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가벼운 수술을 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정말 가벼운 수술이었는데도, 수술대에 누워있는 심정이 착잡했습니다. 부분마취라도 30분 넘게 걸리던걸요. 그야말로 만감이 스쳐갔습니다. 그동안 참 많이 겪으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한 번 아파본 적도 없는 거예요. 22년 전에 아들을 절개수술로 낳은 뒤 처음으로 병원에 왔으니 정말 건강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참 건강하게 살았구나 하는 심정이 아니라, 경험이 참 취약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났습니다. 아버지는 가벼운 수술 중에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지요. 72세, 요즘 세태로는 아까운 연세이셨지요. 그 날 수술실로 들어가시며 아버지는 눈물을 비치셨다고 하니, 일말의 예감이라도 있으셨던걸까요. 가족과 세상에게 인사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사라져야 하는 일방적인 처사가 너무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 생각도 났습니다. 잡지 '엘르'의 편집장으로 생의 정점에 있던 그가 48세의 나이로 뇌졸중에 빠집니다. 왼쪽 눈꺼풀을 제외하고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연명'하던 그는 15개월 만에 나비가 되어 날아갑니다. 10센티미터 앞에 앉아있는 아들의 숱많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줄 수 없는 상태에 놓인 뒤에야 그는, 금발의 늘씬한 미녀와 자고 일어나서도 행복한 줄을 몰랐던 자신의 지난 날을 돌이키며, 입에 고이다 못해 철철 흐르는 침을 닦을 수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입원 중에 3시간 외출 허가를 얻어 거리로 나왔는데, 거의 감격할 지경이었습니다. 만 48시간동안 왼 팔에 꽂혀있던 주사바늘만 없어도 '자유'이던걸요. ^^ 하얗고 네모난 병원 건물로 주거를 제한당하지만 않아도 날아갈 것 같던걸요. 너무 익숙해서 나른하게 지쳐가던 일상을 이렇게 반짝거리게 돌려놓다니, 가끔 아프기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 ^^

'작은 수술'로 리마인드된 마음을 오래도록 갖고 가야 하겠습니다. 살아있음을 명징하게 느끼고 즐겨야 할 것 같습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처럼 '극단적인' 카드를 뽑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내게 오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부끄러움과 회한과 의구심과 좌절마저도 고마운 심정이었습니다. 오너라 세상이여, 내가 너를 맞이해서 즐겨주마!  삶에 대한 대긍정, 한 시절 살아낸 사람 만이 누릴 수 있는 자족입니다.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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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비꽃

    어머, 혹시 지금도 병원에 계신 것은 아니신가요? 3시간 외출 허가받고 나오셨다니.
    혼자서 일처리하시는 미탄님 성격으로 보아서는 '작은 수술'이 혹 큰 수술을 가볍게 말씀하신 것은 아닌지요. 무슨 병이든 빨리 쾌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05.29 00:14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제비꽃님 별 일 없으시지요?
      '작은 수술'인 것 맞구요,
      지금 병원은 아니고, 아주 최근인 것은 맞네요.
      또 혼자서 일처리하는 편인 것도 맞는 걸 보면,
      상당히 적중률이 높은 편이라 재미있네요. ^^

      2008.05.29 11:40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입니다

    2008.05.29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블로그를 하고 있었군요.
      진작 말하지요, 반갑네요.
      자주 방문할게요, 새롭게 소통해보아요!

      2008.05.29 16:18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