과 기호를 뛰어넘어 대화의 내용만 직시할 수 있을까?


삶의 기미를 아는 여자는 무서울 것이 없다. ^^  어느 정도의 독립성과 적극성만 갖춘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여자는 나이 들수록 강해지고 여유로워지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 많은 것을 거치며 심신을 단련해왔고, 나를 보살피고 남을 보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란 정면돌파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의 여유는 절대 살아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내 삶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삶도 내 것처럼 느끼고 수용하면서 여자는 무한대로 커진다. 경험에서 깨달음을 이끌어내면서 여자는 갈수록 지혜로워진다. 이 책의 저자도 생생한 표본이 되어 준다. 저자가 툭툭 건네는 말마다 깊은 내공이 우러나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 중의 몇 가지만 소개한다.



누구도 나와 똑같을 수는 없다.

때론 나 자신도 내가 되기 힘들 때가 있다.


환경이 사람의 성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환경은 사람의 성격을 드러낼 뿐이다. 실망과 불행은 우리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나게 한다. 투쟁과 고통은 우리의 육체적 감성적 정신적 역량을 시험한다. 우리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극복하면서 인간으로서 성숙한다.


때로는 어둠이 나를 삼키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야



‘나는 정리를 못해’

‘나는 주의가 산만해’

‘나는 충동적이야’

라고 말하고 싶을 때마다 ‘지금까지는...’이라는 말을 붙여보라.

그럼으로써 분명한 차이를 느끼게 된다.

과거라는 폭정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라는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게 된다.

과거는 과거로 지키고 과거가 내 미래를 규정짓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내 선택에 대해 비난받을 수도 있지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나의 유일한 한계는 나의 창의성, 상상력, 그리고 열정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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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환경이 사람의 성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환경은 사람의 성격을 드러낼 뿐이다.

    우와. 이 구절 정말 맞아!라면서 무릎을 치게 만들어주네요~.
    그리고 미탄님 덕분에 또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한권이 늘었어요~. 흐흣.
    (앗, 인터넷서점에서 찾아보니 절판인 책이네요.;;)

    2008.12.29 15: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도서관에서 필 받는대로 뽑아 보는 책이라 그래요.
      수진님 생활권 안에 있는 도서관 하나 잡아서
      친하게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나하고는 궁합이 맞지만,
      수진님에게도 필이 오는지 체크해 볼 수도 있고,
      도서관 책 슬슬 보다가 꼭 갖고 싶은 책만
      소장하는 것도 괜찮겠더라구요.

      좋은 귀절이 많아요.
      수진님께 이 귀절을 선물로 드릴게요.

      "살아가면서 사랑을 주지 않은 순간
      힘을 사용하지 않은 순간,
      또한 이기적으로 몸을 사려 행복을 놓치는 순간 등이
      바로 우리가 인생을 낭비하는 순간들..."

      2008.12.29 19:59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입니다

    2008.12.30 01:20 [ ADDR : EDIT/ DEL : REPLY ]
    • ㅎㅎ 오늘 하루 더 마음에 담아 둘 수 있도록 책 속의 구절 몇 개 더 소개해 드릴게요.
      ---------------------

      잃기 전까지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지금 더 사랑하여라,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결국 잃게 될 테니까.


      살아남는다는 것은 계속해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부처는 자신의 아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집을 떠났다
      나는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구도 남겨두고 떠나고 싶지 않다.
      행복은 바로 이곳, 지금 이 순간, 이 세상, 이 방 안에 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이기 때문에 가장 행복하다.

      2008.12.30 08:25 신고 [ ADDR : EDIT/ DEL ]
  3. "삶이란 정면돌파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의 여유는 절대 살아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고 공감이 가는 말이긴 한데 이런 절박함 보다는 "널널함"을 갖고 싶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군요.
    좋은 글 보고 갑니다.

    2008.12.30 20: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나우리님, 꼼꼼하게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배수의 진을 치고나면 절박함 속에서도 여유가 배어나오지 않을까요? ^^

      2008.12.30 23:54 [ ADDR : EDIT/ DEL ]
  4. 비밀댓글입니다

    2008.12.31 00:39 [ ADDR : EDIT/ DEL : REPLY ]
    • 새해에 가시적인 성과를 못 내면
      지치게 될까봐 미리 걱정이네요. ^^
      진도나가는 것 있으면 알려 드릴게요.
      편안한 마음으로 신년 맞이하시기 바래요.

      2008.12.31 01:44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