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파시니, 욕망의 힘, 에코리브르


‘욕망’이라는 단어처럼 불온한 취급을 받는 단어가 또 있을까. 지인 하나가 글을 쓸 때면 무조건 ‘욕망’ 앞에 ‘불온한’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웃은 일이 있다. 나는 ‘욕망’이라는 단어에서 삶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읽는다. 이제껏 황당할 정도로 일을 벌리며 살아온 나는, 평탄한 삶에서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지루함을 읽기 때문이다. 욕망이 없이는 삶도 없다.


한세상 살아낸 지금은 그렇다. 내가 나로서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기질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겠다.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는 한도 내에서라면, 누구나 생긴대로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기질을 결정하는 요인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양식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최고의 책이었다. 모녀관계, 연인관계, 부부관계의 기저에 흐르는 ‘다름’과 ‘욕망’의 지도를 볼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이되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되 품위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남과 여’에 관한 대목이다. 이 책에는 남녀간의 미묘한 차이, 연령에 따른 부부관계의 추이, 부부 간의 소통과 함정 등이 다루어져 있다. 여자들은 사랑할 때 지나치게 사랑한다. 남자들이 과장된 성행위를 통해서 한계를 넘어선다면, 여자들은 감정적 영역에서 과잉의 상태에 놓인다. 나는 여자들이 이 부분을 잘 이해하고 반응한다면 불필요한 감정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가령 남자와의 감정적 일치에 대한 기대치를 줄인다든지,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젊은 날의 부부는 강한 육체적 친밀감을 기반으로 통합되어 있다. 그러나 40대 정도가 되면, 나름의 자율성을 확립해야 관계가 유지된다. 제각기 다른 취향을 인정하고 서로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상호이해를 증진할 수 있는 시기이다. 나는 이 부분을 ‘적절한 거리’로 이해했다. 노년이 되면 부부는 다시 젊은 날처럼 새로운 친밀감의 욕구를 느끼게 된다. 건강과 고독에 대한 염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부가 연령별로 적절하게 변화하고 순응할 수 있다면, 보다 탄력있는 일상생활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본다.


부부 간에는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문제가 된다. 친밀감이 결핍되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과도한 친밀감 역시 욕망 충족에 커다란 위험요소가 되는 것이다. 결국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자치공간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연인 간에 에로티시즘이 어떤 경로를 통해 움직이는지 하는 문제도 재미있었다. 여자는 촉감에 민감하다, 남자는 시선에 더 비중을 둔다. 목소리는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난 관능적 기관이다. 대화의 내용보다도 음색, 톤, 끊어지는 호흡이 더 중요하다. 음식을 즐기는 연인은 언제나 얘깃거리가 풍부하여, 서로에 대해 굳이 욕망이 아닌 호기심이라도 날마다 새롭게 가질 수 있다. 수도승처럼 입고다니지 않는 한, 옷은 틀림없이 욕망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민망했던 것은, 자신의 열정을 제어할 줄 모르는 성향에 대한 분석이었다. ^^ 사람과의 만남이란 어떤 경우에도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상대와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단계에서는 능숙한 처신을 보여주지만, 완만한 시간의 흐름이 필요한 순간에는 정말 미숙한 면모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도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치게 앞서나가거나, 항상 직설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은 역효과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은 언제나 달아나는 것에 이끌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줄곧 곁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감정의 포화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의 심리를 읽는 것은 재미있다. 이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관계증진에 도움이 될 지 아직은 모르겠다. 좋은 것을 따라가는 ‘욕망’은 또 다시 새로운 욕망의 가지치기를 해 줄 것이다. 나는 단지 내 마음을 따라간다. 나는 욕망의 힘을 믿는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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