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켐벨, 빌 모이어스 대담,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글을 너무 간단하게 쓰려다보니, ‘신화의 힘’의 맛을 너무 감소시킨 것같아 조금 보완하려고 합니다.

조셉 켐벨에 의하면 전 세계의 모든 민담과 신화는 모두 詩요, 메타포라고 합니다.  일목요연한 그의 설명을 듣다보면 저절로 수긍이 갑니다.

내게 가장 다가오는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이로쿼이즈 인디언의 민담이라고 하는데요. 뱀의 형상을 한 마법사 신랑에게 붙잡힌 여자가 도망을 칩니다. 신랑이 뒤에서 쫓아옵니다. 위급한 순간 어디에선가,

“내가 너를 도와주마”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노인이 이끄는대로 따라나오고 보니 물 밖입니다.

여자는 자기가 그동안 물 속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거지요.

여자가 물 속에 있었다는 것은, 결혼을 통하여 여자가 합리적 .의식적인 세계에서 무의식의 강박 충동의 세계로 들어가 있었다는 뜻이라고 켐벨은 이야기합니다. 개인의 자유의지로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으로 함몰된 상태였다는 거지요. 어떠세요?  결혼의 부자유한 측면에 시달리는 여자들이 혹할만한 상징 아닌가요? ^^

‘물 속’으로 상징되는 고립과 고통의 순간에도 걱정말라고도 합니다. 언제나 너를 도와주겠노라는 작은 노인의 목소리는 있어왔다는거지요.


그런가하면 이런 이야기도 제 상황에 와 닿았습니다. 인도에는 어머니가 자식을, 특히 아들을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게 하는 의례가 있다고 합니다. 한 집안의 영적 스승이 어머니에게 와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걸 자기에게 달라고 합니다. 값진 보석 같은 게 되겠지요. 이런 의례는 어머니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것을 떠나보내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어머니는, 그 영적인 스승의 말에 따라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것을 주다보면 결국 자기 아들도 포기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적절한 관심과 분리의 경계를 정하느라 혼란스러운 내게, 이런 이야기는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나는 명백한 ‘개체’인 것입니다. 의견이 다른 것이 당연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새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평화를 맛본 듯합니다. 켐벨은, 마흔 다섯 살의 남자가 아직도 아버지의 의견에 순종하고 있다면 정신분석의에게 가봐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군요.


이쯤되면, ‘신화에 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소통할 리 없는 전세계의 민담과 신화가 똑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 인류의 원형의 기억이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갓태어난 신생아도 이 인류의 기억을 갖고 태어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인류의 원형의 기억’ - ‘신화’는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일 수 밖에 없겠지요. 평생 민담과 신화를 연구하며  한 세기를 살아간 켐벨할아버지의 지혜가 놀라운 것은 당연한 일입이다.


켐벨의 메시지는 ‘살아있음의 경험’ 이 한 마디로 집약됩니다. 심지어 켐벨은 이 경험을 종교적인 믿음보다도 우위에 둡니다.

사랑과 증오, 악의를 경험하며, 삶의 경이를 깨달았다는거지요. 어떤 사람은 성적인 탐구에 머물러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철학이지요. 어떤 사람은 권력에의 의지로 충만되어 있습니다. 애들러의 철학입니다. 애들러에 따르면 인생은 장애물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도 완벽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신들 중에도 이런 삶을 표상하는 신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켐벨은 여기까지는 동물의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삶의 본원’은 남의 삶에서 ‘나’의 삶을 인식하는 수준입니다.  ‘나’와 남은 둘이지만 살고 있는 삶은 하나임을 인식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 삶을 타인에게 주어버리는 인생입니다. 이처럼 자기 삶을 가슴으로 사는 삶의 단계에 올려놓은 사람에게서는 , 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광휘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신은 그 하나의 삶을 표상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놀랍게도 켐벨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수주의 기독교에서는 좋아하지 않겠지만, 제게는 신선하고 천진난만한 충격이었습니다.


모이어스 씨, 누가 신인지 아세요? ‘우리’가 곧 신이에요.

이 모든 신화의 상징이 수다스럽게 말하는 게 바로 이것이라구요. 320쪽


켐벨이 다시 한 번 놀랍고 대단한 것은, 이런 자신의 깨달음-이론을 도그마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삶의 목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이라고 하는 여행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보통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개인의 잠재력’을 신봉합니다. 자신만의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의 보통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삶의 모험을 떠날 수 있다. 살아있음의 모험을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처음 몇 년 동안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인간의 한 단편일 수밖에 없어요. 몇 년 뒤에는 사춘기가 됩니다. 사춘기 역시 인간의 한 단편에서 더도 덜도 아니지요. 성인이 되어도 단편이기는 마찬 가지입니다. 우파니샤드에는 원초적인 응집된 에너지의 이미지가 나옵니다. 이 세상을 빚은 창조의 대폭발로 인해서 생긴 이 에너지는 만물에 시간의 단편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나 시간의 단편을 통하여 원초적인 존재의 광대무변한 힘을 체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의 기능입니다.


시종일관 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람답게, 켐벨은 드넓은 지식의 세계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박식하고 지혜로운 인물이 이처럼 천진하게 열려있을 수 있다니, 켐벨의 삶은 우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지평을 선사하는듯합니다. 그는 진정한 생의 철학자입니다.


 “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내 세상만 가질 수 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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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화의 힘', 얼마 전에 읽었었는데, 인터뷰를 책으로 만든 탓인지 읽기가 쉽지 않은 형식이지만, 내용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생기게 되구요.

    2008.06.23 07:07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나는 신화못지 않게 조셉 켐벨이라는 인물에게 매력을 느꼈지요.
      글이든 사업이든 모든 면에서, 결국 자기 자신을 팔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답니다.

      2008.06.23 09:12 [ ADDR : EDIT/ DEL ]
  2. 전 도무지 이 책을 옮길 엄두를 낼 수가 없습니다.
    제겐 '의식의 부활'을 이끌어 낸 책이기에 그런가 봅니다.
    예수의 부활이랄지, 보살의 의미랄지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무릎이 떨어져라 쳐내려가며 읽었습니다.
    전 다시 또 읽고 그 때 써야겠습니다.
    이해력이 부족한 탓인 듯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안부여쭙고 갑니다. ^^

    2008.07.04 17: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좋은 책은 살아가며 5년 정도 주기로 거듭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 때마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모두 다를 듯도 싶네요.
      건강하시지요?

      2008.07.04 21:54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