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책2008. 4. 12. 11:09
다카하시 겐이치로,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웅진 지식하우스 2008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상세보기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지금까지 꽁꽁 숨겨왔던 '창의적인 스토리텔링' 비법을 풀어놓았다. 무게만 잡는 무미건조한 창작 이론서가 아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쉬운 문장에 톡톡 튀는 상상력과 익살을 섞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 유쾌한 일인지 증명해 보인다. 초등학생도 소설을 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대중적


우연히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책을 나란히 읽었다. 송숙희의 '당신의 책을 가져라'가 기획력과 실용성을 일깨워 '세상'에 맞춰나가는 책이라면, 이 책은  '글'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캐물으며 '나'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책이다. 소설작법의 범주에 들어가는 책이지만, '소설'이 아닌 모든 '글', 나아가 '글'이 아닌 '인생'으로 바꿔 읽어도 될 만큼 저자의 공력이 만만치 않다.

우선 '글'이란 무엇인가. 저자가 생각하는 글이란, '여기가 아닌 어딘가, 저 너머에 가고 싶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에서 기인한다.  태평스럽게 웃으며 잘 살고 있는 절대다수가 틀린 건 아닌가 하는 고독한 의심을 전제하고 있기도 하다.
 
으음, 나는 이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든다. 실속있고 야무지게 내 몫을 챙겨가며 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낯설게 보며 모든 것에 질문하는 나를 위한 구원 아닌가. 그러나 '저 너머'에 가고자 하는 욕구는 있되, 치열하지 못했다.
엊그제 총선 개표방송을 보는데, 20대에 학교나 동아리에서 안면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젊은 날 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현주소는 지금 얼마나 달라졌을까.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방사선처럼 분사되었던 우리의 길들... 고시를 보고 유학을 가고, 운동권에 있더라도 자기관리와 내 몫 챙기기에 치열했던 사람들이 지금 그 자리에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은 사람은 늘 질문하고 늘 떠났으되, 지독하게 살지 못했다. 치열함...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삶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최대한 서둘러야만 한다

해가 저물기 전에
첫 눈이 오기 전에

밤하늘의 보잘것 없는 별들에게는 그처럼 관대하기만 하던 세월이
그들에게 빈 손을 불쑥 내밀었다가는
그것마저 아깝다는 듯이 금세 거두어들이고 만다
한 발자국 가까이 두 발자국 가까이

인생이란 아무리 긴 듯해도 언제나 짧은 법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법

-- 비스와바 쉼보르스까, 조상들의 짧은 생애 --



사람마다 가고싶은 곳은 다 다르다. 모든 사람은 제각기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누군가 글쓰는 방법 같은 것을 가르쳐줄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저자는 글쓰기에 대해 몇 마디를 슬쩍 흘리고 있다. 자신의 길을 찾아 걷고 걷고 또 걷다가 마지막에 오로지 혼자서 더듬더듬 가 닿은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거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이렇다.

붙잡는다, 공을 받아들인다.
논다, 천진하게.
흉내낸다, 아기처럼.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다만 아주 조금 즐거운 거짓말을 넣어서.

날아오는 수많은 공- 내게 오는 모든 자극과 동기? - 중에서 나의 연인을 찾아라.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을 찾아라. 내가 하고싶은 말,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논다'와 '흉내낸다'는 부분은 아름다운 노하우로 내 안에 들어와 박혔다.

소설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너를 꼭 안아줄게!"라는 등의 말은 행여 하지도 말고 그냥 함께 놀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소설은 불신이나 불안이나 의심을 버리고 당신의 품 안으로 뛰어 들어올 테니까요.

인간이 무언가를 할 때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일수록, 이건 정말 중요하다, 꼭 해야 한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라는 식으로 강한 의욕을 보이면 보일수록
소설도 <만일 소설 쓰기를 원한다면>
시도 <시쓰기를 원한다면>
여자도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
꿈도 <수많은 꿈도>
돈이나 지위도<이건 잘은 모르겠지만>
당신에게서 도망쳐 버립니다. 그러니 당신은 우선 소설과 그냥 함께 놀아줄 각오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세상의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정색을 하고 대단한 각오를 하거나, 학문이나 관찰보다도 '놀이'가 유효하다는 말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놀기 위해서는, 상대와의 의기투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상대의 기호를 알아차리고, 상대의 세계에 들어가 즐기는 일이니, 상대의 마음을 얻기 쉬울 수 밖에.


뭔가를 좀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흉내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뭔가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 서서히 그것을 말로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완전한 오류가 아닐까요.
우선 맨처음에 꼭 빼닮도록 흉내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기가 무언가를 먼저 생각한 다음에 말을 할까요? 아니지요. 아기는 우선 말부터 입에 올립니다.
몇 번이고 입에 올리는 사이에 그 말과 엄마에게서 혹은 바깥세계에서 배워온 말의 의미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자이 오사무 씨의 여고생을 고스란히 흉내냈더니 어느날 문득 내 속에 다자이 오사무 씨의 '여고생다운 생각'이 꿈틀거렸습니다. 물론 그것이 정말로 여고생다운 생각인지 어떤지는 나도 모릅니다. 단지 지극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생각이 내 속에서 마치 내가 생각한 것처럼 생겨난 것입니다.

독창성이나 개성을 중시하라고 배워온 당신은 무언가 불안하겠지요. 하지만 독창성이나 개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이 독창성이고 무엇이 개성인지 먼저 알아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두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흉내내어보는 것, 흉내내는 것으로 그 세계를 더 깊이 아는 것, 그렇게 해서 수많은 언어의 세계를 아는 것, 나아가 그것을 통해 그 이외 언어세계의 가능성을 체감하는 것, 그것이 필요합니다.


전에 어떤 문인들이 '모델작가' '모델북'을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난다. 송숙희가 베껴쓰기를 강조하던 것도 확실하게 반복학습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모델작가와 모델북을 찾아야 하겠구나. 최근 출판사와의 미팅에서 나의 기획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기획이 너무 평이하거나 화두를 던져주지 못한다, 시니어세대가 떠오르는 독자층이긴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 틈에 또 그만큼 눈이 밝아졌다. 내 기획안은 다분히 산만하고 평이했다. 혼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이 출간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이 없었다. 첫번 째 독자인 출판기획자를 유혹하는 힘이 약했다. 내가 가진 자산 중에서, 내가 도달하고 싶은 '저 너머' 중에서,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은 어떤 것일까 근본적인 탐구가 필요하다.

그 후에 고즈윈에서 나온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이라는 책을 보았다.
저자의 자서전을 기반으로 하되, 일반인이 자서전을 쓰도록 도와주는 480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아하~~ 이런 것이 기획이로구나.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한 수 배운 느낌이었다.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공을  받아안고, 아기처럼 천진하게 놀 것이다. 필받으면 정신없이 노는데는 자신있으니까,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기꺼이 흉내낼 것이다.  깊이 읽고 다 읽고 베껴 쓰고,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생각해볼 것이다. 벌써부터 발가락이 움찔거린다. 아주 조금 즐거운 거짓말을 섞어서, 나의 이야기를 쓰는 희열을 맛보고 싶어서.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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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근 읽고 있는 책 중에 트렌드인 비즈니스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에 보면 직업훈련 주식회사라는게 있더라구요.
    성공의 핵심요소가 훈련생들에게 진짜 직장이너럼 행동하라고 요구한 것이래요.
    트레이닝 주식회사의 훈련생들은 일주일에 5일, 하루 6시간씩 직장인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한다고 해요.

    그래서 결과를 보면...85%정도가 수료 후 곧바로 취직에 성공한다고 하는군요.
    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생각났어요 ^_^*

    2008.04.13 09: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독창성과 개성이 강조되면서도, 정작 제대로 된 창의성 교육을 찾아볼 길없는 우리 현실에서,

      의외로 제대로 된 모방효과 훈련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대로 모방한다면, 거기에서 '진정한 내 것'도 나온다는 얘기죠.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닮고 싶은 역할모델이 많아져야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내게 들어온 모든 경험을 융합하여 비로소 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2008.04.13 10:39 [ ADDR : EDIT/ DEL ]
  2. 요즘 미탄님으로 부터 너무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삽십평생 살아오면서 글쓰기는 저에게 큰 숙제 처럼 남아 있는데, 끝없이 펼쳐진 사막가운데 오아이시스를 만나 한 모금 씩 떠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길은 멀은지라..^^ 많이 먹고 체력 좀 키워야 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 드립니다.

    2008.04.14 09:54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어이쿠! 도움이 되었다니, 내가 더 기쁘네요. ^^
      메아리가 없으면, 아무리 자기만족에서 하는 일이라고 해도 가끔 허전하잖아요. 맥빠지고.
      그러니 공감하는 내용 있으면 부지런히 피드백 부탁해요.
      나의 '발가벗은 힘'을 '인생 후반전을 떠오르게 하는 글쓰기'로 정한 만큼, 부지런히 포스팅 할테니까요. ^^

      2008.04.14 11:13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