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08. 3. 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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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격자'를 보았다. 내 취향이 아니지만,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잘 만든 영화이다.  잔혹한 상상력과 범인의 복합적인 심리묘사, 스피디한 진행으로 러닝타임 내내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범인 지영민<하정우 분>이 망치로 사람의 두개골을 후려치는 장면 같은 것은 도저히 볼 수 없었지만,
기대치않은 몰입과 사색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여자장사를 하는  엄중호<김윤석 분>는 전직 형사이다. 매춘업소가 단속에 쉽게 적발되기 때문일까, 영화 속의 여자들은 휴대전화 한 통으로 어디든지 불리어간다. 미진이<서영희 분> 범인의 집으로 따라갈 때, 내 마음 속에 분노랄까 어처구니없음, 먹고산다는 것의 절박함...  복잡한 감정이 흘러갔다.
업소에서 하는 매춘만으로도 막바지 인생이지만, 적어도 업소에서는 목숨을 담보로 하지는 않지 않는가.

이미 12명을 살인한 또라이 지영민, 그의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하정우는, 성불능자로서의 욕구와 상처를 살인으로 해소하는 범인 캐릭터를 섬찟할 정도로 잘 연기해 주었다.
예수상을 조각하는 직업을 가진 그는 '정'과 '망치'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셈이다.
'정'과 '망치'를 가지고 예수상을 조각하며 느꼈을 쾌감을, 그는 여자를 살해하면서도 느끼게 된다.
내가 너를 예쁘게 다듬어서 새로운 인물로 창조시켜 줄게,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법이야...

'정'은 또한 성적 불능에서 기인한 범인의 욕구와 원한의 상징이기도 하다.
범인이 조각한 예수상의 발 끝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장면은, 범인이 사체의 아킬레스 건을 끊어 피를 뺀다는 장면과도 중첩된다. 조각을 하면서 사체유기의 방법을 떠올렸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층적이고 함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세련되게 계산된 화면은 계속 관객을 빨아들인다.
딱 하나, 수퍼 여주인의 설명이 길어진 것은 관객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피투성이 여자가 숨겨달라고 하지를 않나, 왜들 이렇게 피를 묻히고 다녀'
한 문장으로 충분한 것이다.

미진을 끝내 죽이는 장면에서 리얼리티를 느꼈는데,
순진한 낙관으로 어중간한 해피엔딩을 보이던 수준에서 한 단계 올라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진은 죽일 수 있어도, 엄중호를 여전한 인간쓰레기로 그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영화가 성립할 수 없다.
엄중호가, 우리가 기대할 수 없었던 영웅적 행태를 보이는 것... 그것이 영화의 토대이다.

"너 왜 그래? 돈 때문에 그래?"
전직동료형사가 묻듯 엄중호의 변신은 의외적이다.
자기가 뜯어먹고 살던 여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게된 엄중호가, 불현듯 사람다움을 회복하고 은지의 엄마를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일 때, 비로소 스토리가 가능하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 삶의 대명제이기도 하다.
최소의 희망, 최소의 휴머니티가 없이는, 삶도 예술도 없다.

또한 이 영화는 훌륭한 사회적 영화이기도 하다.
죽어가는 미진의 목소리로,
"오빠, 저 무서워서 더 이상 이 일 못하겠어요..." 말할 때,
우리는 매춘여성의 존재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과 동질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만한 사회성까지 영화적 장치로 넣을 줄 아는 것이,
요즘 영화의 마케팅이라면, 내가 너무 냉정한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화면이 정말 오래도록 올라가고 있었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했구나.
나는 영화에 푹 빠져, '영화'라고 하는 고도의 산업적이고 자본집약적이고, 상상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생각까지 해 보게 되었다.

가령 '배우'는 고도의 감정이입을 통해 캐릭터와 자신을 일치시켜야만 연기가 나오는 직업이다.
자신이 연기한 인물들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 나머지, '인격분열'로 '다중이'가 되어가는 캐릭터는 없을까?

한 편의 영화가 이만큼 몰입을 하게 하고,
여러가지로 생각을 번져가게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것이다
영화 한 편 잘 보았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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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지설

    글 한 편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영화 후기를 읽는데도 추격자 볼 때와 같이 긴장감을 놓지 않게 되네요.
    오랜만에 와서 또 시원해집니다.

    2008.04.02 15:12 [ ADDR : EDIT/ DEL : REPLY ]
    • 잘 지내지요?

      워낙 잔인한 영화를 싫어해서 애들끼리만 보라고 할까 하다, 동참의 차원에서 본 거였거든요.
      결과는 기대이상~~
      관객이 얼마나 들었나?
      대박행진 중일 것 같은데?

      2008.04.02 16:09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