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책2008. 4. 30. 08:25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코네티컷 주의 어느 학교에서 '예술을 위한 하루'라는 행사를 열고 두 사람의 강사가 함께 진행하는 강좌를 열었다. 한 사람은 외과의사로서 최근에 글쓰기를 시작하여 부업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를 '부업'이라고 하자. 또 한 사람은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서 기자생활로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작가이자 편집자이자 글쓰기에 대해 가르치는 교수이다. 그를 '전업'이라고 칭하고, 그들의 강의내용을 대화로 정리해보았다.

질문: 작가가 되시니까 어떤가요?
부업: 너무너무 재미있습니다. 병원에서 힘들게 일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곧장 글을 쓰면서 그날의 긴장을 떨쳐버립니다. 쓰다보면 단어들이 술술 흘러나와 글이 쉽게 써집니다.
전업: 글쓰기는 쉽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습니다. 글쓰기는 힘들고 고독한 일이며 단어가 그냥 술술 나오는 경우는 여간해선 없습니다.

질문: 글을 고쳐 쓰는 것이 중요한가요?
부업: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문장이란 글 쓰는 사람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마련이니, 있는 그대로 다 끄집어내면 됩니다.
전업: 글은 고쳐 쓰기가 생명입니다. 전문 글쟁이들은 자기가 쓴 문장을 몇 번이나 고쳐 쓰고도 또 고칩니다.

질문: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부업: 그럴 때는 당장 글쓰기를 멈추고 잘 써질 때까지 하루쯤 손을 대지 않습니다.
전업: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들은 매일 쓰는 양을 정해놓고 엄격히 지켜야 합니다. 글쓰기는 기능이지 예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기능을 연마하는 일에서 손을 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며 빈털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질문: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이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요?
부업: 자주 영향을 미칩니다. 그럴 땐 낚시를 가거나 산책을 하면서 기분을 풀려고 노력합니다.
전업: 감정이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글쓰기가 직업이면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묵묵히 일을 하게 됩니다.

 우연히 접한 책에서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모조리'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지점이 '부업'과 '전업'의 경계인 것 같아 재미있기도 했다. 얼마만에 만나는 '내 인생의 책'인가. 아, 아니다. 글쓰기는 예술이 아니라 기능이라고 했지. 영감의 영역이 아니라 노동의 영역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좋은 책을 찾았다고 호들갑을 떨기보다, 그의 책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당분간 이 책에 흠뻑 빠져 지낼 것 같다.

이 책은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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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송숙희

    창조적 영감은 책상에 앉아 원고파일을 열어
    꾸역꾸역
    첫줄을 쓰는 순간 왕림하시지요.

    저도 모르는 기막힌 문장히 툭툭 불거져
    자판을 통해 모니터에 박힐때
    환장하게 좋습니다.
    '꾸역꾸역'이 정답입니다.

    2008.05.01 06:22 [ ADDR : EDIT/ DEL : REPLY ]
    • '글쓰기는 생각에게 말을 거는 행위이다', 라는 표현도 있었지요. 이제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제 카테고리 중에 '꾸역꾸역'은 송선생님 글에서 빌려온 표현입니다. 새끼치기를 한 셈이지요. ^^

      2008.05.01 07:16 신고 [ ADDR : EDIT/ DEL ]
  2. 저는 차마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을 용기는 못낼 것 같습니다.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만 해서 먹고살 용기가 안나네요.

    그래도 꾸역꾸역 써야한다는 것에는 동감합니다. "글쓰기는 기능이다"...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정말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2008.05.02 04: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투잡스를 넘어 멀티잡스의 시대인데다가, 수명이 정말 길어져서요. 그 긴 시절을 주체적으로 창의적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나'의 존재가 더욱 중요해졌잖아요. '나'를 곧추세우고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도구로 '글쓰기'만 한 것이 없구요.

      혼자 생각하던 것을 대가의 목소리로 확인하는 재미가 아찔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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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게 쓰는 작가들은 대개 스스로 재미를 느끼려 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작가의 핵심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글쓰기를 스스로에게 재미있는 삶과 지속적인 교육을 주는 수단으로 삼아왔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알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주제에 대해 쓴다면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이 글에 묻어날 것이다. 배움은 일종의 강장제다. -218쪽

      2008.05.02 04:59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