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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는 길을 만들며 간다. 그가 걸어간 길에는 확실한 자국이 남는다. 48년생, 71년에 미국유학, UCLA문화인류학 박사,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전형적인 유학파 교수 치고는 흔치않은 사회활동이며 성과이다.

그는 1984년 “또 하나의 문화” 동인결성을 주도하여 지금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또 하나의 문화”는 보수적이고 획일적인 사고체계를 강요하는 전통으로부터의 자유, 제도개선을 위주로 하는 정치적인 여성운동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여 명실공히, 또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제도’가 아닌 ‘문화’, ‘투쟁 ’보다는 ‘연구출판’의 기치를 내건 또문의 활동은, 생각있는 많은 여성들에게 의지가 되었다. 나역시 교육과 가족, 성과 사랑, 결혼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고, 대안적인 문화를 독려하는 또문 동인지의 애독자였다.

조한혜정은 1999년에 ‘하자센터’의 교장이 되어 대안교육에도 획기적인 사례를 남긴다. 자신의 아들이 ‘철학적인 학교이탈자’이기도 했고, 대학 강단에서 만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도 느낀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 교육현실은 오직 2프로만이 상위권에 도달할 수 있는 소모적 경쟁궤도인데, 정작 그 2프로의 대학생조차도 행복하지 않더라는 얘기이다. 대입이 최고목표인 고등학교 현실이나, 취업이 최고목표인 대학 강의실 어디에도 안정과 행복은 없었다. 그는 1999년 어느 일간지 칼럼에 “붕괴하는 강의실에 생기를 돌게 하려고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썼다.

그는 ‘하자센터’를 통해 대안학교의 새로운 모델을 세웠으며, 서울시대안교육센터장으로서 산재한 대안 학교들을 연결・지원하기도 했다. 올해는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아 그 활동 영역을 더 확장하고 있으니, 지식을 생산하고 옹호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지식을 단단하게 하고 확장하는 全人의 모습이 감탄스럽다.


그는 타고난 ‘혁신가’요 ‘선동가적 실천가’인가 보다. 80년대에는 여성운동에서, 90년대 말부터는 대안교육에서 갖은 실험을 하며 새로운 이론을 써 온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 아기자기한  사례도 있다. 명절마다 민족 대이동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착한 국민 콤플렉스’가 지겨웠던가 보다. 그는 다중적인 명절을 이야기할 새로운 의례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수년간 주변 사람들을 꼬여 인사동에서 추석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조한혜정이 요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마을’로 보인다. 가족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공동체적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며 ‘돌봄 사회’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그가 꿈꾸는 마을은, 작은 마을학교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곳,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휴식할 수 있고, 사람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는 곳. 또 노인들이 곳곳에 모여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볼 수 있고, 수시로 물물교환이 이뤄지는 곳이다. 그동안 공동육아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학교를 세우고, 느슨한 마을을 형성하는 것을 보며 생각을 굳혀온 것 같다.


“다행히 그간 ‘탈선한’ 사람들이 두런두런 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크고 작은, 갖가지 모습의 마을들이 ‘천 개의 고원’을 이루며 제각각의 변주를 해낼 때, 그리하여 언젠가는 다들 연결하여 아름다운 교향악이라도 연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아마도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입니다.”(저서 “다시 마을이다”의 프롤로그 중에서)


논리적이고 똑 소리 나는 문체의 저자로도 유명한 조한혜정이 느닷없이 꺼낸 ‘마을’, 그러나 그가 말하면 그 말의 무게는 달라진다.  이제껏 또문과 하자에서 보여준 역량을 집대성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이론과 실천의 양날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그라면 말이다. 소통과 돌봄과 평생학습이 있는 그의 ‘마을’에는 나도 관심이 많다. 힘써 공부하고 실천하며 걸어가는 조한혜정의 길, 다른 사람들이 기꺼이 따라가고 싶은 선례가 되는 그의 발걸음이 참으로 보기좋다.


“서로 돌보는 마을이 생기면 세상이 크게 달라질 겁니다. 많은 이들이 ‘주민’이 되어 마을 일을 토론하고, 마을 잔치를 준비하고, 마을 역사를 기록하느라 모두 글쟁이가 되어버린 마을을 상상해봅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소소하지만 다음 시대를 만들어가는 큰일을 해내면서 생산과 나눔의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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