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펌글창고2008. 4. 27. 17:38
문자 메시지’가 소설이 되는 시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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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인터넷의 등장과 아이엠에프(IMF) 사태의 충격, 정권교체 반복 등이 이 땅에서 개인주의를 심화시켰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누구나 블로그 하나쯤은 운영하고, 자신의 취미에 맞는 카페에는 무한대로 가입해 활동할 수 있는 시대에 개중(개인+대중)은 자기 자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개성을 유지하면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를 맘껏 발산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활용한 문자나 메신저, 미니홈피를 통해서 맺어지는 인간관계의 중심 또한 개인이다. 개인은 자신을 중심으로 수많은 관계망을 형성해나간다. 그곳에서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스몰 토크(small talk)가 넘쳐난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 사이에 수없이 벌어지는 “너 어디야?” “지금 뭐 해?” “나 가고 있어 조금 이따 봐!” 같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매우 사소한 대화들이 관계의 친밀성을 강화한다. 스몰 토크 그 자체가 관계인 세상이다.

‘어느 소심한 카피라이터의 홍대 카페 창업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낭만적 밥벌이>(조한웅, 마음산책)를 읽다 보니 우리가 일상적으로 쏟아놓는 스몰 토크도 잘만 엮어놓으면 참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 참 많이 바뀌었음을 절감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2004년 일본에서 밀리언셀러가 된 <전차남>(나카노 히토리, 서울문화사)을 떠올렸다. 이 책은 한 남성이 전철에서 술 취한 중년남자에게 봉변을 당하는 여자를 구해준 덕분에 그 여자와 연애를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스물두 살 청년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인터넷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했고 네티즌들은 요청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댓글을 달아주었다. 그 댓글을 그대로 책에 담은 것이 <전차남>이다. 이것도 책이냐, 라는 비난이 없지 않았지만 이 책을 펴낸 신초사의 담당 편집자는 <전차남>이 새로운 유형의 문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때 나는 그 주장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지만 <낭만적 밥벌이>를 읽으면서 문득 새로운 유형의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이제 진지한 토론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낭만적 밥벌이>는 인생이 무료한 35살의 두 노총각, 세상의 온갖 유의미한 것들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키키봉이라는 무의미한 닉네임을 사용하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와 그의 20년 지기이자 평범한 건축회사 직원인 곤이 전하는 일종의 카페 창업기다. 실제로 책 끝에는 창업 전에 꼭 알아야 할 정보도 실려 있지만, 이것은 사족일 뿐이다.

이 책은 창업기를 빙자한 매우 신선한 성장기이다. 창업의 과정을 순서대로 기술하긴 했지만 내용의 절반은 등장인물들이 나눈 스몰 토크다. 창업 과정에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의 실제 경험, 온라인상의 ‘혈맹’ 사이가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진솔한 표현, 누구나 공감하게 만드는 진득진득한 감정 등은 스몰 토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뿐만 아니라 기승전결이 확실한 감동 구조도 있다. 따라서 <낭만적 밥벌이>는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새로운 유형의 소설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카피라이터 출신의 지은이가 요소요소에 박아놓은 촌철살인의 아포리즘은 흥미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기도 하다. 네트워크라는 테크놀로지는 이제 우리의 감각과 소설의 형식마저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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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한웅의 '낭만적 밥벌이'는 제가 수강한 바 있는 심산스쿨 인디라이터반 출신의 첫 번 째 책입니다. 홍대앞 카페입성기가 계약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주제의 경쾌함에 놀랐고, 계약되었다는 소리 들은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싶었는데 책이 출간되어서 놀랐고, 타이틀이며 책디자인이 너무 상큼해서 부러웠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시종일관 킬킬거리게 하는 '문체의 힘'은 인정했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없어도 되는건가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한기호씨의 칼럼이 참 명쾌하군요.

    2008.04.27 19: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