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드라마에서 쓰고 있는 가면을 뜻하는데, 심리학자 융이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페르소나는 한 사람이 삶에서 맡고 있는 공적인 역할을 뜻합니다. 부모, 직업인, 시민, 사회주의자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페르소나가 중년에 이르면 비틀거리며 붕괴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총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종합적인 재편성을 해야하는거지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무엇을 해왔는가. 내 삶의 중심이 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 젊은 시절의 꿈 중에서 무엇을 이루었는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 현재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후회하지 않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가.


기존의 가치관과 발판을 부정하는 것은 커다란 혼란을 가져옵니다. 사춘기에 이어 중년기 역시 또 한 번의 ‘질풍노도의 시기’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종교와 창업, 여행과 외도 같은 변화를 겪기도 합니다. 융 자신도 중년의 위기에 닥쳐 어린 환자인 토니 울프와 연애를 합니다.  이는 의사로서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융에게는 심리학적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 영감을 주었습니다. 융은 이 때의 경험을 자신 속 깊이 숨어있는 용암과의 만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의식 속에 있는 원시적인 생명력과의 조우라는 거지요.


이미나 서울대교수는 ‘흔들리는 중년 두렵지 않다’라는 책의 서문에서 진솔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년에 이르러 참혹하게 방황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교육학자들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중년의 위기가 왜 일어나는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았고, 급기야 그녀 자신이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내 삶의 현장에서 진정한 하프타임을 갖는 것은 전적으로 내 몫입니다. 갱년기를 뜻하는 단어인 climacterium은 고대 그리스의 klimakter에서 유래했는데, 계단 또는 사다리의 발판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올라가든지 내려가든지 우리는 선택해야만 합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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