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08. 11. 6. 09:41

 




 사진 출처 : 맑은 물한동이 님 블로그 http://handonge.tistory.com/  


사흘 전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는데 풍경이 기가 막혔다.
수원화성 성벽에 억새풀이 활짝 피어 절정을 이루었다.
거기다 바람이 불어 사악 사악 소리를 내며 억새풀 파도가 출렁거렸다.
눈부신 가을햇살 아래 바람소리를 들으며 혼이 빠져 서 있는데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며 낙엽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빨갛고 노란 단풍잎들이 꽤 높이 날아올랐다가 천지사방으로 흩어지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아름답다... 

비슷한 풍경이라도 만날까 하여 어제, 그제 이틀동안 디카를 들고 가 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요즘 내 디카가 형편없이 화질이 떨어진다. 내 수준에서는 포스팅은 할 만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려울 정도로 뿌옇게 나온다. 사진없이는 아무래도 서운해서  맑은 물 한동이 님의 사진을 빌려왔다. 이 블로거의 아이디 만큼이나 맑은 사진이다.

낸시 우드라는 시인이 타오스족 인디언의 말을 받아적었다는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라는 표현에 접했을 때 잠시 어안이 벙벙했었다. 스콧 니어링이 백 세를 넘긴 후에 이제 그만 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든가. 어떻게 살아야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말이다.  

죽기 좋은 날은 평생 하루면 족하리라. 나머지는 모조리 살기 좋은 날로 만들어야 할 터...  바비킴의 노랫말처럼 , '아직 너무 늦은 것이 아니기를, 남겨진 시간 속에'


  

오늘은 죽기 좋은 날


모든 생명체가 나와 조화를 이루고

모든 소리가 내 안에서 합창을 하고

모든 아름다움이 내 눈 속에서 녹아들고

모든 잡념이 내게서 멀어졌으니

오늘은 죽기 좋은 날

나를 둘러싼 저 평화로운 땅

마침내 순환을 마친 저 들판

웃음이 가득한 나의 집

그리고 내 곁에 둘러앉은 자식들

그렇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떠나겠는가


 -- 낸시 우드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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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비꽃

    낸시 우드의 시를 읽으니, 몰아의 경지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진 전아의 상태가 느껴지네요. 저 시는 삶의 예찬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모든 날들이 그럴 수는 없겠지만 간절하게 저런 순간들을 바랍니다.
    '마침내 순환을 마친 저 들판'....이런 표현으로 내 삶에 표창주고 떠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눈부시게 옷을 갈아입으며 스스로 자찬하는 단풍들처럼. 낙엽은 그들의 웃음입니다.

    2008.11.06 12:19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ㅎ 포스트보다 더 뛰어난 댓글이로군요. ^^
      단풍과 낙엽에 대한 소회가 참 좋네요.

      2008.11.06 14:02 [ ADDR : EDIT/ DEL ]
  2. 내 인생에 저런날이 올까요? 단 하루라도...
    과연 인생을 살면서 "죽기 좋은날"을 맞이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저 간절히 저런 순간을 꿈꾸 봅니다.

    2008.11.07 00: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진솔하게 삶의 속살을 껴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품게 되는 소망이겠지요. 그래도 아직은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ㅠ.ㅜ

      2008.11.07 07:25 [ ADDR : EDIT/ DEL ]
  3. '그렇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떠나겠는가'
    이 구절을 읽으니 죽음이 낯선 어딘가로 가는 여행같이 느껴집니다.
    그래, 이제 그만 짐을 꾸려 오늘 떠나자.. 미뤄왔던 여행을 드디어 떠나기로 마음먹고 길 나서는 여행자.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요...
    살아가다보면 알게될까요..?

    2008.11.19 11: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새댁님 포스트를 읽어보니, 보기드물게 생각이 깊은 분이던걸요. 독서량도 만만치 않고 특히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도 돋보이구요.
      저 인디언처럼 온 몸을 다 해 내 가진 것을 다 소진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완성에 도달할 확률이 높아보이는데요?
      아직은 '떠난다'는 생각을 하기에도 이르지만요. ^^

      2008.11.19 11:25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