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리빙스턴, 너무 일찍 나이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리더스북 2005

넘쳐나는 자기계발서 중에서 깊이가 남다른 책을 발견했다. 이 깊이와 절실함은 저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어온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서른 네 살, 레지던트 수련의로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있던 때, 저자는 자신이 입양아였음을 우연히 알게된다.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신 뒤였고, 아버지와의 힘든 대화로 얻어낸 실마리를 가지고 그는 친어머니를 찾아낸다. 미혼모였던 그녀는 입양기관에 아기를 맡긴 후 스스로 결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독신으로 지내고 있었다. 이미 사망한 생부를 사진으로 접하며, 저자는 생부를 사랑할수는 없겠지만 평화를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용서한 것이다.

저자의 시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13개월 차이로 두 아들을 잃은 것이다. 큰 아들은 스물 두 살에 조울증으로 자살하였으며, 막내아들은 불과 여섯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다. 그 때부터 저자는 슬픔과 함께 살아갈수밖에 없었다. 이런 극심한 고통이 저자를 신중하고 지혜로우며 따뜻한 사람으로 깊어지게 했다.

“슬픔보다 나에게 익숙한 주제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내 삶의 주제였습니다. 나는 슬픔에 관한 책을 쓰면서 슬픔을 우회해서 가는 길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습니다. 슬픔을 똑바로 통과해서 가는 길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절망에 빠졌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떠한 말로도 위로를 받지 못했지만, 결국 말로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아직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결국 말이 있어 그 과정을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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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사랑이 죽음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추억과 헌신을 통해서입니다. 추억과 헌신이 함께 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깊숙이 파이는 일이 생긴다 해도 다시 충만해질 것이고,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156-8쪽

저자는 극심한 불행의 늪을 건너온 사람답지 않게 의연하고, 낙관적인 인생관을 피력하고 있다. 30가지 주제로 쓰여진 글이 모두 주옥같다. 직업적인 전문성에, 인간에 대한 연민이 더해져 지극하고 극진하다. 번역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매끄러운 문체도 돋보인다.

젊은 고든 리빙스턴은 참된 용기를 아는 사람이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 악마적인 전의를 다지는 연대장의 기도에 항의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군대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저자가 진짜임을 가려낼 수 있었다. 세상에 널려있는 그 숱한 선언적이고 계몽적인 자기계발서와 다르다! 오직 시련 속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처연한 경지... 나는 몸가짐을 다시 하고 정색을 한 채로 계속 읽어내려갔다.

‘비상한 용기없이는 불행의 늪을 건널 수 없다.’
‘가장 견고한 감옥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의 대부분은 나에게 책임이 있다.’
‘열 번의 변명을 하느니 한 번의 모험을 하는 것이 낫다.’
‘세상에 실망할수는 있지만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다.’

참된 용기를 가진 한 인간이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인간에게 갖게된 애정과 지혜를, 저자는 간곡하게 우리에게 말해준다.

“누구나 살면서 시련을 겪습니다. 하지만 시련에 대처하는 방식은 각기 다릅니다. 두려움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을테고, 가슴속에 쌓아둔 채 묵묵히 견디는 사람도 있을테고, 적극적으로 상황을 변화시켜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또한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회피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더 나아지기 위한 선택의 폭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그 두려움의 실체를 직시하고, 두려움에 굴복당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져야만 합니다. 결국 행복해지는 것도 불행해지는 것도 나의 의지가 결정해줍니다.” 227쪽


이것이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저자가 연구와 사색과 고통을 거치며 평생걸려 도달한 산봉우리를, 독자는 순식간에 올라갈 수 있다. 당사자는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것을 통탄하지만, 독자는 그 회한마저 내 것으로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숙한 영혼들이 도달하는 지점은 비슷하다. 고든 리빙스턴 역시 빅터 프랭클이 한 말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꺼이 그들을 신뢰하고, 그들의 간곡한 전언을 내면화한다. 내가 너무 늦지않게 깨달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좋은 저자들이 책을 쓰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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