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08. 6. 16. 13:30
1.
외가는 지금은 신도시로 개발된 일산 근처였다. 우리는 방학마다 외가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내가 하루종일 밖에서 뛰어놀던 아이였던 것이 신기하다.  숨바꼭질하느라 숨은 울타리에서 다닥다닥 열린 새카만 까마중을 발견한 기쁨,  서울아이랍시고 얼음판에서 썰매 지치는 아이들 옆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기억.

국민학교 3, 4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 날은 비가 내렸다. 나는 마루에 엎드려 낙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가지붕을 타고 둥그런 안마당에 둥글게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씩 홈이 패이며 튀어나가는 빗방울을 바라보노라니,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아주 쓸쓸하면서도 한없이 차분해지는 것이 '이상한 감정의 블랙홀'로 빠져든 것 같았다.
'산다는 것은 참 외롭고도 허전한 일일지도 몰라'
내 인생 최초로 철학적인 생각을 한 때가 아닌가 싶다.


2.
여고 3학년, 야자를 빼먹고 옥상에서 시간을 때운 적이 있었다. 남영동을 가로지르는 전철 불빛이 참 아름다웠다. 환하게 일렁이며 길게 연결되어 흘러가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내 삶도 저렇게 흘러가겠지'
앞날을 생각하느라 가늘어진 눈으로  전철 불빛이 아롱아롱 번져서 보였다.


3.
대학 졸업반, 정말 오랜만에 외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백마역, 지금은 대단한 상권이 형성되었겠지만, 그 때는 역사도 없는 간이역이었다. 나는 조금 높은 철로변에서 논을 굽어보고 있었다. 추수를 앞둔 벼가 바람에 이리저리 쏠리며 황금물살을 일으키고 있었다.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까'
일렁이는 황금벌판 앞에서 왜 그리도 막막했던건지!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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