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딱 한 가지만 고르라면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나는 오랫동안 '창조'라는 말을 품고 살아 왔습니다. 크든 작든 창의적인 것을 만나면 참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아이들용으로 사 준 책들을 내가 더 좋아한 적도 많습니다. '생각쟁이'라는 잡지가 생각나네요. 막 창간되었을 때 정기구독을 시켜주었는데, 컨셉이 참 좋았습니다. 잡다하게 구색을 맞춰놓은 기존의 잡지들과는 달리 '창의적인 위인'을 집중소개하는 내용이 참 실했습니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많이 읽었습니다.

이호철선생님이라고 계시지요, 초등학생들을 1년만 담임하면 글과 그림의 선수를 만들어놓는 분이신데요, 그 분이  가르치는 과정에 대해 쓴 책들도 참 좋아했습니다. 아니 지금 봐도 참 좋습니다.
있었던 일을 말하듯이 쓰도록 가르치고,  '아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대로' 그리도록 지도하는 노하우는 정말 강력해서, 학급의 모든 아이들이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글과 그림을 가지고 자기를 표현하게 되는 과정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랫동안 '창조'를 짝사랑만 했지, 내가 무엇을 창조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저 소비자에 머물렀지 직접 무엇을 생산할 생각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느닷없이 속에서 무언가 꺼내 달라고 칭얼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그것은 표현에 대한 의지였습니다. 낙서를 일삼다가 시집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20여 편에 불과하지만 습작도 했습니다. 불경기로 꽉 막혀 우울하던 날에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하여 마음을 풀고 밥을 먹은 일이 기억납니다. 내 조그만 뜰에서 붓꽃과 모과나무를 보며 시를 쓰던 시절이 내 '창조'의 시작입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 때가 중년의 시작이었군요, 중년을 맞이하는 여자들 중에 이유없이 아픈 사람들도 있는데요, 어느 책에서 보니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기피하려는 노력이 신체로 가는 수도 있다고 나와 있더군요, 내 경우에는 그것이 '표현'으로 나타난 셈입니다. 어쨌든 지금은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릴케가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글을 쓰지 말라'고 했다는데, 나는 글쓰지 않고 못 살 것 같습니다. 그러니 써야겠지요.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 천하에 나 혼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자유이기도 하고 절대 고독이기도 하지요. 요즘은 거울만 보면 우울합니다. 말로만 듣던 '노화'가 시작된 탓입니다. 눈가의 주름을 시작으로 입 주변에 주름이 몰리더니, 이내 얼굴 피부가 늘어져 입 주변으로 골이 패였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시작인데 앞으로 그 무서운 일을 어찌 겪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늙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늙은 것처럼 대하는데,  이제 내가 늙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두렵고 떨리는 길을 가는 데 내가 나를 표현할 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글 한 편, 사진 하나에 행복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창조'라는 키워드에 '인내'와 '공감'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실행력'과 '관계'를 확인한 것입니다. 

이것 아세요?   내가 정말 신봉하고 있는 가치라면 머리에 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고, 한 두 번의 시도에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밀고 나가며,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내 것으로 해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하는 거지요.  

모든 키워드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비

    김나경입니다^^
    한 주일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읽을 글이 가득하네요~

    중년을 맞이하는 여자들중에 이유없이 아픈"
    대표적인 한 사람입니다.
    저는 고통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려는 경향이 확실히 있는 편이지요.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지금 무지 헤매고 있습니다.
    친정언니 왈 "너는 욕심을 좀 버려라"
    한의사샘 왈 "생각을 단순히 하라"
    남편 왈 "이상한 책들 좀 읽지 마라"
    ...마음을 편하게 먹어라...너한테 달렸다
    는데 그게 모두 내 맘대로 안 되는걸 어째라는건지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지금은 그저 아무 것도 안하고, 못하고
    시간이 좀 훌쩍 지났으면 한답니다.

    2008.09.20 10:09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ㅎ 남편 분 이야기 빼고는 다 맞네요 뭐. ^^
      우리가 왜 남의 일에는 똑소리 나게 처방이 가능하잖아요,
      남의 일이라서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정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에는 '남의 일처럼 살아라'도 생각해봄직하지요.

      나는 학원운영이 어렵기도 했지만, 40대 후반의 몇 년을 아무 것도 못하고 허비한 것이 제일 아까워요.
      나경씨는 나보다는 일찍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으니까, 무조건 덮어두기 보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보고 내가 원하는 삶에 도달하기 위한 디딤돌을 놓기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

      모처럼 산에 갈 생각인데 날씨가 흐려서 더 좋네요.
      우비까지 가지고 갈 거에요.
      비가 왔으면 좋겠군요. ^^

      2008.09.20 11:28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