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3코스 중 외돌개 돔베낭길 사진출처 : 제주올레 홈페이지


언제부터인가 ‘올레’라는 말이 자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올레’는 ‘큰 도로에서 대문까지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인데요, 작년 9월 발족된 ‘제주올레’의 활동 덕분에 머지않아 세계공용어가 될 것 같습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제주에 도보여행자를 위한 길을 만들자는 취지를 가지고 발족되었습니다. ‘제주올레’의 이사장 서명숙씨의 추진력이 참 놀랍습니다. 서명숙씨는  23년간 ‘시사저널’과 ‘오마이뉴스’ 등에 재직한 기자출신입니다.


2003년 그녀에게도 인생의 하프타임이 찾아 왔습니다. 오랜 세월 피말리는 마감에 쫓기면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마음이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경고음을 울려댔다고 합니다. 그녀는 기어이 직장을 그만 두고 걷기 시작합니다. 걷기는 그녀에게 근원적인 생명력을 일깨워주고 마음에 윤기를 되찾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길은 종종 끊어졌습니다. 사람은 걸을 수 없는, 자동차만을 위한 길이 더 많았습니다. 그녀는 온종일, 한달내내, 몸이 지쳐서 그만두고 싶다고 외칠 때까지 걸어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그즈음 산티아고길에 대해 알게 되어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지 3년만에,  마침내 그녀는 길을 떠났습니다. 36일동안 8백여킬로미터에 달하는 산티아고를 걸으며,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일생일대의 ‘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주에도 이런 길을 만들자는 영감이 떠올랐던 것이지요.

전에도 한의사 이유명호씨가 제주와 강화에 걷는 길을 만들자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먼 나라까지 가서 산티아고 길을 걸어본 다음에야 벼락처럼 그 생각이 구체화된 것이지요.

 “제주의 옛길, 사라진 길, 다정한 올레들을 되살릴 수는 없을까. 끊어진 길을 다시 이을 수는 없을까. 그 길을 혼자, 때론 친구나 연인과 함께, 유유자적, 휘적휘적, 간세다리가 되어 걸어갈 순 없을까. 어지럼증이 생길 만큼 빠른 속도, 각박한 도시생활, 각종 첨단기기에 포위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할 순 없을까.”

이렇게 시작한 일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어 지금 파죽지세로 길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제주올레’의 일꾼들은 아름다운 길을 찾아내고, 끊어진 길을 잇고,  주변환경을 정비하고, 브로셔 ‘간세다리’(게으름 피는 사람)를 발간하고, 올레 사인을 부착합니다. 안티 공구리 -콘크리트 포장이 되지 않은 길 - 정신에 입각하여 ‘본디 제주 모습에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 제주를 샅샅이 누빈다고 합니다. 올레가 사유지를 관통해야만 할 경우에는 땅주인을 만나 ‘제주올레’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합니다. 

제주올레를 걷고난 뒤 사람들은 하나같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누군가는, 경치 좋다는 뉴질랜드에 이민 가 살다 왔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불과 다섯 시간 만에 오름, 바다, 돌담을 걸어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또 있겠느냐는 거지요. 제주에 숱하게 많이 와 보았지만, 그동안 제주의 겉모습만 보았지 제주의 속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람도 있었구요.

제주올레는 위기에 봉착한 제주의 관광을 회생시킬 히든카드가 될지도 모릅니다. 제주 관광객은 2005년 5백만명을 돌파한 뒤 증가세가 멈추었다고 합니다. 중국이나 동남아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거지요. 기업들은 더 크고 화려한 시설을 짓는 것으로 난관을 돌파하려 하겠지만, 그보다는 구석구석 제주의 흙을 밟는 올레 탐사가 더 미래지향적으로 보입니다.



      사진출처 제주올레 홈페이지  http://www.jejuolle.org/ 확대해서 보세요


제주올레는 작년 9월에 1코스를 개방한 이후로 지난 10월 10코스까지 개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도를 보니 벌써 제주도 해안의 절반을 잇는 길이 생겼군요. 한 코스에 4~6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모두 연결되면 정말 마음놓고 천천히 걸어볼 만한 길 하나가 생기겠네요. 제주에 길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스쳐보내지 않고 눈앞에 현실로 구현해낸 서명숙씨의 실행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길을 만들다니 이 얼마나 신나고 의미있는 일인지요. 전에는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100인' 이런 식의 선정이 조금 아니꼬왔는데 ^^  서명숙씨를 보면서 그런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제주올레가 이만한 성공을 거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숨겨진 열망에 부합되고, 그 사회가 발전해나가는 방향과도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있어야 할 일, 누군가 시작했어야 할 일인데  이제야 시작된 거지요. 그런 일은 한 사람이 시작하되 만인이 공감하여 호응을 하게 됩니다. 그 일의 혜택을 대대손손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됩니다. 사람들 스스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욕구를 대신 끄집어내줌으로써 미래를 열어나가는 사람의 역할이 있는 것이지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신이 서명숙이라는 개체를 선택하여 제주올레의 소명을 맡긴 것이라고 할까요.  하느님! 저를 살리시려거든 제게도 그만큼 의미있고 파급력있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내려주세요.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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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신의 아이디어를 결단력있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아요.
    저 역시도...
    그런 점에서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제주에 가면 꼭 한코스라도 걸어봐야겠어요.
    걷는것 좋아는데....

    2008.11.11 00: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갈수록 점점 걷기가 좋아지네요.
      제주올레는
      제주올래? 의 이중적 의미로도 쓰인대요.
      응~~ 갈게, 기다려!
      저절로 대답이 나간다니까요. ^^

      2008.11.11 07:13 [ ADDR : EDIT/ DEL ]
  2. 와~ 외돌게 돔베낭길 환상적이군요. 산티아고 가는 길에도 저런 멋진 길은 없었던 듯 하네요. 제주올레의 명성은 익히 들었는데 여태 가보질 못해 안타까워요.

    2008.11.11 11:07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곧 산티아고 여행기를 출간할 산나님을 비롯해서, 산티아고 여행기로 본격적인 2막을 열어젖히는듯한 김효선씨, 또 위의 서명숙씨를 포함해서 자꾸 산티아고가 다가오는듯... 하지만 그림의 떡. ㅠ.ㅜ

      2008.11.11 16:28 [ ADDR : EDIT/ DEL ]
  3. 제비꽃

    이번 제주여행에 저 돔베낭길을 걸었어요. 죽음이었죠. 그게 올레 1코스였군요.
    얼마전 서명숙씨 다큐를 보고, '저거다!'했죠. 닉을 '올레'로 바꾸기까지..-.-;
    제주여행 다녀오고나서 그곳에서 살고 싶어졌어요.
    하늘, 바람, 바다, 돌담, 싱싱한 먹거리, 그 모든 것이 맘에서 떠나지 않더군요.

    이렇게 글과 사진으로 재빨리 전해주시는 미탄님의 실행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감사~

    2008.11.11 20:52 [ ADDR : EDIT/ DEL : REPLY ]
    • 아하~~ 올레에 난코스도 있군요.
      언제고 한 번은 가 볼 텐데
      풍광이야 좋겠지만
      길은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실행력이 없지는 않은데,
      집결하는 힘이 약해서 걱정이지요. ㅠ.ㅜ

      2008.11.12 07:29 신고 [ ADDR : EDIT/ DEL ]
    • 제비꽃

      하하~ 난코스라뇨?
      '죽음'이라는 표현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환상적이라는 뜻이었어요. 걷기에 너무 좋은 길이예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말이 필요없을.

      2008.11.12 11:53 [ ADDR : EDIT/ DEL ]
    • 좋은 것, 멋진 것을 보았을 때 보여주고 싶어 생각나는 사람이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면서요? 누구 생각하면서 저 좋은 길을 걸으셨을꼬? ^^

      아, 글구 서명숙씨 책에서 찬찬히 보니, 저 길이 3코스더라구요.

      2008.11.12 19:52 신고 [ ADDR : EDIT/ DEL ]
    • 제비꽃

      누가 되든, 함께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랬죠.
      제가 갔을 때는 40여명의 동행이 있었기에 좀 한적하게 걷고 싶었어요. 말없이도 공감할 수 있다면 최고의 여행동반자일테고 말을 섞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테고요.

      참, 제일 소중한 사람 내지는 사랑하는 사람은, 뭘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아니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갖다 주고 싶은 사람이라네요.
      ㅎㅎ 저는 맛난 것을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시어머님과 남편이예요. 왜냐구요? 그들이 먹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럼 사랑하냐구요? 후후 글쎄요...^^

      2008.11.12 21:56 [ ADDR : EDIT/ DEL ]
  4. 와....! 정말 가보싶네요~!^^ 꼭 가봐야겠어요!!!

    이러니 하느님이 정말 계신가 싶습니다. ^^; 저런 아름다운 소명과 사람을 마련해주시다니~~
    미탄님도 곧 뭔가 해내실 것 같은데요-^^
    저야 지금도 감사할 따름입니다만...

    2008.11.14 16: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사업이든 사회활동이든 잘 되려면
      특정 그룹 혹은 사회의 요구, 결핍, 열망을
      긁어줘야 하겠더라구요.
      그랬을 때의 그 파급력이란, 정말 부러운 것이지요.

      덕담 감사합니다.
      정말 그래야 할 텐데요.

      2008.11.15 08:21 [ ADDR : EDIT/ DEL ]
    •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일전에 박원순 변호사가 쓴 '프리윌'이란 책을 봤는데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가 참 없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사실 해보고싶어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작은 것이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타인을 위해 나누고 싶었다는 것..
      그 '열망'을 펼칠 공간만 자기는 마련해준 것이란 얘기가 인상깊었습니다.
      돈이든, 시간이든, 안쓰는 물건이든, 재능이든, 마음이든.. 무엇이든 나눌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도 아름답고, 그걸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도 아름답고 고맙더라구요.

      그런 일을 찾아내는 것도 좋겠지만..
      제가 하고싶은 일이 마침 그런 일이었으면 참 좋겠다.. 생각하네요.
      똑순이랑 신랑이 모두 자서 무척 평화로운 오전입니다. ^^

      2008.11.15 11:02 신고 [ ADDR : EDIT/ DEL ]
  5. 서명숙님 예전에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파워와 리더십이 있는 분이지요. 의미 있는 사업 하고 계시네요.

    2008.11.15 01:0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예, 섬광같은 아이디어를 눈 앞에 현실로 펼쳐놓는 실행력은 거의 마술 같네요. 정말 부럽습니다.

      2008.11.15 08:22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