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헐리, 60초 소설, 류시화 역, 웅진닷컴 2000


댄 헐리는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직업을 가졌다. ‘60초 소설가’! 그는 미국 변호사 협회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길은 아주 새로운 곳에서 열렸다. 1982년 25세에 떠올린 60초 소설가라는 아이디어를 다음 해에 실천한 것이다.


그는 조끼까지 딸린 회색 플란넬 정장에 세로줄 쳐진 흰색 옥스퍼드 셔츠를 입고, 청색과 황금색이 어우러진 넥타이를 매고 코끝이 올라간 반짝이는 검은 구두를 신고 거리로 나갔다. 행인들이 자신을 정신나간 사람이나 거지로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시카고 미시간 애비뉴의 인도에 앉아 무릎에 타자기를 놓고 행인에 대한 60초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곧바로 유명해진다. 언론은 그를 ‘거리의 셰익스피어’, ‘길모퉁이의 마르셀 프루스트’, ‘상점 앞의 프로이드’라고 표현했다. 다음은 그가 처음으로 쓴 60초 소설이다.


정말 신기한 일


"어느 구름 낀 오후, 조지와 미치는 미시간 애비뉴를 거닐다가 갑자기 살아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미치는 자신이 숨을 쉬고 있고 심장이 뛰고 있으며 지금 미시간 애비뉴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세상이 돌아가는 동안 그 영원한 세월 내내 자신이 죽어 있었음을 갑자기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 것이다.

조지는 이것이 자신의 인생,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슴이 떨렸다. 그는 피부에서 땀이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귀로 자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사물들을 볼 수 있었다. 소리들을 실제로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신비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은 과거 속에서 산다. 내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  매순간 어딘가로 달아나려고 애쓴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정말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그러므로 갑자기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신비하고 낯설고 이상한 일이다. "



그는 16년 동안 22,613편의 60초 소설을 썼으며, 그의 사이트는 www.instantnovelist.com 한 달에 5백만 명이 찾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그는 짧은 대화를 통해 상대방에게 가장 중요한 현실을 꿰뚫고, 그것을 풍자나 우화적 기법으로 비틀어 60초 소설로 옮겨 놓는다. 이 책은 그동안 쓴 60초 소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60여 편의 글을 모아 펴낸 것이다. 그 중에서 베스트3를 뽑아 보았다. 냉소적인 프로그래머에게 써 준 글에서는 우회적으로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기지가 돋보인다.



유니버스 2.0

"닉은 텍사스 주 오스틴에 사는 불만으로 가득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그는 시스템에 반대했다. 도시에 사는 모든 젊은 전문가들을 모조리 싫어했다. 순종적인 사람들은 누구나 싫어했다. 회색 양복과 회색빛 마음도 싫었다.

그래서 그는 우주의 근본 설계에 관련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세상을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새로운 프로그램에 그는 ‘유니버스 2.0’이라는 이름을 붙일 계획이었다.

그 프로그램이 작동하면 모든 사람이 소시민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대신, 정열적이고 대담하게 행동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회색빛 순응주의자가 되는 대신,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생각없이 쇼핑이나 다니고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중산층이 되는 대신, 세상의 모든 사람이 평화와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해 살아가리라.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그의 프로그램에 몇 가지 오류가 생긴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우월감을 느끼는 닉의 성격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 주었다. 유니버스 2.0이 세상에 나오려면 아마도 몇 주일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NBC 뉴스 앵커맨인 톰 브로커가 호기심이 많아서 저널리스트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다음 글을 쓴다.  단 한 마디에서 톰 브로커의 유형을 간파하는 통찰력, 그것을 유머와 섞어 60초 소설로 옮겨놓는 순발력이 기가 막히다.


톰 브로커의 끝없는 호기심

"톰 브로커는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는 하늘이 왜 푸른색인지 알아야 했다. 훗날 방송기자가 된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습니까?”

“얼굴 화장이 잘 되었나요?”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와 라이벌인 댄 래더가 나보다 잘하고 있습니까?”

지식에 대한 욕구도 끝이 없어서, 무엇 때문에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지, 왜 바보들이 사랑에 빠지는지 알아야만 했다. 또 상승이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 것인지, 왜 삶에서 유일하게 변치 않는 사실은 삶이 늘 변한다는 것인지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답은 끝내 알 수 없으며, 수수께끼도 풀리지 않게 되기를 톰은 기도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위대한 미지의 사실을 알려고 시지프스처럼 계속 분투하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저녁 뉴스의 시청률이 형편없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만화가 줄 파이퍼가 난데없이 지붕이 엄청나게 새서 고민이며 부엌에서 잤다는 말을 듣고는 이런 글을 써 주었다. 비가 샌다는 짜증나는 상황에 순식간에 환타지를 입히는 이 상상력을 보라! 



완전한 변화


"만화가인 줄의 침실에 비가 새기 시작했다. 지붕이 주저앉고 있었다.

줄과 그의 아내 제니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부엌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딸 할리도 비바람 속에서 잠에서 깨어나 가정부 방으로 갔다. 그들은 떨어지는 빗물을 받기 위해 집 안 곳곳에 쓰레기통을 받쳐놓아야 했다. 하지만 비는 계속해서 내렷다. 무려 서른 밤 서른 낮을 쉬지 않고 내렷다.

마침내 비가 그쳤을 때, 카펫에서는 이미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줄이 만화를 그리기 위해 나갔다 돌아오자 침대에서 단풍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기자인 그의 아내가 어느 정치인의 재판을 취재하고 돌아와 보니, 그들의 옷장에서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토끼가 덤불 속에서 뛰어다니고, 나비가 날고, 개들이 짖고, 소들이 돌아다니며, 들소가 돌아오고, 마침내는 공룡도 나타났다.

그들의 침실은 자연에 의해 새롭게 바뀌고 있었다. 마침내 줄은 집을 지은 건축가에 대한 분노와 불쾌한 감정을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옷을 벗어 던지고 아내 제니와 함께 아담과 이브가 되어 그들의 에덴 침실에서 즐겁게 춤을 추엇다.

바로 그때 건축가가 나타나 비 새는 지붕을 고쳐 주었다.

이제 막 재미있어지려는 순간에. "



살아가느라고 바쁘고 힘들어서 정작 왜 살아가는지를 잊어버리기 일쑤인 우리들에게 댄 헐리는 슬그머니 60초 소설을 내민다. 그 속에는 유머와 동화적 상상력과 자기통찰과 사물을 다르게 보는 인식의 전환이 들어 있다.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60초 소설을 읽는다. 그리고 허를 찔리거나 커다랗게 웃는다. 그럼으로써 아주 소중한 것을 하나 깨닫는다. 진짜 소중한 보물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댄 헐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현실 세계에서 해피 엔딩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짐으로써 해피 엔딩을 이룰 수 있을 뿐이다.”


댄 헐리의 인생을 접하고 나니 나도 일을 벌리고 싶어진다. 그가 60초 소설을 떠올린 것처럼 촌철살인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기도하고 싶다. 단순한 일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배울 수 있어 나날이 깊어지는 일, 나 자신과 남들에게 해 준 가장 훌륭한 일, 그리하여 내 생애 최고의 파티가 될 수 있는 일!  그런 일이 하고 싶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일이라면 더 좋고!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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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60초 소설을 쓰려고 블로그에 카테고리를 만들었는데 아직 한 편도 쓰지 못했네요. 문득 그 기억이 떠올라 조금 괴롭습니다^^

    2008.10.23 15:24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그랬군요. 저도 60초 소설에 상당히 땡겼는데, 비슷한 취향이 있나 보네요? ^^

      2008.10.23 23:35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