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08. 4. 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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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영화를 볼 때는 살짝 심심했다. 사건과 갈등이 없는 편은 아닌데, 과장과 자극으로 포장하지 않았기 때문일꺼다.  그런데 만 이틀이 지난 오늘 오후 느닷없이 이 영화 생각이 났다. '타인의 삶'을 내 삶으로 끌어들여 크나큰 위험을 자청한 그 남자가 떠올랐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전의 동독, 냉혹한 비밀경찰 비즐리는 극작가 드라이만과 애인 크리스타를 도청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와 일상의 전부, 심지어 사랑을 나누는 것까지 도청하게 되면서, 비즐리는 서서히 그들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생활은 점점 비즐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사랑을 도청한 후에 몸집 큰 여자를 사는 식이다. 그러면서 비즐리는 그들을 사랑이라도 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개안이요 동경일까. 그는 크리스타에게 그녀의 육체를 탐하는 문화부장관에게 저항할 것을 종용한다.

나는 당신의 관객이니, 제발 무너지지 말라고.

장관의 노여움을 산 크리스타는 마약복용을 빌미로 구속되어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다는 협박을 받는다.
연인인 드라이만을 밀고해야만 예술을 계속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으로 영화는 치닫는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에는 잔인할 정도의 절제가 있었구나. 크리스타의 갈등과 죽음, 비즐리의 선택, 우편물을 검열하며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된 비즐리의 일상, 뒤미처 모든 것을 알게된 드라이만이 우회적으로 보내준 헌사, 그 모든 것에 일말의 환상이나 극적 장치가 없다. 그저 느릿하고 밋밋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영화적 장치만 없을 뿐, 이 영화는 그 어떤 환타지영화보다도 영화적이다. 자신이 도청하는 인간들에게 개입하여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는 배임행위를 불사하는 비밀경찰이란 얼마나 환상적인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동경과 이상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거의 동화에 가깝다.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이 지치지도 않고 복제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사람은 '타인의 삶'에 연루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경지를 경험할 수도 없다. 나는 내 안으로 들어 온 무수한 '타인의 삶'의 종합판이다. 갑자기 '타인의 삶'이 소중해진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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