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 늦게 집 근처 도서관에 갔습니다. 보통은 자료실에서 책을 보는데, 주말에는 자료실이 5시에 문을 닫으므로, 열람실에 처음 가 보았습니다. 여고생들이 나를 슬쩍슬쩍 쳐다봅니다. 아, 참. 도서관에 드나들기에도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나 싶더군요.


젊을 때는 거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세월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여자의 서른, 남자의 마흔처럼 하나의 변곡점에 도달해서 당황하기도 합니다. ‘아! 내가 나이들고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고, 심리적인 혼란 속에서 변화의 계기를 삼기도 합니다.


좀 더 나이가 든다해도 사람들이 자신의 나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와 부딪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에 대해 결코 변치않는 단단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개성이 없으며 탐욕스럽고 세속적인 이미지, 그러면서도 세상사를 초월하여 평정심을 갖기를 원하는 이율배반적인 기대치를 갖고 있는 거지요.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나’처럼 젊은 기분으로 사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에 맞춰서 순응하는 것이 옳을까요.  시몬 드 보봐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듦은 ‘객관적으로 정의되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존재와 그것을 통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는 자의식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이다.’


세상에 ‘나’를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답니까? 있다면 대다수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도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절대절명의 ‘나’가 다른 사람의 무심한 판단에 갇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인 거지요.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므로 세상의 오래된 연령주의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에 대한 사고방식도 변화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판단에 정보를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행동과 성취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나의 자의식과 에너지와 도전으로 세상의 판단 체계를 수정하는, 행복한 ‘정반합’을 꿈꿔봅니다.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