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큰 대 자로 누워 기억 속으로 오감여행을 떠납니다. 먼저 청각, 소리에 대한 기억이 참 빈약하군요. 한여름 맹렬한 햇볕 속에서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매미울음을 기억합니다. 모든 것이 멈춘 작열하는 땡볕 속에서, 날카로운 송곳으로 찔린 것처럼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끝없는 허무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음악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내가 음을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을 가진 적도 있네요. 8,9년 전 땅끝으로 여행가서 한 잔 하고 춤을 추던 때였는데요, 음악과 동작이 하나가 되어 거의 유체이탈을 맛보았으니, 그 경험은 청각과 촉각을 함께 느낀 것으로 해야겠네요.


청각 만큼이나 후각 영역도 취약합니다. 아하! 후각은 독립적이기 보다는 비슷한 냄새를 맡았을 경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강하겠군요. 촉각에 대한 기억도 별 것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외가에서 명절이면 술을 하기 위해 술밥을 지어놓습니다. 밥을 아주 되게 지어서 멍석에 펴서 말리는데요, 오며가며 그 밥을 한 움큼 집어 꼭꼭 뭉쳐서 먹으면 참 맛있었습니다. 아마 찹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멥쌀과는 조금 다른 찰진 촉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미각에 대한 기억은 제법 풍부합니다. 주로 엄마가 해 주시던 음식들입니다. 추석날의 토란국, 그 미끄덩한 느낌은 결코 맛있다고 할 수 없는데도 가끔 먹고 싶습니다. 배와 밤을 채썰어 넣고 공들여 양념한 보쌈김치며 만두 등 엄마표 음식은 모두 음식답습니다. 내 아이들의 미각경험을 생각하면 조금 찔리는 기분이 됩니다. ^^


야마시타 유미가 권하는 '오감이력서'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생활 속에 오감을 되살리는 일에  골몰하고 있군요. 인간은 보는 것뿐 아니라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손으로 느끼는 등 오감을 사용하여 세상을 풍요롭게 가꾸어 왔는데, 현대에는 정보 수집의 80%를 시각에 의존하는 탓에 감각 세계의 다양성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군요.


그의 문제제기를 보면 정말 사태가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킨십을 많이 접하지 못하고 자란 세대는 자신의 아이를 안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일본에는 touch care 강습이 있다구요. 모성이란 자연히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접촉하는 가운데 차츰 생겨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살과 살이 맞닿을 때 아기들에게는 자라는 힘이 어머니들에게는 키우는 힘이 생겨난다는 거지요.  그러니 touch care는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스킨십 - 촉각만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보과잉 시대에는 자신의 미각이 아니라 머릿속에 입력된 정보만으로 음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스스로 맛보기를 소홀히 하고 효능과 건강을 신앙의 수준으로 올려놓아 특정 상품에 집착하게 되는 것을 그는 ‘食의 파시즘’이라고까지 합니다. 자신의 혀로 느끼고 맛보고 먹는 본래적인 행위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군국주의에 버금가는 위협으로 느끼는 그의 감수성이 좋습니다.


후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냄새는 잊혀진 기억이나 감정을 회상하는 가장 강력한 타임터널이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자연의 냄새를 모조리 없애고 그대신 향기비즈니스가 팽창하고 있습니다. 무취문화와 인공향기가 가져올 후각의 변화가 두렵습니다.


청각은 또 어떨까요? 언어 이미지의 80%는 음이 지배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느끼지 못해도 언어가 음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그 영향을 받는다구요.  단어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표정인 音相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갈수록 저급하고 파편화된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니 어쩌면 좋을지요? 


우리가 편하게 듣는 CD의 음원은 사람 귀에 들리는 범위만을 채용한다구요,  22khz 이상인 음은 넣어도 소용없다고 삭제된 것인데요, 사람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뇌에 자극을 주는 초고주파야 말로 뇌에 자극을 주고 알파파를 증가시켜 뇌를 활성화시키는 필수영양소라네요. 우리는 음원의 풍요로움 속에서 정작 소리의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거지요.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이 쇠퇴한 대신 시각체험은 과도하게 팽창되어 있는데요, 시각에 의존하는 것이 위험하기 보다는 주어진 정보나 이미지에 의존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합니다. 내 눈으로 본 것 같지만 사실은 타인의 시각을 단지 수용하고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거지요. 게다가 내 눈으로 본 것이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조작된 정보라면 그 위험은 더욱 증폭되겠지요.


이런 착각과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감각을 사용해서 직접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와인도 마셔 버릇한 사람이 그 맛을 알고, 차도 타본 사람이 차이를 압니다. 그러니 책 보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공연 보고 여행 다니며 자신만의 느낌, 감성, 감각의 레퍼런스를 키워내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감각을 풍부하게 사용하지 않는 한 이 혼란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잊고 있던 오감을 되찾아 일상생활로 되돌리지 않으면 암흑과 같은 이 사회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나침반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참고도서 : 야마시타 유미, 오감 재생, 아이티아이북스 2005


파란 글씨는, 정진홍, ‘완벽에의 충동’에서 인용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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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눈을 감고 기억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어요.
    눈을 감고는 그냥 바로 잠들어 버리는,
    기억이라는 작업이 늘 아쉬운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냄새를 기억하고, 맛을 기억하고, 느낌을기억하는...
    잠시만이라도 나의시간이 필요함을 새삼 느낍니다.

    아~~~
    일분의 자유가 그리버라~~~

    행복하시와요~~

    2008.10.15 13: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하루종일 잠시도 쉬지않고 몸을 놀리실 것 같아요.
      그러니 눕자마자 잠드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복이 아니겠어요?
      ㅎㅎ 요즘은 자투리 시간에 포스팅하시랴, 블로그방문하시랴 더 바빠지셨겠네요.

      2008.10.15 21:18 [ ADDR : EDIT/ DEL ]
  2. 장마에 물이 귀하다더니... 참.
    하긴 카사노바가 외로운 법이죠..ㅎㅎㅎ
    언제쯤 되면 물 마른 냄새와 마른 나무 냄새를 내 후각경험으로 쌓아둘 날이 올까요.
    저 아는 누군가는 '눈 쌓이는 소리'가 좋았다던데.

    2008.10.16 07: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정말 음치거든요. 음악하고 담쌓고 살았는데 요즘 땡기네요. 소설은 너무 사설이 길고 작위적이라 안 읽은 지 오래되었고, 영화도 자주 보는 편이 아니지만 더욱 지루하게 느껴지고 음악이 다가 오네요.
      조만간 소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기를 바랄 밖에요.

      승범씨가 예로 든 냄새와 소리에서 문학청년 내음이 팍팍 나네요. ^^

      2008.10.16 22:32 신고 [ ADDR : EDIT/ DEL ]
    • ㅎㅎ 맞아요. 문학청년.
      도종환의 시에 나오는 말이에요..
      소리는 오대산 산장지기했던 아저씨 말이구요..

      2008.10.17 08:2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