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펌글창고2008. 4. 4. 10:28
2007 년 음력 초하루를 나의 50대 10 대 풍광을 다시 조율하는 시간으로 썼다. 조금씩 다듬어 가는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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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년의 회고“ (2005-2015),
2007년 음력정월 초하루 version

직업과 일상 그리고 나
2015년에 돌아 본 10년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

꽃은 하루 밤 사이에 피고 버드나무는 하루 밤 사이에 푸르러 진다.

종일토록 봄을 찾아 나섰지만
봄은 보이지 않고
신발이 다 닳도록
고개마루 구름 사이를 휘돌았다네.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매화를 휘어잡고 향기 맡으니
봄이 가지 끝에 머문 지 이미 오래 되었네.

- 어느 선승의 노래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싶다. 나는 그들이 꽃으로 피어날 때 그 자리에 있고 싶다. 이것이 내 직업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통쾌하고 아름다운 풍광이다.


내가 생각하는 직업관 :

일은 하늘이 내게 준 것이다. 일을 통해 긴 삶이 그 본연의 구체적 모습을 발현한다. 직업은 타고난 나를 활용하는 것이며, 평생 애써 나를 꽃피우는 것이다. 인생을 낭비한 자, 그들이 가장 게으르고 비겁한 사람들이다. 가장 나다운 일을 찾아 그 일을 즐기리라.

그 일을 내 일인지 알 수 있는 두 가지 기준 :

*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어야 한다.
*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직업인으로서의 나의 차별성

변화경영전문가
- 작가/ 여행가/강연가/새로운 삶의 운동가/컨설턴트

“하늘에 있는 용의 고기가 좋기는 하지만 범부는 먹을 수 없다. 땅 위의 돼지고기는 용의 고기처럼 고귀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먹을 수 있다. 용의 고기와 같아서 심오하기는 하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없다면 먹을 수 없으니 배만 고플 뿐이다. 그러나 돼지고기처럼 소박하고 쉬우면 생활 속에서 실현될 수 있으니 배가 부르고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소동파의 변형)

실천할 수 있도록 하라. 그러나 시장의 천박함까지 내려오지는 마라. 바닥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곳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닥을 딛고 일어나 변형하여 하늘을 날기 위함이다. ‘고귀하기가 왕족과 같고 수수하기가 초민과 같다’는 뜻을 그런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면적 자산 (기질/재능/경험...)

- 인문학적 감수성 (모순을 품고 살 수 있는 정신적 균형)
- 이론을 만들고 체계화하는 능력
- 느낀 것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다.
- IBM에서 16년 동안 변화 경영의 실무를 총괄했다

10 Great Sceneries in My Fifties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 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 라는 내 비전은 빛나는 꽃을 피워냈다. 신은 내가 궁핍하지 않게 먹고 살고 충분히 즐길 만큼 벌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 이상의 돈을 위해 나를 소모하지 않았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자기관리의 원칙이었고 자제였다.

내 쉰 살 10년은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나는 내 마음대로 내 삶을 그려보았고 실천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소풍이었고, 탐구였고, 열정이었고 또한 휴식이었다. 나는 햇빛이 몸 안으로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몸이 이완되어 가는 서운함과 함께 인생의 맛도 깊어졌다.



1. 모두 10권의 책을 썼다. 그 중 첫 4권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코리아니티 경영 : 한국의 문화적 강점 경영 ( 2005. 12)
공익을 경영하라 : 무역협회 경영혁신 사례 연구 (2006. 2)
사람에게서 구하라 : 가장 자기다운 리더십을 찾아서 (2007. 2)
아름다운 혁명 : 세계의 공익조직들의 혁신 사례연구, 연구원 공저 (2007. 5)

그리고 나머지들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변화의 방정식
내 꽃도 한 번을 피리라
레인보우 파티 - 직장인을 위한 행복학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 지려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나 -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2 )

이 중의 몇 권은 영어와 일어 그리고 중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중에 한권은 내가 직접 영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한 권은 시집이다. 나는 한국사 100 장면에 대한 거대한 서사시를 써내려갔다. 바닷가 변화 경영연구소는 이 작품의 산실이 되었다. 나는 매년 조금씩 썼다. 단군신화에서부터 한반도의 통일까지 가장 아름답고 슬프며 치욕적이고 웅혼한 역사적 풍광을 펄펄뛰는 언어로 잡아 보았다. 이 서사시가 완성되고 나는 떠났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 중에서 일부가 50대 10년 사이에 만들어 졌다. 시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생을 시처럼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2. ‘ 내 꿈의 첫 페이지’ 프로그램을 통해 한해 30명, 전부 300명의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한때 모두 ‘자신의 지금에 지치고 분노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 적극적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들을 ‘창조적 부적응자’라고 불렀다. 지금은 모두 자신들의 특별한 길을 가고 있다. 나는 이들을 만나고 이들의 인생을 듣고 이들의 인생을 기록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 나는 이들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자신들의 행로를 잡아가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그것이 내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 가지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도움을 주겠다고 시작한 일이 결국 내 기쁨으로 되돌아 왔다.

우리는 늘 함께 만났다. 우리는 서로 상대의 꿈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결혼식에서, 누군가의 개업식에서, 꿈 하나를 이룰 때 그 축하의 현장에서 우리는 서로 만났다. 누군가 그 꿈 하나를 이루어 갈 때, 꿈과 현실 사이의 다리도 한 층씩 쌓여져 갔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조언자였고, 지지자였다.

나이를 먹어 가며 바라는 것은 진정한 명예였다. 모르는 사람들의 칭송- 그것은 풍선같은 것이다. 곧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를 잘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칭송은 가치 있는 것이다. 만일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좋은 사람이고, 자신들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주었고, 그래서 나처럼 살고 싶어 한다면, 내 삶은 괜찮은 것일 것이다.


3. 나는 한 해에 한번 씩 10번의 매우 특별한 세계여행을 즐겼다. 내가 기획했고 내가 의도 한 여행을 만들었고 여기에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들과 가장 멋진 방식으로 세계를 쏘다녔다.

말타고 7월에 들꽃 가득한 몽골을 여행한 것은 아주 즐거웠다.

터키에서 보낸 보름 역시 기억에 남는다.

독일, 헝가리, 체코,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를 아내와 함께 돌아 다녔다.

아주 추운 겨울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자작나무 숲을 달리다 남부의 따스한
곳에서 쉬는 것도 좋았다.

고대 지중해 시대를 돌아보는 로마 카르타고 그리스 트로이 미네타 페니키아등의 회람도 좋았다.

실크로드의 횡단 역시 나쁘지 않았다.

삼국지의 격전지와 매혹적인 풍광을 둘러보았다. 촉의 성도를 둘러보고 즐겼다.

안데스 산맥을 따라 태평양을 굽어보며 칠레의 북에서 남으로 종단한 것 역시
아름다웠다.

4. 한 해에 120회씩 모두 1200 회의 강연을 마쳤다. 그 동안 10만명의 사람들에게 강연을 했고, 그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려 했다. 또한 1000 개의 기고를 했다. 이를 위해 천 권의 책을 읽었고, 300 편의 영화를 보았다. 이 독서와 관람은 책을 쓰고 생각하고 나의 언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 강연은 실천적이었다. 내가 직접 맛보고 혀로 핥아 본 것들에 대한 보고서였고, 그것을 기초로 우리의 문화적 환경과 특수성에 잘 맞는 모델을 전하고 싶었다. 나는 문화적 상이성을 가진 시시한 미국 모델이 범람하여 과장과 왜곡을 만들고 이내 쓸모없어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세계적 보편성의 한국화’라는 물결과 ‘한국적 특수성의 보편화‘라는 물결이 만나 아주 괜찮은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것에 10년의 초점을 맞추었다.

5. 변화경영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를 한 해에 10명을 모아 수련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2년 안에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선정기준은 자신에 대한 역사를 기술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자신과 세상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지금 자신에 대한 강한 분노와 창조적 증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지금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이것이 유일한 자격 요건이다.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확실한 근거는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실험하고, 맛을 보고, 정리하여, 일반화시킬 수 있는 이론과 모델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믿음이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을 이해하고 나서 비로소 변화 경영에 대하여 힘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유산을 활용하여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 - 이것이 변화 경영의 요체다. 나는 그들이 먼저 자신에 집중하기를 바랐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그러나 사람을 얻기 위해 내 시간을 조금 더 많이 썼다. 마흔살 10년이 나를 위해 투자한 시간이라면 50대 10년은 더불어 사는 시절이고 싶었다. 그 방법을 찾아보았다. 언제나 주장하는 바와 같이 변화경영 전문가라는 본업을 통해 기여하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문요한이 첫 번째 책을 냈다. 2007년 2월일이다. 그의 첫 책의이름은 ‘굿바이 게으름’이다’.
오병곤이 두 번째 책을 냈다. ‘대한민국개발자 희망보고서’ 역시 구정이 지나고 곧 나왔다.
홍승완/오세나가 나와 함께 책을 내었다. 2007년 2월 초고를 완성하여 출판사에 넘겼고, 5월 출간되었다.
2기 연구원 한명석이 탈고하여 원고를 몇 군데 출판사에 넘겨 두었다.

6. 50대 10년 동안 나는 내 몸을 더 잘 돌보았다. 가장 훌륭한 건강 상태를 유지했다. 아마 평생 동안 이 시기처럼 건강과 육체에 마음을 쏟은 일은 없었다. 1 년에 4번 정도는 가벼운 단식을 했다. 단식은 늘 내가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탐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는 아주 조금만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것, 이 세상에 내가 그토록 먹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들이 천지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운동을 했다. 허리 운동을 했고 가슴 운동을 했다. 배를 집어넣고 복근을 늘이고 가슴의 근육을 키웠다. 일주일에 적어도 3번은 산에 올랐다. 거울을 보고 내 몸이 여전히, 어느 때 보다도 아름답다는 것을 즐기곤 했다. 육체의 아름다움, 나는 이것이 현세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몸만들기와 함께 고급영어를 마스터했다. 우선 모든 관심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까로 잡아 보았다.

7. 우리는 행복하게 지냈다. 아내에게 드디어 멋진 허리가 생겼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같이 다녔다. 좋은 친구였다. 강연여행을 다녔고, 함께 먹으로 다녔고, 함께 산에 갔다. 달이 뜨면 달빛 아래서 한잔 했다. 종종 좋은 공연을 보러 갔고, 영화도 매월 2 편 정도는 같이 보았다. 종종 다투기도 했지만 10 분도 안 돼 다시 웃고 떠들었다. 그녀는 늘 좋은 조언자였다. 그녀에게는 탐욕이 없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시간이고, 여유고 사랑이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들의 길을 갔다. 큰 아이는 바라는 대로 약간 세속적인 탐닉을 즐기며 화려하게 산다. 바쁘다고 징징거리지만 , 스스로 밝고 또 다른 사람을 밝게 해주는 좋은 의사로 잘 살고 있다. 작은 아이 역시 저답게 제 길을 가고 있다. 글을 잘 쓰고 이미 두 권의 책을 냈다. 이 아이는 세상에 대한 애정이 많다. 꿈도 많다. 스스로 조금 괴롭히며 살고 있지만 바로 그 통증을 느끼는 것이 그 아이가 타고난 천성이며 좋은 점이다.
8. 나는 10만명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그들은 로열티가 특별히 강한 간이역 방문객들이었다. 강한 친밀감과 애정과 책임을 공유하는 지지자들이었다.

* ‘레인보우 파티’ 라는 공공의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 회원들에게 일주일에 4번 정도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편지지를 도안했다. ‘ 정숙해 보이지만 한번 얼른 안아 보고 싶은 여인’ 같은 편지지를 만들어 달라 했다. 승완과 요한 그리고 용규가 스타팅 컬럼니스트로 등장했다.


9. 바다가 찬란하게 비치는 곳에 ‘변화 경영연구소’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꿈을 꾸고, 자신을 찾고, 쉬고, 돌아갔다. 이곳은 현실 속의 꿈이었고, 꿈 속의 현실이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자신을 얽매고 있던 현실적 조건이라는 사슬을 끊어냈다. 그들에게 유일한 현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질과 재능과 경험과 비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10. 나는 한 달간 그곳에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해가 뜨기 전에 깨었고 해가 진 다음에 자리에 들었다. 나는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변에 앉아 바다가 시간에 따라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곳에 올 때 작은 가방을 하나 들고 왔다. 그 속에는 두 개의 속옷이 들어 있었고 긴 팔 남방이 두 개 들어 있었고 바지가 두 개 들어 있었고, 두개의 양말이 들어 있었다. 치약이 하나 칫솔이 하나. 그리고 노트북이 있었다. 방을 구하는 데 쓰고 난 다음 내 지갑 속에는 천 원짜리 27장과 만 원짜리 4장이 들어 있었다. 나는 하루에 천원으로 살았고 토요일만 만원을 썼다. 토요일에는 소주를 한 병을 샀고, 쌀과 반찬을 조금 샀다. 내 방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요 하나와 작은 베게 하나와 얇은 이불 하나, 그리고 작은 앉은뱅이 밥상 겸 책상이 하나 있다. 이것이 전부다.

바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특히 이곳 바다는 오랫동안 보아 둔 곳이었다. 긴 백사장이 있고 그 한 쪽 끝에는 내가 늘 올라 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 볼 수 있는 작은 누각이 있다. 나는 저녁이면 대청처럼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날이 저물어 가는 것을 음미했다. 저녁은 그 특유의 평화로움으로 지고 있었다. 해안의 다른 한 쪽 끝에는 꽤 신기한 모양을 갖춘 바위들이 늘어서 있어 그곳에 앉으면 파도가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간혹 바위에 부딪혀 솟구 친 파도의 포말이 내 발끝까지 쳐 오르면 나는 얼른 몸을 움직여 피하곤 했다. 그건 내가 키우던 개와 놀던 몸놀림과 비슷했다. 나는 한 달 동안 바다와 파도와 바람과 장난을 치곤했다.

간혹 강한 바람과 비가 몰아쳤다. 파도가 높게 몰아쳐 웅장한 소리를 질러대면, 나는 웃통을 벗고, 바다로 나갔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의 포스터처럼 나는 쏟아지는 비 속에 두 팔을 벌리고 흰 백사장에 서 있었다. 원없이 폭우를 맞는 것은 오랫동안 내가 바랐던 장면이었다. 폭우 속에서 나는 눈을 뜨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 장울 들을 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눈을 뜰 수 없다. 이내 빗소리와 파도 소리와 온몸에 느껴지는 빗방울 속에서 나는 돌연 바닷가 모래밭에서 불현듯 솟아 오른 나무처럼 두 팔을 벌리고 서있다. 비가 내리면 내 영혼이 쑥쑥 자라리라.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면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리라. 그런 기대는 늘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비가 그치고 나는 동쪽으로 난 창문을 열어 젖혔다. 싱싱한 바람이 불어 들고 나는 밥을 차렸다. 밥 반공기와 김치 한 사발 그리고 아침에 내가 소금을 조금 넣고 끓인 배추국이 전부다. 그동안 너무도 많이 먹었다. 나는 바닷가에서 아주 소박한 한 달을 지냈다.


나는 내 아이들이 태어날 때 아내와 함께 상의하여 아이들 이름에 모두 ‘바다 해(海)’자를 넣어 두었었다. 이제 나 역시 바다에서 다시 태어나고, 세 번 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때부터 또 하나의 이름, 일해(日海)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른다는 뜻이다. 매일 바다에서 뜨는 해를 본다는 뜻이며, 매일 바다로 지는 해를 본다는 것이다. 환갑이 넘어 하루하루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이 살기 위해서였다.

2014년 가을은 이렇게 지나갔다.



2005/2006년 지금까지의 개인사의 한 장면

첫 번째 방법은 ‘내 꿈의 첫 페이지’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꿈을 찾아 주는 것이었다. 내가 알아낸 것은 우리의 불행의 더 많은 부분은 꿈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라 꿈조차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희미한 것이었고 사라져 가는 것이었고 이루지 못하는 것이었고 맞출 수 없는 퍼즐의 한 조각에 불과 했다. 그 한 조각을 가지고는 전체를 그려보기조차 어려운 작은 편린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여행을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로 꼽지만, 그것이 어찌 인생을 전부 건 프로젝트가 될 수 있겠는가 ? 나는 삶을 송두리 째 바치게 하는 일생 일대의 꿈을 찾아 그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들은 그것을 찾아 떠났다. 어떤 이는 회귀했고, 어떤 이는 방황했고 어떤 이는 자신의 길로 들어섰다. 결과와 성과가 어떻든 그것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변화 경영의 영역으로 테두리 지울 만한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계획되었다. 매년 10 명의 지원자를 선정했다. 일 년간 일주일에 한번 on-line 으로 만나고 한 달에 한 번 직접 얼굴을 보고 만났다. 일년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전 과정은 무료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무료가 아니다. 나는 ‘지식의 물물교환’이라는 방식을 시도해 보았다. 돈을 거래의 단위로 쓰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거래의 단위로 사용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그들을 지도했고, 그들은 그들의 배움과 숙제를 내 홈페이지에 올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학업을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이 개념을 좋아한다. 돈이 모든 것인 사회에서 나는 옛날 방식의 따뜻한 대안을 찾고자 했다. 훈장이 가르치고, 아이들은 형편에 맞게 쌀 한말, 팥 두되, 콩 반말을 수업료로 내는 것이 농경사회에서의 보상 방식이었다면, 지식 사회에서의 거래 방식은 지식의 물물교환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치의 차이는 내가 훨씬 덜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훨씬 더 많이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사람들 속에서 훌륭한 변화경영전문가가 나타난다면 나는 충분하게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 의도였다.

연구원들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나는 일반적인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았다. 학벌도 전공도 나이도 성별도 따지지 않았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20 페이지의 ‘자기 이야기’을 써 보내면 되었다. 가장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고 찾아 온 15 명 정도에게 우선적 기회는 돌아간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자’ - 나는 이 직선적 열정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장 탁월 자 5명을 고른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내용을 검토하여 10명 내외를 추린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다. 배움이 어렵거나, 숙제가 많거나, 결석이 잦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분야와 적성과 재능이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좋다. 나는 10년 동안 100명의 제자를 키우려고 했지만 50 명으로 만족해야했다. 50명은 모두 수료 과정을 포함하여 2년 이내에 자신의 전공에 관한 책 한 권 씩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졸업 자격증이었다.

연구원들이 3년 차가 되면 그때는 모두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한 권의 저서를 가지고 있는 ‘1집 연구원’들이 된다. 나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들과 함께 보다 깊이 있는 연구에 들어 갈 수 있다. 10년이 지나면 어떤 연구원들을 이미 여러 권의 저서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자신의 관련 분야에서 그 일을 직업으로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다.

* 2005년 이후 한 해에 30-40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꿈의 첫 페이지를 꾸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그들이 일상의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흘 동안의 불연속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자궁 속의 시간 같은 것이었다. 아주 적게 먹었고, 담배를 끊었고, 체중을 줄였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자신의 강점을 집중적으로 찾게 했고, 그것을 직업과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그들 모두에게 새로운 10년이 펼쳐졌고 만들어 졌다. 한 달 안에 해야 할 일과 6개월 안에 해야할 일이 짜여졌다. 말 그대로 변화는 그들의 일상에서 실천되었다.


** 2월 4일에서 2월 16일 까지 음력설 휴가를 끼고 우리는 새해의 자연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은 아름다웠다. 책과 상상 속에 있던 곳들이 이 지구상에 실존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꿈꾸는 인생이 어째서 이루워 질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쉽게 체념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생각한 것이 존재하고 상상한 것들이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어째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 대신 그렇게 쉽게 대중의 삶 속에 나의 삶을 던져 넣었는지 알 수 없었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물이 강물처럼 일렁이고, 꽃은 수도 없이 피어있고, 그곳 사람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말로 사랑하고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들 역시 현실에 갇혀 살긴 하겠지만, 이렇게 이곳에 와 그들은 보고 즐기는 우리는 빛나는 비행기를 타고 현실너머로 날아온 것 아닐까 ? 우리는 이곳에 오기 위해 물론 약간의 노력을 했다. 돈을 헐어 썼고, 휴가를 냈다. 그 노력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이곳에 와서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의 일부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호사와 사치라기 보다는 ’내 삶을 내가 경영한다는 믿음과 번 것을 배분하는 우선 순위의 문제‘였다. 우리는 돈 보다 내 시간의 일부를 내 마음대로 배정할 수 있다는 자유를 선택했고, 이 선택이 우리를 잠시 이렇게 자유로운 여행자가 되게 해 주었다.

* 더 많은 회원들에게 일주일에 4번 정도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편지지를 도안했다. ‘ 정숙해 보이지만 한번 얼른 안아 보고 싶은 여인’ 같은 편지지를 만들어 달라 했다. 승완과 요한 그리고 용규가 스타팅 컬럼니스트로 등장했다. 2007년에는 병곤과 명석이 2기 컬럼리스트로 합류했다.

* 각 단계별 ‘나를 탄생시키는 프로젝트’ 의 기본 개념을 정립했다.

인생은 유유한 강물이다. 그것은 수많은 변천과 사연을 담고 흐른다. 작은 계곡의 졸졸거리는 샘물로부터 시작하여, 아홉 계곡의 급한 물살이 힘차게 모여 커다란 계류로 흐르다 천길 낭떠러지를 내려 떨어지고, 이윽고 거대한 강이 되어 눈부신 모습으로 바다로 빠져드는 그 유유한 강물이 바로 우리다.

강물의 여정을 우리의 인생과 겹쳐보면 그 유사성에 놀라곤 한다. 10대는 뜻을 세우는 시기이며, 20대는 준비하는 시절이다. 30대는 성취의 시절이고, 40 대는 전환의 시대다. 50 대는 자적(自適)의 10년이고, 60대는 베품의 시절이고 아마 70대는 비움의 시기일 것이다. 이 중에서 사회와 가장 치열하게 만나는 접점이 바로 서른부터 시작하여 쉰으로 끝나는 30년이 아닐까 한다. 계류가 모여 수량이 불고 천애의 협곡에서 몸부림치고 이윽고 유장한 평화로움으로 흐른다.

서른 살 10년은 성취에 몰두해야할 시기다. 이때 이루어 낸 것이 없으면 그 다음 마흔 살 10년은 통째로 흔들려 그 허망함을 견디기 어렵다. 서른 살 10년의 긴 세월을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그 선택이 무엇이든 반드시 하나의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 즉, 다음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서 당신이 가장 자랑할 만한 성취는 무엇입니까 ? ” 따라서 이때의 10 년은 성취를 위해 모든 에너지가 결집되어야 한다. 돈도 명예도 보장되지 않는 인생의 한 때를 바닥에서 박박기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좋다. 어두움은 늘 위대하고 비옥한 토양이다. 한 시인의 표현을 빌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들끓게 하였던 것들, 끝없는 벼랑으로 내몰고 갔던 것들, 신성과 욕망과 내달림과 쓰러짐과 그리움의 불면들......” 이런 것들이 바로 30 대를 만드는 힘들이다.

마흔 살 10년은 모름지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혁명의 시기다. 이때 전환하지 못하면 피기 전에 시든 꽃처럼 시시한 인생을 살게 된다. 사람들은 이때를 후반전의 인생을 위한 인터미션, 혹은 2막이라고 부를 지 모른다. 어림없는 말이다. 실력이 모자라면 후반전의 경기는 또 한 번의 비웃음에 불과하다. 1막에서 시시한 엑스트라가 2막에서 돌연 위대한 주인공으로 돌변하는 연극을 본적이 없다. 다른 사람의 각본으로 다른 사람의 연출에 따라 미리 정해진 배역을 맡은 배우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인생은 연극이 아니다. 인생은 진짜다. 마흔 살은 지금까지의 연극을 끝내고 진짜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스스로 대본을 쓰고, 스스로 연출하고, 스스로 배우가 되는 진짜 이야기, 이것이 마흔 살 이야기다. 이때 10년의 상징은 죽음과 재생이다. 거대한 낭떠러지가 큰 강을 만든다. 낙엽은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한 아름다운 죽음의 의식이다. 죽어야 다시 하나의 나이테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봄에 꽃을 피울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마흔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가을이 아니라 겨울과 또 다른 봄이다. 내가 보고 겪은 바로는 이 때 그 치열함이란 생사를 가르는 비장함이다. 역시 같은 시인의 표현을 빌면, “구비구비 흘러온 길도 어느 한 구비에서 끝난다. 폭포, 여기까지 흘러온 것들이 그 질긴 숨의 끈을 한꺼번에 탁 놓아 버린다. 다시 네게 묻는다. 너도 이렇게 수직의 정신으로 내리 꽂힐 수 있느냐. 내리꽂힌 그 삶이 깊은 물을 이루며 흐르므로, 고이지 않고 비워내므로 껴안을 수 있는 것이냐. ” 이것이 마흔 살 10년의 정신이다. 죽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쉰 살이 되면 자신의 인생을 미소를 머금고 지켜가면 된다. 커다란 강이 오후의 황홀한 햇빛 속을 눈부신 자태로 유유히 흘러가는 그 장관을 연상하면 좋다. 그 안에 수없이 많은 고기떼를 품고 흐르는 커다란 관용의 강물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자신의 하루에 대하여, 자신이 이루어 낸 크고 작은 멋진 일들에 대하여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시절이다. 역시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하여 거기 은빛 비늘의 물고기떼, 비바람을 몰고 오던 구름과 시린 별과 달과 크고 작은 이끼들 산 그늘 마저 담아내는 것이냐 .....”

인생을 강물처럼 살 수 있다면 좋다. 인생을 시처럼 살 수 있다면 좋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우리를 지루한 일상과 반복되는 무기력 속에 가두어 두는가 ? 도대체 우리가 인생을 시처럼 살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

자기경영이란 평범한 개인이 자신을 비범함의 자리, 위대한 자리로 스스로 이끄는 리더십 이다. 타인을 위한 리더십이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이끄는 리더십(self-leadership)이다. 자신을 탄생시킬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이 되어 스스로 빛날 수 있다. 이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시(詩)속에 등장하는 그 유일하고 특별한 별이 된다.



# 주 : 인용한 시는 박남준 시인의 ‘ 나무, 폭포, 그리고 숲’에서,‘ 중의 일부다.


( 각 10년의 시기를 철학, 꿈과 비전, 시간, 투자, 자신에 대한 신뢰, 장기적 목표, 에너지라는 7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그 키워드를 행동지침으로 만들어 보았다 )

30대 10년 동안 해야 할 7가지 일

1. 철학사를 뒤적여 가장 매력적인 철학자 한 ‘분’을 골라라. 그 ‘분’에 관한 책 두 권을 정독하여 그 ‘놈’으로 만들어라. 철학은 땅으로 내려와야하고, 좋은 스승은 반드시 좋 은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함께 할 수 있다.
(철학과 윤리)

2. 회사 명함 말고, 3년 뒤의 개인 명함을 만들어라. 우리는 이것을 꿈의 명함이라 부른 다. 서른이 끝나기 전에 이 꿈을 성취하라. (꿈과 비전)

3. 일주일에 두 번은 4시간만 자라. 그리하여 그대의 ‘뼈가 아직 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 (시간)

4. 차 하나를 사서 적어도 5년 전에는 바꾸지 마라. 10년을 쓸 수 있다면 더 좋다. 똥차가 바로 지금의 당신이다. 투자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늘어나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이 다. ( 투자 )

5. 주식 3 가지를 골라 계속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고 예측해 보라. 돈을 걸든 걸지 않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예측에 대한 신뢰도를 높히기 위한 연습이라는 점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

6. 10년 뒤에 살 집을 모색해 두어라. 실제로 돌아다니며 적어도 50 군데의 동네와 200 개의 집을 가보고 두 세 군데를 찍어 두라.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은 적극적인 기다림 이다. ( 구체적인 장기적 목표)

7. 취미 하나를 가져라. 유행과 관계없이 가장 자기다운 취미 하나를 골라 일주일에 두 번 은 즐기도록 하라 ( 활력을 얻는 소스)


40대에 해야 할 7가지 일

1. 자신의 철학을 가다듬어라. 차용한 철학으로는 낭떠러지를 뛰어내려 자신의 길을 갈 수 없다.

2. 사표를 써라. 직장에서 중역이 되든 나와서 창업을 하든 일단 사표는 써야한다. 떠남 이 목표일 때가 있다. 이때가 그때다. 떠나지 못하면 모욕을 당할 것이다. 조직의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라.

3. 하루의 시간을 완전히 개편하라. 새벽에 일어나고 일찍 자라. 일주일이면 새벽에 일어 나도록 바이오 클록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습관이 되려면 반드시 일찍 자야한다. .

4. 하루에 두 시간은 자신의 전문성을 위해 투자하라. R & D 없이 어제보다 나아질 것이 라고 생각하면 그건 이상한 논리다.

5.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들어라.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되라.
아내와 남편에게 가장 매력적인 애인이 되라. 밖에서 성공하고 안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가정을 얻는 것 보다 좋은 투자는 없다.

6. 오래 동안 마음에 그리던 집을 사라. 거기서 깨어나고 생각하고 즐기고 잠드는 아름다 운 공간을 가족에게 선물하라.

7. 취미 속에서 평생직업의 힌트와 싹을 키워라.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만이 ‘good to great'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끊임없는 실험과 학습이 이 시기의 키워드다.



50대에 해야 할 일 7가지

1. 자신의 철학을 이웃과 조직에 나누어 줘라. 철학이란 삶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다.


2. 나의 인생에 감동한 세 명에서 다섯 명의 후배를 만들어라. 실천과 모범이야말로 강력한 설득력이다.

3. 아침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로부터 시작하라. 만일 저녁에도 그 일을 하지 못했다면 그 일을 마치고 자라. 최고의 수면제다.

4. 하루에 한 번 작은 즐거운 일 하나를 만들어 내라. 언제 어디서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있게 마련이다. 편지, 꽃, 전화, 만남, 선물, 이 메일 등등. 이 방법을 터득하면. 자신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 하나를 얻은 것이다.

5. 일주일에 1번은 꼭 산에 가라. 이 날은 꼭 아내와 진한 사랑를 나누는 것이 좋다. 한국 에 태어난 혜택은 산을 통해 자연을 만나고 그 정기를 받는 것이다.

6. 자신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라. 인생이 다 지난 다음에 쓰면 뭘 하겠는가 ? 쓰다보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반성이 따르고, 더 좋은 일이 발견될 것이다. 50살은 바로 그런 일들을 찾아 빠짐없이 유유히 즐기는 때다.

7. 한 달에 한번은 가장 좋을 때 한국의 산하를 구석구석 뒤지고, 1년에 한 번은 다른 나 라를 돌아보고, 매일 30분 이상씩 천천히 걷는 거리의 산책을 즐겨라. 인생은 길과 거 리에 수많은 교훈을 남겨 둔다.


세상에서의 마지막 강연

사람에게는 주어진 길이 있다. 그 길을 모른다고 하지 마라. 절실하게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늘이 왜 그 길을 찾기 힘들게 해 놓았는지 생각해 보라. 사람은 날 때 이미 만들어 진 것이다. 다만 그것은 불완전하여 살며 스스로를 완성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를 창조해 가는 것은 우리의 임무이다. 주어진 길만 찾지 말고 그 길이 끝난 곳에서 새 길을 만들어 가라는 뜻이다.

모두 52권의 책을 썼다. 12권을 썼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강연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내 책에 담아야 할 미래의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였다.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지구의 아름다움과 가지가지 삶의 풍광을 즐겼다. 또한 200백의 연구원들과 천명의 꿈 벗들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이 자리에 와 있는 여러분들이다. 여러분들은 내 동지였고, 내 제자였고, 내 자식들이었다. 그리고 내 기쁨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책을 보았고 내가 하는 말을 들었고, 나를 만났다. 그들은 나를 좋아했다. 스스로 삶의 한 부분을 바꾸어 자신의 집을 짓는 기둥으로 삼았다. 그리고 나는 가족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사랑을 받았다. 내가 없었다면 내 가족이 없었을 것이고, 내 아내와 내 자식들이 없었다면 나 또한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한 개인으로서 내 성공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가난한 유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이 가난인지 몰랐다. 가난한 청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가난이 나를 속박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꿈을 꾸었지만 그 꿈은 이루어 지지 않았고 20년 동안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냈다. 마흔 셋에 나는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변화경영전문가로서 작가로서 강연가로서 성공했다. 나도 내 꽃을 피워 내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좋아했다. 이것이 가장 큰 자랑이다.

내가 나를 좋아 한 첫 번째 까닭은 조화로운 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며, 자연히 세속의 지혜를 얻었다. 세속의 지혜는 돈과 권력과 지식의 힘으로 적당히 그 끈을 당기고 풀어주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정치적 행동이 현명하다고 말해 주었다. 그것이 경영의 지혜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 세속의 지혜를 거부하고 인간의 진지하고 순수한 마음만을 믿고 그 마음의 음성에 따라 행동하려고 했다. 사무사(思無邪) , 이것이 바로 시인의 마음이다. 사람에게 길을 묻는 마음이 경영이라면 하늘에게 그 길을 묻는 마음은 바로 시인 것이다. 때때로 이 둘이 일치하여 한 사람으로서 내게 주어진 하늘의 뜻을 ‘바로 지금 여기’에 구현하게 되었을 때, 이 땅 위에서 내게 주어진 소명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경영의 시인으로서의 내 역할과 소명을 다하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 이제 하늘이 허락한 나의 모든 것을 소진했다. 아주 작은 소임이었지만 내게는 늘 벅찬 일이었다. 그러나 여러 분이 있어서 더없이 즐거운 것이었다. 주어진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 지 모른다. 족함을 알았으니 이제 무덤의 한 구석으로 물러가도 아쉬운 것이 없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데 성공한 두 번째 까닭은 나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질투심이 강하고 마음이 좁은 사람이다. 그러나 정이 많고 글을 잘 쓰고 여러 개를 연결하여 체계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능하다. 이 기질과 재능들은 서로 도와주었다. 소심하지 않으면 어떻게 정이 많을 수 있으며, 마음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사람의 마음으로 무찔러 들어가는 글을 쓸 수 있었겠는가 ? 마음이 호탕하고 외향적이어서 늘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며 모두 좋다좋다 하면 언제 틈을 내어 책을 즐기고 골똘히 생각을 하고 글을 써 나갈 수 있었겠는가 ? 질투심이 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어제 보다 나아질 수 있었겠는가 ? 그러므로 약점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또 강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니 애써 좋은 쪽으로 계발하고 닦아나가야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신을 가다듬어 세상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 보다 커다란 성공은 없다.

세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경영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일하도록 하는 것이 경영이다. 경영은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세상의 것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을 위해 나를 바치는 것이 있다. 나를 그 사람의 기쁨이 되게 하고 그들의 성공을 위해 쓰고, 나를 덜어 그들에게 퍼주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의 정신이다. 나는 이것을 다하려고 했다. 그래서 경영학의 시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 묘비에 ‘경영의 시인’이라 적어라. 경영과 시, 이 어울리지 않는 짝을 연결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즐거운 여행이었고 힘써 산 일생이었고 떠나게 되어 서운한 이별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다. 그대들의 삶을 힘껏 살아라.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인생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때때로 모험을 즐겨라.

“ 꽃이 만발하여 꺾을 만하면 그때 그 꽃을 따야 한다. 꽃이 지기를 기다려 부질없이 빈 가지를 꺾지 마라. 그대의 사랑이 다 지고 나서 그때 통곡하지 마라.”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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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본형소장님은 늘 말씀하신다.
    내향적인 사람이 성공하려면 자신처럼 살아야 한다고.
    나는 그 부분에 진심으로 승복한다.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느라 나를 배반하지 않고,
    지나치게 경쟁지향적이지 않으면서,
    오직 '나다움'으로 승부하여 성공한 사람...

    그래서 구소장님의 방법론에는 전체적인 큰크림과
    시시콜콜한 디테일이 전부 들어있다.
    그냥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2008.04.04 10: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앨리스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이전에 읽은 글인데 다시 읽으니 또 새롭네요. '나는 나를 좋아했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30대에 해야할 일도 많은 참고가 되네요. 요즘 회사 일과 관련해서 다시한번 변화를 시도할까 고심중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 탓에 너무 자주 저지르는 것이 저한테는 오히려 문제이네요^^ 또 들릴께요. 명석님의 개인적인 글을 자주 접할 수 없어 요즘은 많이 안타깝습니다.

    2008.04.04 15:54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앨리스님이 잘 보았어요.
      aging이 갖고 있는 저 복잡미묘한 갈등과 위축감을 드러내야 진솔한 글이 될터인데, '나'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기가 망설여지네요. 더우기 익명의 방문객을 상대로? ^^ 좀 더 집약된 관심과 목표를 가진 팀블로그나 카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덕목이지만요, 앨리스님. 확실하게 '내 것'을 쌓아가면서 변화를 주도하기를. 살아보니<!> 성공한 사람들은 참 겁이 많더라구요. 돌다리도 두드리는 식의 변화를 시도하는거죠. '작은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거지요.
      내게도 있는 기질이라 동질감에서 드리는 충언인 것을 알아주리라 믿어요.

      2008.04.04 17:16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