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08. 8. 13. 12:08

'죽음'은 도저히 고쳐 쓸 수 없는 마지막 편지라서 그럴까요, 저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접하면 잠시 망연자실해 집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고도의 지능적 복합물'이, 잠깐 사이에 무기질로 돌아가는 죽음치고 통탄스럽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정말 어떤 죽음은 제3자의 가슴에도 잊지못할 기억을 남깁니다. 죽음에 민감한 나의 습관은 그만큼 잘 살고 싶다는 갈망이겠지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기막힌' 죽음들입니다.

1.
아마 80년대 초 였을 것이다.
어느 날 신문에 서울대 여학생의 유서가 실렸다.
"치열하게 살 자신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
맙소사! 당시 군부독재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대중의 각성을 촉구하며
꽃다운 젊은이들이 속속 제 목숨을 버리던 때였고,
그것을 보다못한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당사자들은 명확한 자기확신과 명분이라도 있지,
이 무슨....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선택이었다.


2.
농촌에서는 심심찮게 제초제를 이용한 자살사건이 일어난다.
내가 20대에 처음으로 농사를 짓던 미탄면의 한 노총각도 자살을 했는데,
30대 중반으로 나이야 좀 많았지만
평소에 워낙 익살도 잘 떨고 낙천적인 편이라 충격이 더했던 일이 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전혀 죽을 생각이 없이,
술김에 실수로 혹은 여자들의 관심을 환기하려는 포즈 끝에
얼결에 제초제를 입에 댄 경우이다.
제초제는 맹독성이라, 혀 끝에 닿기만 해도
온 몸이 타면서 죽어간다고 한다.
나는 농촌에 살 때 이런 경우를 두 번 보았다.
정말 죽으려고 결심에 결심을 더 한 경우에도
막상 죽어가는 시점에는 돌이킬 수 없는 회한에 피눈물이 날텐데,
실수로 죽어가는 사람이라니,
1주일 정도 남은 시간에 서서히 죽어간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3.
최근에 동해 시청 민원실에 근무하던 38세의 여성이,
돌연 사무실로 뛰어든 '묻지마' 살인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쯤 되면, 차라리 교통사고는 정상적이다.
직장에서 그것도 대한민국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이,
멀쩡하게 내 사무실에 앉아있던 중에 당한 이 참사는,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살아있다는 것의 허망함과 무기력함에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왜 하필 그이였을까
평소에는 편리했을지도 모를, 출입구와의 동선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정말 운명이라도 있는 걸까.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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