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면에서 한국사회는 계엄령이 필요없는 사회다. 사회구성원들의 상상력, 용기, 소망은 나이에 따라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대단히 자발적으로 나이듦에 대한 지배이데올로기를 수용하고 있으며, 나이든 자, 나이든 여성을 혐오한다.

일상의 아주 감정적인 차원에서부터 나이듦에 대해 동일한 해석 틀을 지니고 있으며, 미세한 검열과 규율에 예속되어 있다. 나이에 따라 삶의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억압된 사회, 이것은 고도로 조직화된 조용한 폭력이다. 나이든 사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을 다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반 연령주의 정치를 시작해야 할 것같다.”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


여성학자 정희진은 서른 넘어 공부를 계속하려고 대학원 사무과에 갔을 때, 직원에게서 따님대신 오셨냐는 질문을 듣습니다. 어처구니없는 그 일을 정희진은 이렇게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체험과 억압을 속속들이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거지요. 자신이 나이듦의 차별을 겪어본 뒤에야, 왜 그토록 남자들이 여성운동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한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겁니다.


나역시 20대에는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내 나이를 기준으로 나이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얼마전 오산에 있는 물향기수목원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70대로 보이는 분들이 출사를 나오셨더군요. 산책 중에 그 중의 한 분과 서 너 번을 부딪쳤습니다. 가벼운 목례를 해도 좋을 것을, 완연한 경계심을 품고 외면하는 나를 발견하고 참 씁슬했습니다. 그러니 2,30대의 젊은이들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품으리라는 것은 불보듯 환한 것이지요.


이같은 연령차별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계엄령’보다 더 무자비하고 철저합니다. 나이든 사람들 본인의 상상력, 용기, 소망과, 그들에 대한 기대치는 완벽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 문화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착각을 강요합니다. 미디어를 장악한 새파랗게 젊은 남녀의 모습은,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죄책감과 불행을 안겨줍니다. 40대만 되어도 서서히 퇴물 취급을 한다면, 어떻게 우리 사회가 성숙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절감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라면, 젊음만이 주도하는 문화란 얼마나 취약하고 위험한 것인지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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