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중년 남자가 초등학생을 폭행하는 CCTV가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맞서 여자아이가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 치가 떨렸습니다. 아이는 영리하고 담대하게 있는 힘을 다 했습니다만, 머리채를 휘어잡은 완력을 이기지 못하고 질질 끌려 나가고 있었지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웬 남자가 초등학생을 바싹 따라오는 것을 수상하게 본 여대생이 다가오는 인기척에 남자는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나는 아파트까지 따라 들어온 남자의 대담함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아파트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거지요. 학교도 마찬가지고, 이혼율이 치솟는 핵가족도 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정상으로 보이는 가정에서도 얼마나 많은 갈등과 폭력이 숨어 있는지요. 그런가하면 청년세대에는 '88만원 세대'의 난국을 헤치고 조직사회로 진입해봤자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학이 팽배합니다. 물량주의, 성장주의, 효율성의 원리에 휘말려 정신없이 달리던 사람들은, 목표도 없고 희망도 없이 피폐해진 자화상 앞에서 당황합니다. 그야말로 사회 전체가 위험지대입니다.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는, ‘가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공동체적 기반’이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직시합니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마을’을 제시합니다. 나는 그이의 판단을 신뢰합니다. 명쾌한 논리를 가진 문장가요, 하자센터와 대학, ’또 하나의 문화‘ 활동을 통해 전 연령층을 접하는 활동가의 경험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가슴 뭉클한 연민과 강력한 실천력을 두루 갖춘, 흔치않은 인물입니다.


그에 의하면 “경제성장이 멈칫하고, 더 개척할 땅도 없고, 이루어야 할 유토피아도 없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다시 고향을 찾고, 자신의 역사와 대면하며, 쓰던 것, 손때 묻은 것을 사랑하게 되고 재활용할 생각을 하게 되고,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농촌적이고 봉건적인 것이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도시적인 것, 새 것, 반짝거리는 것, 시간성을 죽인 것이 참을 수 없이 촌스럽게 보인다. 이것이 바로 후기 근대 혹은 탈근대의 시작이라구요.”  탈근대 같이 어려운 말은 모르겠지만, '반짝거리는 것, 시간성을 죽인 것이 참을 수 없이 촌스럽다'는 말은 이해가 갑니다. 자연, 고향, 역사, 근본 같이 본질적인 것들의 복권이라고 할까요.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는 위험사회에서 삶과 소통의 영역이 무력화된 개인들은 갈수록 타인과 공존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그러나 타인과 공존하고픈 욕망과 필요가 갈수록 높아지는 삶을 담아내는 미래 주거는 바로 ‘마을’이라는 거지요.


그가 꿈꾸는 곳은 작은 학교와 공동 식탁이 있는 생기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거대 백화점과 우뚝 솟은 관 주도적 문화 공간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학교와 문학 카페와 식당과 소극장과 작은 진료소들이 있는 타운 센터 입니다. 노인들이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있으며, 수시로 물물 교환이 이루어지고, 서로가 잘 알기에 함께 있음으로 안전한 마을! 근대적 거대주의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로 들리겠지만, 이미 그런 마을이 실험되고 있습니다.


공동육아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성미산 학교를 세웠고, 나아가 마을을 이룬 것입니다. 그 곳에는 ‘나무 그늘’이라는 유기농 아이스크림 가게와,  ‘동네부엌’이라는 반찬 가게와, ‘꿈터’라는 도제 학습식 택견 도장이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는지 드러나지 않습니까? 


’내‘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는 ’우리들‘의 아이가 모두 안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돌봄’과 ‘평생학습’의 시공간! 나도 그런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통하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 돌보는 일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럼으로써 家族을 넘어 加族이 되는 일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참고도서: 조한혜정, 다시 마을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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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쾌한 아침 맞으시고 계시죠?
    요즘 거의 막노동 하느라 밤에는 방전되어 기력이 없네요.
    어제는 글도 못 올리고 걍 자버렸져요..흑흑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당.그죠?
    특히 아이들의 육아를 통해 같은 의지를가진 엄마들을 만날때면 동지를 만난 것 같아요.미탄님꼐서 앞장서 주심 좋겠네요. 육아에대한 많은 경험을 가지셨으니 힘들어 헤메이는 저 같은 엄마들에게 힘을 주심 좋겠네요..ㅎㅎ
    저는 님 손 잡고 잘 따라다니겠습니당..히히.

    오늘도좋은 날 되세요^^

    2008.11.02 07: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지금도 바삐 일하시겠네요.
      하우스 위주이시면 농번기도 없으려나요?
      바쁘고 힘들어도 인생의 절정을 통과하고 계신 것 같아요.

      '방전'이라~~
      가끔 표현이 톡톡 튀는 것을 느껴요.
      글도 잘 쓰실 것 같아요. ^^

      2008.11.02 16:38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