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08. 9. 24. 19:25





수원에서는 도심에서 10분만 나가도 이런 곳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뜻하지않게 코스모스길을 발견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키가  크고 홀홀한,  전형적인  코스모스가 제법 길게 심어져 있었습니다. 주차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에 보니, '권선구 평동 곳집말' 이라고 쓰여있을 뿐 저 하천의 이름을 몰라서 서운하군요.




코스모스는 그야말로 가을꽃이지요.
코스모스로 시작하는 가을 편지는 아주 강력합니다. ^^
마음의 가장 여린 구석, 가장 결핍된 부분을 여실하게 드러내주니까요.







아침에 시집에 손이 간 것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가을은 던져 두었던 시집을 다시 집어들게 합니다.
좋은 시집은 두고두고 진액이 솟는 영약인가 봅니다.
문태준의 '가재미',
처음 접했을 때보다 더욱 커다란 은혜를 입었습니다. ^^

누군가, 글이 안 써지면 시집을 읽으라더니,
정말 시어는 언어의 보고로군요. 
청명하고 명징한 문태준의 시어 덕분에 
내 가난한 어휘와 무디어진 감성이
환해집니다.






봄에 와도 좋겠습니다.
이 후미진 곳에 벚나무와 코스모스를 심은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개망초가 피었다 공중에 뜬
꽃별. 무슨 섬광이
이토록 작고 맑고 슬픈가

문태준의 개망초에 대한 헌사는
모든 꽃에 바쳐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코스모스가 피었다  허공에 걸린
마음. 서럽게 가난한 마음이
어찌 이리 고운가






어린 날의 기억은 강력한 것입니다.
나는 과꽃만 보면 자동적으로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구나'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사는' 처자가 떠오릅니다.

꽃만 보면 무엇이든 눈 한 번 마주쳐야 하는 버릇.
꽃은 그리움이고 아름다움이고 관능이고 완성입니다.
그러니 꽃 앞에 서 있어도 꽃이 그리울 밖에요.



어느덧 감잎 지고 무서리 내려 흙이 꼬들꼬들해지는
이 가을빛 속에 나 홀로 설 적엔
아무라도 서러울 것입니다.
가을은
내가 간직한 황홀한 폐허에
맞닥뜨리는 일이니까요.

모든 결핍이 아우성쳐서
마음이 아픕니다.
코스모스 꽃길에서는
그 누구도 아픕니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상처를 어루만지는 자입니다.

번져라 번져라  이여
그래야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두 장의 사진이 참 좋습니다.
꽃은 흔들려도 아름답고,
지면서 사무칩니다.

모든 빛은 끔찍하게도 제 몸을 태운 것이니
이 눈물겨운 공양을 누가 받을 것인가



** 보라색 글씨는 문태준 시인의 시어입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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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앨리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들렸네요^^ 한 동안 인터넷과는 담쌓고 살았거든요. 회사에서는 일이 너무 많았구요..오늘은 업무 일찍 끝내고 여유 갖다가 문들 생각나서 들렸어요. 우와~ 사진이 너무 멋지네요. 저도 마지막 사진이 제일 와닿습니다. 언젠가 가수 이은미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라는 시를 읽고 깊이 감명받아 다시 살아야겠다 생각했다구요. 그래서, 저도 찾아 읽어봤었지요. 한선생님께서도 좋아하셨군요^^ 편안한 저녁 되세요.

    2008.09.25 17:18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앨리스님, 간간히 들러서 공감해 주어서 고마워요.
      엊그제 재미난 경험을 했어요.
      일상생활에서 갖고 있던 불필요한 근심을 하나
      탁 놓는 순간,
      그 틈으로 시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는 거에요.

      굽이굽이 또 하나의 만남, 또 하나의 국면이 펼쳐진다
      싶었지요.
      '아직도 많은 블랙박스가 내 앞에 놓여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가슴벅차게 살아내는 가을 되기 바래요.

      2008.09.26 07:14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