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정에 대해서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믿지 못할 나이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좋아 한 적이 별로 없으니까요. 마치 절대자라도 된 것처럼 예단의 칼날을 휘둘렀습니다. 허허실실 소탈한 사람은 맥이 빠져서 싫었고, 빈틈없이 약은 사람은 잔머리 굴린다고 싫어했습니다. 에너지가 너무 낮은 사람은 나까지 끌고 내려가는 것 같아 별로였고, 몸짓이 큰 사람은 진실 되지 않아 보였고, 소시민의 나약함에도 점수를 주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아무개 내 친구야”라는 말을 하면 참 신기하면서도 부러웠습니다.


이탁오의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라는 말을 접하고는, 무릎을 쳤습니다. 아, 이거였구나 싶을 정도로 가슴이 싸해지는 걸 보니,  배움과 우정이 일치하는 교우관계에 갈급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관계에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데서 나온 폐단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의미 중심적이다 보니 관계망상에까지 이른 것이 아닐지요.


극과 극은 통하기 때문일까요, 세월이 준 지혜로 사람이 귀한 것을 알게 된 것일까요. 요즘 나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는 말이 믿어집니다. 나아가 인생의 목적이 우정이었다는 연암 박지원을 가슴 뜨겁게 추종하고 싶어집니다.


“벗이란 ‘제2의 나’다.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 하며, 입이 있더라도 누구와 함께 맛보는 것을 같이 하며, 누구와 더불어 냄새맡는 것을 함께 하며, 장차 누구와 더불어 지혜와 깨달음을 나눌 수 있겠는가?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 수 없는 법, 그것은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인 까닭이다.”


연암과 그의 벗들이 가까이 모여 살면서, 고금의 치란과 흥망으로부터 지리, 국방, 천문, 음악을 논하며 함께 뒹굴며 즐긴 때가 있습니다. 연암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이 시기를 ‘白塔에서의 淸緣’이라고 하는데요,  백탑은 파고다 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말합니다. 당시 연암과 벗들이 이 근처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생긴 명칭입니다. 박제가가 이 그룹에 합류하게 되는 순간을 적은 글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지난 戊子, 己丑년 여름 내 나이 18,9세 나던 해 美仲 박지원 선생이 문장에 뛰어나 당세에 이름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탑 북쪽으로 선생을 찾아 나섰다. 내가 찾아왔다는 전갈을 들은 선생은 옷을 차려 입고 나와 맞으며 마치 오랜 친구라도 본 듯이 손을 맞잡으셨다. 드디어 지은 글을 전부 꺼내어 읽어보게 하셨다. 이윽고 몸소 쌀을 씻어 다관茶罐에다 밥을 안치시더니 흰 주발에 퍼서 옥소반에 받쳐 내오고 술잔을 들어 나를 위해 祝壽하셨다. 뜻밖의 환대인지라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나는, 이는 천고에나 있을 법한 멋진 일이라 생각하고 글을 지어 환대에 응답하였다.”


가히 우정을 중히 여기는 사람의 행동답습니다. 머리로는 사람이 그립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내가 뜨끔해집니다. 생각이 바뀌었으면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내게 손 내미는 사람을 진심으로 품어주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주변 사람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심해야 합니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비판의 눈을 버리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진심으로 들어줘야 합니다. 진심어린 경청 만으로도 상대방은 치유되고 힘을 얻습니다.


지금 연결되는 사람들에게 소홀하지 않되 진정한 ‘스승이자 친구’를 찾아 천하를 주유하고 싶어집니다. ^^  언어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려 뒹굴며, 사람과 인생과 공부에 대해 논하고 싶습니다.

‘白塔에서의 淸緣’!~  내 인생의 목표입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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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비

    어쩌지요.. 저는 아직도 "관계"와 "우정" 같은 것들에 대해 '치'에 가까운걸요.
    그리고 아직 그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고
    여전히 사회성 부족 진단을 받고 있는데ㅜ.ㅜ
    여전히 내안의 나, 에만 골몰하느라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고.

    오늘 저녁 문득
    용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못한 건
    그를 용서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았다 나빴다를 쉬지 않고 계속하더니
    급 좋아지고 있답니다^^

    2008.09.24 21:59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직간접적인 체험에 의하면
      사람의 발견은 거의 회귀본능에 가까운 것 같아요.
      대다수의 인간들이 그랬다면
      나비님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지요. ^^

      하지만 어떤 깨달음도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오지 않지요.
      적절한 시기에 좋은 만남에서
      관계훈련을 시작하기를 바래요.

      나는 변경연의 연구원들이 노는 모습에서
      하나의 원형을 발견하곤 합니다.

      2008.09.25 05:52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