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08. 5. 16. 19:03

무슨 라디오에 들어가는 부품이라고 했다. 새끼손가락 마디만한 부품이 콘베이어 벨트에 꽂힌 채로 계속 밀려왔다. 움직이는 벨트의 흐름에 맞추어, 조그만 링 같은 부속을 세 개 끼우는 것이 내 일이었다. 처음에는 부속 하나를 끼우기도 벅찼다. 속도를 못 맞춰서 여전 부품을 빼놓아야 했다. 나중에는 부속을 세 개 끼우고도 여유만만했다. 훈련의 힘이여!

누군가 잡지에 르뽀기사 쓰는 것을 도와주러 공장에 취직을 했다. 위장취업에 속하지만, 목적이 다른 셈이다. 20대에 나는 농활에 심취해있었고, 큰 부담없이 공장생활도 경험하고 싶었다. 내 의도에 적합한 기회가 생긴 셈이다. 같이 간 두 명도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헌신하기보다, '시대의 현장'을 알고 싶었던 것 같다.

18명! 갑자기 떠오른 숫자이지만 그냥 쓰기로 한다. 타원형의 콘베이어 벨트를 둘러싸고 앉은 18명이 한 조였다. 조장의 인상은 '조장'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 그대로였다. 적당히 살집이 있고, 적당히 심술도 있고, 쥐꼬리만한 권력을 즐기는듯한 분위기. 짧은 공장 생활 동안 기억나는 일은 한 가지 뿐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조장이 버튼을 눌러 콘베이어 벨트를 멈추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을 꼭 2,3 분 까먹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그 날도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렸는데도 벨트는 돌고 있었다. 나는 그만 벌떡 일어나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작다면 작은 일이고, 크다면 큰 일이었다. 웬일인지 조장은 그 일을 문제삼지 않아 그냥 넘어갔지만, 생각하기 따라서는 내부질서를 무시한 행위로 간주될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두 어 달 만에 공장을 그만 두었다. 1980년, 계엄령이 선포되고, 르뽀기사를 싣기로 한 잡지 자체가 폐간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삼청교육대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진저리를 쳤다. 어딘가 수상쩍었던 여공 하나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는 건 일도 아니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거대하고 음흉한 지옥의 손길이 내 목덜미를 잡았다가 놓은 것 같았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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