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책2008. 7. 18. 21:18
신달자,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민음사 , 2008

서점에서 신달자 시인의 에세이집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를 훌훌 넘겨가며 다 읽었다.
처음에 책 제목을 듣고 잘 지어진 타이틀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가게 하며, 기억이 잘되고, 자신이 늦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혹할만한지 않은가.

책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슬만 먹고 사는듯한, 감성적인 시를 쓰는 시인에게 이만한 생의 무게가 실려있을줄은 몰랐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부양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9년간 거동을 못하고 누워계시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뒤늦게 대학원을 졸업하여 50세에 비로소 대학교수가 된 것,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시인 자신이 유방암에 걸린 일...

낭만적인 여자와 현실적인 남자의 결혼은 신혼여행에서부터 삐걱거린다. 단지 싸다는 이유로 행선지를 부산에서 인천으로 돌려버린 남편, 남자가 어떻게 빨간 색 가방을 드냐며 신부에게 가방을 들게 한 사람... 평화로울 때에도 시인의 감성을 채워주지 못하던 남편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시인의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다. 23일간 의식을 찾지 못하는가 하면, 뇌졸중 후유증으로 어린애처럼 생떼를 쓰고, 자살미수에 듣도보도 못한 ‘시상하부과오종’이란 병으로, 통곡해도 시원치 않을 상황에서 미친듯 웃어대는 남편, 그가 어떻게 계속 교수직을 수행할 수 있었는지가 의아하다.

자존심강하고 단아한 인상의 시인으로서는 꽤 솔직하고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처럼 처절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토로하는 글은 단시간에 쓰여질수도 있겠다.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인 것도 엄두가 난다. 내가 쓰고 싶어하는 글도 이런 부류이다. 이처럼 절박한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론이 아닌 체험에 의해 뒷받침되는 글 말이다. 이론적인 글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써야 할 것 같고, 겨우 책 몇 권 읽은 것을 가지고 코끼리 뒷다리 만지듯 해가며 쓰기에는 양심이 꺼린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내가 체험한 것에서 배운 것은 적어도 '진실'아닌가. 한 사람이 몇 십 년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것에는 귀담아들을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평범한 개인의 생애사에서도 '시대' 혹은 '문화'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거친 체험을 독자에게 다가갈만한 이야기로 디자인할 수 있을까. 뭔가 짚힐듯 말듯 답답하기만 하다.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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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탄님, 안녕하세요~^^
    토마토새댁님 블로그에서 트랙백보고 왔습니다.
    신달자 시인 책, 읽기 좀 겁도 나지만(내용이 감당하기 무거울것같아요)... 귀담아들을만한 것이 있을거란 미탄님 말씀은 참 공감합니다. 종종 들릴께요.

    2008.11.14 15: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안녕하세요?
      모임이 있어 나갔다가 댓글이 늦었네요.
      책이 겁난다고 하시니,
      감수성이 남다른 분이신가 봅니다. ^^

      2008.11.15 08:15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