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은 소리꾼으로 우리 앞에 서기까지 수많은 직업을 전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94년  45세에 첫 소리판을 열었고 지금까지 5집의 음반을 내면서, 대중적인 입지를 굳혔습니다.

그의 창법은 그의 삶 만큼이나 드라마틱합니다.  편안하고 소탈한 외모에서 터져나오는 피끓는 소리는 듣는 이의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하고, 태곳적의 깊은 설움을 다시 만나게 합니다. 민요도 아니고 가요도 아닌 장사익만의 장르를 갖고있으며, 언제나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분야는 다르지만 ‘한스컨설팅’ 대표 한근태의 삶도 꽤 드라마틱합니다. 그는 서울공대를 나와 국비장학생으로 외국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공학도였습니다. 대우자동차에 입사하여 40세에 최연소이사가 되는등 승승장구하였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꿈이 이루어지던 순간마다 행복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만족감이 들기도 전에 또 다시 정복해야 하는 고지가 잽싸게 나를 짓누르곤 했다. 새로운 고지에 오르기 위해 다시 조급해하고 불평하고 피곤해했다. 항상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삶이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이 불합리한 사이클을 왜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해왔을까.


결국 그는 전격적으로 직업을 바꾸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평소에 관심을 갖고있던 경영컨설턴트로의 변신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였으므로 3개월간 무보수 기간을 거치는 식으로 바닥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2년간 컨설팅 실무를 익힌 뒤에는, 핀란드 헬싱키대에서 MBA를 하는 등 본격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이제 그는 한국 리더십센터를 거쳐 ‘한스컨설팅’ 대표이자 서울과학종합대학 교수이며, 저술가로 자리잡았습니다. 성실한 독서력과 독하게 살아낸 이력에서 우러나오는 진중함이 아주 좋습니다.


장사익이 아직도 책외판원이나 주유원으로 전전하고 있다면, 우리는 소리꾼 장사익을 만날 수 없었겠지요.  장사익은 아직 장사익이 아닌겁니다. 한근태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관성과 사회분위기에 밀려 계속 회사생활을 했더라면, 우리가 ‘한근태’라는 귀중한 사례를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정말 내가 하고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까지는, 어쩌면 나는 아직 내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나의 기질과 강점이 녹아들어 기꺼이 만족하며,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최고를 향해 가고 싶은 일, 그 과정에서 나도 행복하고 누군가에게도 수혜가 되는 일을 발견하기까지는, 아직 나의 삶은 진짜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