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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여행을 시작한 첫 날이었다. 숙소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활기차게 시내로 나갔다.
길가의 어느 사원에 쓰여진 표지판을 보고 찰칵!
도저히 일말의 의미도 읽어낼 수 없는 상징체계 - 상형문자처럼 느껴지는 기호가 신기했다.
이 곳 사람들은 저것을 언어로 사용한단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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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싸남 루앙 공원을 지나 Grand Palace에 들렀다.
이것으로 왕궁투어는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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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기에서부터였다. 사람구경하며 슬슬 걷던 내 마음이 불편해진 것은.
늘씬하고 허여멀끔하고, 하나같이 선글래스가 어울리는 서구인과,
왜소하고 시커멓고 볼품없는 황색인이 자꾸 대비되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왜 내 눈에 자꾸 서구인만 멋있게 보일까.
서구문화가 지배적인 현상덕분에 내 시각 자체가 편향된 탓일까.
아니면 서구인과 황색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미추'의 장벽이라도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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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왓에 앉아 쉬고 있을 때도, 계속해서 거구의 서양인 단체여행객이 휩쓸고 지나갔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여행객과 같이 선 가이드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크다'는 것은 이미 우월한 고지를 선점한 것과 같다.
서구인들은 왜 저렇게 큰가?
작은 황색인들이 세계문화의 중심이 된 적이 있는가?
앙코르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다면, 저 왜소한 태국인들에게서도 후광이 비쳐나올까?

구걸에 가까운 장사를 하는 캄보디아 아이들 때문에, 심란할대로 심란해진 뒤였다.
나는 그 물건이 필요없어서 사지않는다는 말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의 틈새만 주어도 아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집요하게 매달리면 지쳐서라도 사주게 되니, 아이들은 자신의 무기를 활용하는 셈이지만,
황색인의 한 사람으로서, 게다가 이제  나이들기 시작한 마이너리티의 한 사람으로서
그 애들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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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띠아이 끄데이에 막 들어선 길이었다. 유독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
유적의 입구에 장애인 연주단이 앉아 있었는데, 다른 곳에서 듣던 음악에 비해 훨씬 경쾌했다.
그 전까지는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장애인 연주단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이 불편해서 쳐다보지도 않았고,
게다가 딱 테이프 늘어난 소리처럼 마냥 처량하고 늘어지는 음악이 싫기도 했다.

그런데 이 곳의 음악은 달랐다. 훨씬 빠르고 힘차게 느껴졌다.
그래서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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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팻말에 쓰여진
We don't beg, we want to work. 를 읽는 순간 뜻하지 않게 눈물이 새어 나왔다.
그래 얘들아. 구걸과 장사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 그 어린 나이에 구걸로 내몰리는 너희를 어쩌면 좋으냐.
고맙습니다. 여러분. 끝까지 자존심을 잃지 말아주세요.

저역시 여러분과 다를 바 없는 황색인에 소수인이지요.
우리 사회에서 나이든 사람들은 최후의 마이너리티거든요.
이번 여행은 나이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도, 이것까지는 말할 수 있겠군요.

장애를 부인하는 사람은 장애를 극복할 수 없듯이,
'중년'이나 '노년'이라는 단어사용을 기피할 정도로, 나이드는 것을 부인하고 외면해서는
연령차별주의를 뛰어넘을수도 없다는 거지요.

나는 오늘의 장면을 오래 기억할겁니다.
나이든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시점이니까요.

나는 기부함에 10불을 넣고 CD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오직 나 한 사람을 위해 연주해주는 음악을 경건하게 들었다.
다시 발길을 떼며 목례를 했을 때 누군가 마주 목례를 했다.

똔레삽 호수에 다녀오던 배에서 내릴 때, 그 배를 운전하던 사람은 내 인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번도 관광객에게서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인사를 받아주어서 고마워요. 자존심은 스스로 지키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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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인과 서구인의 위상과 외양에 대한 감회는, Dr. Beat의 첼로연주에 대한 감동을 반감시키기도 했다.
스위스 출신으로 캄보디아 어린이의 열악한 의료환경 개선에 몸바친 Dr. Beat는 프놈펜에 이어 이 곳 시엠리업에서 세 번째의 아동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세 개의 병원이 모두 기부금에 의해 운영된다. 첼리스트이기도 한 그는 정기적인 첼로공연을 통해 관광객에게 기부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아동병원 앞에는 무슨 인력시장처럼 사람들이 많았다. 알고보니 병원에 한 사람의 보호자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슈바이처에 버금가는 인도적인 그의 생애에 대해 충분히 경의를 바칠 수가 없었으니,
여행 초기부터 나를 점령한 황색인으로서의 자아의식 때문이었다.
자선과 베품을 받아야 하는 쪽에 나를 세웠으니, 자존심과 비판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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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딸린 콘서트홀이 너무 고급이었다. 오직 그의 첼로연주를 위해 이만한 부속건물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에어컨은 너무 빵빵해서 추울 지경이었다. 기부를 위한 공연인데, 이 가난한 나라에서 조금 온도를 높여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는 말을 아주 잘 하고 또 말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money or blood ! 를 외치는 웅변가에,
계속해서 서구인<!>들을 웃겨가며, 관광객의 출신국가를 거론해가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관객 중에 서구인이 압도적으로 많기도 했지만, 동양인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첼로연주에 비해 말을 훨씬 많이 했다.
물론 캄보디아 어린이의 실태와 병원운영에 대한 브리핑이지만,
그 날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연주를 통한 기부'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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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Beat은 휴머니즘 뿐만 아니라 경영감각까지 겸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방식과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적지에 앉아서 아무도 듣지 않는 태국 전통음악을 끝도 없이 연주해야 하는 황색인과,
이만한 콘서트홀을 지어놓고 전 세계에서 기부금을 끌어모아 병원 세 군데를 운영할 수 있는 서구인의 방식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심란했을 뿐이다.

5불을 기부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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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글들을 읽고 그냥 가자니 왠지 미안해서 이렇게나마 짧은 감사의 글을 남깁니다.
    같은 여행이라도 이렇게 사람마다 받는 느낌과 감동의 수치와 색깔을 다른가 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08.03.27 23: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사진을 선별하고 최소의 느낌이라도 정리해 놓지 않으면, 다시 들춰보지도 않을 것 같아 서두르고 있지만, 공을 많이 들이지는 못한 여행기에 좋은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쓰는 글에 백프로 속내를 드러낼 수 없어서 글이 더욱 밋밋하네요. ^^

      2008.03.28 19:25 [ ADDR : EDIT/ DEL ]
  2. 학교 다닐 때부터 키가 컸으니 이런저런 관심을 받기도 했죠.
    근데 주변에 가만 보면 생김새 같은 외형 말고 그 존재 자체로 빛나는 사람들이 있죠.
    체게바라보다 모택동, 호치민이 못할 이유가 없는데, 그 느낌은 다른 게 현실이네요.
    음, 저는 글 보다가 갑자기 첼로가 눈에 확 들어오는데요..ㅋㅋㅋ
    홍보간판의 '에어컨 틉니다' 문구도 웃기구요^^

    2008.04.01 08: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더울 꺼라고 각오했는데, 우리나라 한여름만도 못한 날씨여서 지낼만했구요. 일시적으로 그랬겠지요.
      모든 숙소의 등급이 에어컨이냐 팬이냐로 나뉠 만큼, 에어컨에 민감한 것이 사실이구요.

      자기 허리 밖에 안 오는 현지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서구인도 심심찮게 보았지요.

      2008.04.01 13:22 신고 [ ADDR : EDIT/ DEL ]