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이 있습니다. 10포인트 활자크기로 A4 50장 이었으니 제법 긴 분량이었지요.  아무런 격식이나 계획 없이 연령대별로 생각나는 대로 썼는데,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내가 살아온 모습이 고스란히 거기 있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유년의 자산과 20대의 열정과 인생 최고의 절정인 육아프로젝트, 마흔의 도약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내가 내 발등을 찍은 일들도 다 불려 나왔습니다. 얼굴이 뜨듯해질 정도로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인생이었습니다. 사느라고 살았는데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칡덩굴처럼 얽힌’ 상황이 가슴 아팠습니다.


그런데 내가 쓴 내 인생을 읽다보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살아온 날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스윽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아주 객관적으로 느껴진 것이지요. 남의 일처럼 심상해지니까 더 이상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구요. 나는 더 이상 과거의 실패에 붙들려 징징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아주 재미있게 느껴졌구요, 50장 짜리 미스토리를 쓰고난 후  ‘글쓰기’라는 일생일대의 친구를 갖게 되었습니다.


살아온 날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과거에 대해 쓰는 것인 동시에 미래에 대해 쓰는 행위입니다. 나의 기질과 선택이 나의 인생을 만드는 과정이 훤히 보이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짐작이 되는 거지요. 어제가 쌓여 오늘이 되었듯이, 오늘이 쌓여 내일이 된다는 것이 명확해지면 허투루 살 수가 없게 됩니다.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이라는 책에는 누구나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자기 삶을 돌아보는 480가지 질문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군요.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그려 보라. 그런 다음 그 아이 앞에 지금의 당신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지금까지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준비해 온 일이 있는가?


40대의 어느 날, 평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설명해 보라.


‘아, 지금도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라고 말하면 어떤 것이 머릿속에 떠오르는가?


회한으로 남아 있는 순간들은 어떻게 되돌리고 싶은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라. 되돌아 볼 때 가장 놀랍고 경이로운 순간은 언제인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마침내 경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수확은 무엇이었는가?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희망은 무엇인가?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했던 관심사에 대해 말해 보라.


자신이 진정으로 깨달은 또 다른 사람들도 깨닫기를 바라는 인생의 핵심은 무엇인가?


당신이 사랑받아 왔음을 보여 주는 순간이나 징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해 보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일로 남아 있는 사건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용납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지금은 받아들이는 일은 무엇인가?


출생일을 시작으로 오늘 날까지 선을 하나 그어 보라. 당신의 인생을 대변하는 선이다. 그 인생의 선 위에 정신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점을 표시해 보라. 왜 중요한지도 함께 말해 보라.



구본형은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억을 남겨야 한다고 합니다. 자서전이란, 자신이 기록하지 않으면 누구도 기록해 주지 않을 기억을 남겨야 하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의무인지도 모른다구요.  마가렛 미드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보여 주고자 오랜 기억을 하나하나 모아 자서전을 썼다고 하구요.  당신도 인생을 기록할만한  당신만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글을 쓴다. 인생을 두 번 맛보기 위해, 그 일이 있었던 순간과 추억 속에서의 그 순간을 함께 맛보기 위해 글을 쓴다. 인생을 초월할 수 있도록, 그 너머의 어떤 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알기 위해, 미로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쓴다.

-아나이스 닌-



참고도서: 린다 스펜스,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고즈윈 2008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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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탄님의 미스토리 글을 읽은 후 몇번이고 연필을 들었다가 단어하나 못 쓰고 걍 노트를 덮었습니다. 왠지 잘 안되여~~~
    근데 오늘도 이 글을 읽으며 난 정말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꼭 해야하는 작업이라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쓴다는 것은 참 어렵지만 쓴다는 작업 뒤에, 산 하나를 넘은 뒤에 내 인생에 다가올 자유로움에 눈 부셔 하는 내가 보입니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질 않을 나의 이야기를 써 보아야겠습니다.

    미탄님의 숙제를 언제 다 할지 모르지만 한번 해 볼랍니다.
    '제가 모범생이라 숙제는 꼭 하거든요...ㅎㅎ

    좋은 날 되세요.
    저를 위해 기를 쓰며 써 주신 글에 감사합니다.
    열매 하나 뚝 따 갑니다..♡♥♡♥^^*

    2008.10.17 09: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어이쿠, 새댁님.
      미스토리를 한 줄도 못 쓰셨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데요.

      "산 하나를 넘은 뒤에 내 인생에 다가올 자유로움에 눈 부셔 하는 내가 보입니다"

      이런 빛나는 문장으로 보아서요.

      이미 새댁님은 자유로운 분이세요.
      그 자유를 무엇을 가지고 구현할까 호시탐탐 노리던 중에
      블로그를 발견하신 거구요.

      어느 책에서 본건데
      '나는 내가 커서 무엇이 될 지 아직도 잘 모른다'
      이 말은 새댁님의 세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

      2008.10.17 11:38 [ ADDR : EDIT/ DEL ]
  2. 출생일을 시작으로 오늘 날까지 선을 하나 그어 보라. 당신의 인생을 대변하는 선이다. 그 인생의 선 위에 정신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점을 표시해 보라. 왜 중요한지도 함께 말해 보라. 라는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지금이야.'라는 마음의 소리였습니다.

    흔적은 처음 남깁니다만 언제나 미탄님의 포스팅 잘 보고있답니다~.

    2008.10.17 10: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와아~~ 뉴페이스다! ^^
      흔적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익명의 조회 숫자에서 인간으로 거듭나는 일이니
      놀랍고도 신비로운 사건이 아닐지요? ^^

      지금이라구요?
      그 이유까지 알려주시면 더욱 반가울 것 같습니다요. ^^

      2008.10.17 11:42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